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 >

중세와 미래 그 사이…유럽서 뜨는 아이러니한 도시

[플랜더스 여행 ②] 1300년 역사 속 혁신을 꿈꾸는 겐트

(플랜더스(벨기에)=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2019-10-14 09:52 송고
편집자주 벨기에 북부 지역인 플랜더스는 역사·문화적인 관점에서 유럽의 심장부로 불린다. 이 지역에서 유럽의 여러 문명이 만났고, 이곳의 활기차고 다채로운 생활방식과 예술은 유럽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우리에게도 너무 친숙한 와플, 초콜릿, 맥주의 진수도 바로 플랜더스에 있다. 겐트, 브뤼헤, 앤트워프, 브뤼셀 등의 매력적인 도시를 소개한다
벨기에 겐트© 뉴스1
벨기에 겐트© 뉴스1

플랜더스에서 첫 번째 목적지는 수도 브뤼셀에서 기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겐트(Gent)다.

유럽에 대해 빠삭한 사람들은 알만한 요즘 뜨는 '핫'한 도시다.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에 도시명을 검색하면, '유럽의 숨겨진 보석 같은' '유럽에서 가장 뜨는' 등의 그럴싸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을 알 수 있다.
  
겐트의 역사는 무려 1300년이나 됐고, 13세기엔 프랑스 파리 다음으로 가장 부유했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근세에 들어 존재감이 점차 사라졌다. 덕분에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아 유럽 도시 중에서 중세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신생 도시는 아닌 이 도시가 왜 핫하다는 걸까.
이유는 '아이러니함'에서 찾을 수 있었다. 겐트는 수백 년간 자리를 지켜온 운하와 거대한 저택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중세도시를 연출하는 동시에 트렌드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도시였다.
   
겐트 제단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그라피티© 뉴스1
겐트 제단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그라피티© 뉴스1
그라피티 거리© 뉴스1
그라피티 거리© 뉴스1

첫 번째 아이러니함은 미술에서 찾았다. 겐트는 세계 최초로 유화 기법을 고안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로 대표되는 클래식 미술과 거리 낙서로 알려진 그라피티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겐트 미술의 자랑거리는 얀 반 에이크의 '겐트 제단화'다. 작품이 걸린 성바보 대성당(Saint Bavo Cathedral) 내부가 도심에서 가장 붐빌 정도로 현재 겐트의 관광 수입을 벌어들인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이 제단화는 그림 12폭을 경첩으로 연결한 것으로 히틀러의 광기 어린 미술품 약탈 속에서도 지켜온 종교화의 걸작이다.

실제로 보면 여러모로 놀란다. 우선 생각보다 큰 크기에 압도당하고, 다가가서 보면 매우 세밀한 질감 표현과 세부 묘사에 소름이 돋는다.
현재 걸려 있는 제단화는 윗단만 진품으로 2020년에 오랜 변색 복구 작업 끝에 아랫단의 진짜 모습이 공개된다. 아랫단 중앙의 '어린 양에 대한 경배'는 얀 반 에이크의 대표작이니, 벌써 미술 애호가들의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엔 그라피티의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겐트에선 사회를 향한 반항의 표시로 해석된 그라피티가 합법적인 예술 행위로 인정받는다. 겐트시는 도시 곳곳에 작품을 그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물론 그라피티 거리까지 조성한다. 거리 낙서 지도도 배포할 정도다.

정말 흔한 길거리 낙서 수준이 아니다. 벽화, 그림은 물론 조각과 이야기 형태의 연작도 있다. 크기도 다양하다. 한참 멀리서도 눈에 띌 정도로 거대한 벽 전체를 덮고 있거나, 겨우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기도 하다.

