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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에펠탑과 유리 피라미드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2019-12-12 12:00 송고 | 2019-12-12 20:18 최종수정
루브르박물관 앞마당의 유리 피라미드. (조성관 작가 제공)
루브르박물관 앞마당의 유리 피라미드. (조성관 작가 제공)
 
프랑스 파리에 유리 피라미드가 없었다면 루브르박물관은 얼마나 지루하고 고리타분했을 것인가.

지난 5월, 중국 출신의 미국 건축가 이오 밍 페이(Ieoh Ming Pei 1917~2019)가 세상을 뜬 이후 유리 피라미드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페이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 출입구가 루브르박물관 앞마당에 태어난 것은 1989년. 올해는 유리 피라미드가 세상 빛을 본 지 30주년이다. 페이가 눈을 감자 세계인들은 가장 먼저 유리 피라미드를 떠올렸고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유리 피라미드는 아침 햇살

중국 광저우 태생인 페이는 1935년 부모를 따라 태평양을 건넜다. MIT 건축공학과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하버드대학원에서는 바우하우스(Bauhaus)의 설립자인 천재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에게 디자인과 조형 미학을 배웠다.  

루브르박물관을 처음 찾는 방문자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앞마당의 직사각형 돌 받침대에 올라간다. 받침대에 서서 왼손을 들어 손가락을 모으는 시늉을 한다. 이런 모습을 일행이 스마트폰으로  찍는다. 그렇게 하면 피라미드를 들어 올리는 것 같은 사진이 연출된다. 이 사진을 보며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까르르 웃는다. 방문자들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경쾌한 발걸음으로 티켓을 사러 유리 피라미드로 들어간다.
유리 피라미드는 울울한 석재(石材)의 숲에 쏟아진 한 줄기 찬란한 아침햇살이고, 근엄하고 둔중한 지혜의 돌무더기에 던져진 위트이자 유머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돌과 흙과 나무로 집과 담과 성을 지어왔다. 그중 석재는 인류 역사 이래 최상의 건축 자재로 장구한 세월을 군림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로마의 콜로세움,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

철기 시대 이후 철(鐵)은 수천 년간 농기구나 무기로만 사용되었을 뿐 건축 자재로 대접받지 못했다. 열차의 탄생과 함께 철로가 놓이고 철교가 건설되면서 철이 주목을 받기는 했으나 여전히 석재보다 백안시되었다.

'상 드 마르' 광장에서 본 에펠탑 기둥과 2층. 조성관 작가 제공
'상 드 마르' 광장에서 본 에펠탑 기둥과 2층. 조성관 작가 제공

프랑스 정부는 대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개최한다. 이와 함께 20년 뒤에 철거한다는 조건으로 주탑(主塔)을 공모한다.

에펠사의 탑 설계안이 선정되고 공사를 시작하자 프랑스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어떻게 철골을 그대로 드러내는 망측한 탑을 파리 한복판에 세운다는 것인가?' '강철만으로 312m 높이의 타워를 세우겠다니 말도 안된다!' 

프랑스 지식인들이 경쟁적으로 신문에 이 설계안을 비난하는 글을 실었다. 프랑스 정부가 꿈쩍도 하지 않자 급기야 반대 움직임을 조직화했다. 각계 지식인 300인이 모여 이른바 '300인 위원회'를 결성했다. '여자의 일생'의 소설가 모파상이 300인 위원회의 얼굴로 나섰다. 에펠은 탑의 안전성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 강철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자재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했지만 이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에펠탑 2층에서 올려다본 3층. 조성관 작가 제공
에펠탑 2층에서 올려다본 3층. 조성관 작가 제공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와 함께 에펠탑이 공개되자 에펠탑은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에펠탑은,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가 샹젤리제 거리를 내려다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박람회 기간 파리 시민 10만명이 에펠탑에 올라갔다. 에펠탑은 금방 유럽인의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생애 첫 번째 파리 여행에는 에펠탑을 포함하는 게 좋다. 파리 시내 어디에서도 에펠탑을 보지 않을 수는 없다. 에펠탑은 타워다. 눈으로만 보는 탑이 아니다. 에펠탑은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쳐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역시 올라가 봐야 그 진가를 체감할 수 있다. 에펠탑을 올라가 본다는 행위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의 저력을 두 발로 느끼는 것이다.

맨발로 산길을 걸을 때 대지의 기운이 발바닥의 각질을 뚫고 혈관을 따라 온몸을 휘감는 것처럼 에펠탑의 철제 계단을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강철의 거칠고 차디찬 물성(物性)이 전신을 각성시킨다.  

에펠탑은 트러스(truss) 공법으로 지어졌다. 트러스의 집적체가 에펠탑이다. 에펠탑은 막힌 곳이 없다. 지상에서 57m 2층까지 훤히 보이고, 115m 3층에서 지상까지 투명하다. 바람의 흐름과 시야의 막힘이 없다.

에펠탑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대칭과 균형이라는 미학 개념을 한순간에 깨부쉈다. 직선과 곡선이 무질서하게 교차해 새로운 비정형(非定型)의 미학을 창조해냈다. 에펠탑이 건축·미술·패션·스타일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역시 그 뿌리를 에펠탑에 두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에펠탑의 분신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각지를 누빈다.  

퐁피두센터의 전면부. 외벽에 노출된 에스컬레이터가 보인다. 조성관 작가 제공
퐁피두센터의 전면부. 외벽에 노출된 에스컬레이터가 보인다. 조성관 작가 제공

퐁피두센터의 설계 철학

파리 마레(Marais)지구에는 퐁피두센터가 있다. 공식 명은 조르주 퐁피두 국립예술문화센터.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 시절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 렌초 피아노의 설계로 세워졌다. 퐁피두센터는 외관과 내부가 특이하다. 철골과 유리로만 지어져 파격적이다. 가스관, 배수관, 통풍구 등도 모두 외벽에 노출되어 있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도 외벽에 설치되어 있다. 퐁피두센터는 바깥에서 내부가, 안에서 밖이 훤히 보인다. 퐁피두센터 안팎을 한참 거닐다 보면 렌초 피아노의 설계 철학이 에펠탑의 그것과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에펠탑이 있었기에 퐁피두센터가 태어날 수 있었다.

1989년 유리 피라미드가 준공되자 여기저기서 비난이 터져 나왔다. 루브르박물관과 어울리지 않게 유리로 짓겠다니? 사람은 낯선 게 등장하면 일단은 긴장하고 경계한다. 이어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이오 맹 페이
이오 맹 페이

페이가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나이를 주목해 보자. 72세. 어떤 기준으로 따져도 노인이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인이다. 노인의 특징은 경로의존성이 강하다는 점이다. 여간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데 페이는 유리 피라미드를 짓겠다는 대담한 발상을 했다. 기발함과 참신함이 20대 못지않다. 천재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고 스스로 끝없이 혁신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페이는 보여준다.    

생각해보라. 만일 피라미드를 유리가 아닌 다른 자재로 지었다면 어찌 되었을 것인가. 루브르박물관은 피라미드 무게로 인해 센강 아래로 가라앉았을지 모른다.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형태를 빌려왔지만 유리를 사용함으로서 피라미드에 영원한 젊음을 부여한 사람, 루브르박물관을 공감과 소통의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건축가.

프랑스는 두고두고 페이에게 감사해야 한다.


auth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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