 고색창연한 겐트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현대식 건축물인 Standsahl. 영어로는 City Pavillon으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 뉴스1 윤슬빈 기자
고색창연한 겐트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현대식 건축물인 Standsahl. 영어로는 City Pavillon으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 뉴스1 윤슬빈 기자
채식 테마의 식자재 상점인 moor & moor© 뉴스1
채식 테마의 식자재 상점인 moor & moor© 뉴스1

두번째이자 마지막, 아이러니함은 겐트는 중세와 미래를 넘나든다는 점에 있다. 유럽 어느 도시보다도 중세시대의 면모를 잘 갖춘 겐트는 최신 유럽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유럽 도시는 물론 우리나라 서울에서도 겐트의 '커먼즈'(Commons) 정책 따라하기에 나섰다. 커먼즈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해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자원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겐트는 자동차를 보기 쉽지 않을 정도의 '자전거 천국'이다. 현지인들은 아이, 어른할 것 없이 또는 치마를 입거나 하이힐을 신어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도시는 많게는 1300년, 적게는 몇백 년이나 되는 문화재급 건축물로 채워져 있어, 자동차 길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시민들은 잘 보존된 도시를 오랫동안 넘겨주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며 살고 있다. 
 
요즘 유럽에서 겐트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가 '채식'이다. 겐트시는 2009년부터 '목요일에는 채식의 날'(Thursday Veggieday)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단순히 건강용 채식 장려 운동이 아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식물성 식품을 섭취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공정 음식을 지원하고 나아가 사람, 동물, 자연, 기후까지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 덕분에 겐트엔 채식 위주로 발달된 식자재 상점이나 레스토랑이 여럿 자리하고 있다. 맛도 훌륭한 편이다.

오후를 즐기는 겐트 사람들© 뉴스1
오후를 즐기는 겐트 사람들© 뉴스1
강 한가운데 우뚝 자리한 백작의 성© 뉴스1
강 한가운데 우뚝 자리한 백작의 성© 뉴스1

겐트에서 단 하루밖에 주어지지 않아, 꼭 하나만 해야 한다면 '운하 즐기기'를 꼽을 수 있다. 한때 중세 상인들의 교통로 역할을 했던 운하는 겐트를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물길이 되고 있다.  

오후 4시가 넘어서면, 마치 저녁이 되면 한강에 사람들이 모여들 듯 운하 주변으로 겐트 사람들이 모인다.

겐트의 대부분 인구가 겐트 대학교의 학생과 교수, 직원들이다. 무려 7만명이나 된다. 이들은 강 위에서 카누를 타기도 하고, 강변에서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행객이라면 운하에서 '보트투어'를 즐기는 것이 가장 좋다. 50분에서 2시간까지 코스는 다양하다. 이 투어의 매력은 강 양쪽으로 아기자기한 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석공조합, 선원조합 등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는 길드의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투어 중 강 위에 우뚝 서 있는 성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12세기 백작 가문의 거처로 지어진 '백작의 성'으로 훗날 재판소, 감옥 등의 용도로 쓰였다. 성 내부엔 중세시대 갑옷이며 칼, 총 등의 무기를 전시해 놓고 있다. 

© 뉴스1
© 뉴스1
오크   © 뉴스1
오크   © 뉴스1

겐트여행의 또 다른 매력은 먹거리다. 이 도시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간식도 있고, 많은 미쉐린(미슐링) 스타 레스토랑도 만날 수 있다.

겐트에선 초콜릿, 와플보다 사람 코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일명 '코 캔디'로 불리는 '큐버돈'(Cuberdon)이 더 인기다. 식감은 사탕보단 젤리에 비슷하며, 속 안엔 산딸기, 포도맛의 잼이 들어 있다. 무엇보다 방부제를 넣지 않고 만들어 유효 기간이 짧아 이 도시에서만 구할 수 있다.  

겐트엔 우리에겐 반가운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 있다. 국내 요리 대결프로그램인 '한식대첩- 고수외전'에서 최종우승자였던 마셀로 발라딘 셰프가 운영하는 '오크'(Oak)가 바로 그곳이다.

세계 각지의 음식 문화가 두루 담긴 코스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맛집으로 통해 예약은 필수다. 점심은 3~6코스, 저녁은 6~7코스로 선보인다. 3개의 음식이 나오는 코스요리의 경우 39유로(약 5만원)다.
  
플랜더스 여행 지도©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플랜더스 여행 지도©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seulbin@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