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르포] 돌침대가 물에 뜰 정도…기록적 물폭탄에 삼척 곳곳 시름

궁촌·초곡 비롯해 해안가 인접 마을 대부분 침수 피해
주민들 "주변 공사장서 나온 토사가 배수로 막아 피해 커져"

(삼척=뉴스1) 서근영 기자, 하중천 기자 | 2019-10-03 14:34 송고 | 2019-10-03 16:26 최종수정
3일 오후 1시쯤 태풍 '미탁'이 강타한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 일대가 강한 비바람에 초토화됐다. 2019.10.3/뉴스1 © News1 하중천 기자
3일 오후 1시쯤 태풍 '미탁'이 강타한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 일대가 강한 비바람에 초토화됐다. 2019.10.3/뉴스1 © News1 하중천 기자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이틀간 500㎜에 가까운 물폭탄이 쏟아진 강원 삼척시는 지역 곳곳이 멀쩡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수해 피해에 신음하고 있었다.

동해안을 할퀸 수마(水魔)의 흔적은 3일 오전 강릉에서 출발해 동해고속도로와 7번 국도를 거쳐 삼척시로 향하는 와중에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비바람은 우산을 써도 금세 축축이 몸을 적셨다.  

도로와 인접한 야산에 둘러놓은 토사 유출 방지 펜스는 군데군데 허물어져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갈색 흙무더기가 검은 아스팔트 위에 흩어져있었다.

480㎜가 넘는 비가 내린 궁촌리와 초곡리는 말 그대로 초토화가 됐다.
급물살에 떠밀린 차량들은 산에서 내려온 부산물, 토사와 함께 마치 블록을 쌓듯 뒤엉켜있고 이렇게 형성된 덩어리가 주택 입구를 막고 있는 곳도 있었다.

해상케이블카로 유명한 용화리의 한 도로에는 조경석이 굴러 떨어져 차선을 가로막았고 주변 갈남리로 향하는 길도 유출된 토사가 뿌려져있어 태풍의 위력을 실감하게 했다.

해안가와 인접한 마을인 원덕읍 신남리에 조성된 돌기해삼종묘배양장 주변은 간밤의 폭우로 쏟아져 내린 토사와 나무 부산물이 휘감고 있어 쑥대밭을 방불케 했다.

이곳과 신남리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는 맥없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도로를 타고 내려와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진 물줄기는 신남리 마을 한가운데 흙탕물 강을 만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길인 듯 이웃 주택을 크게 양분해놓은 갈색 물줄기는 세찬 소리를 내며 바닷가로 흘러가고 주변에는 토사에 파묻힌 자동차와 주인이 떠난 빈집이 조형물처럼 놓여있었다.

3일 오전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강원도 삼척시의 한 해변가 마을의 자동차와 주택이 토사가 섞인 흙탕물에 잠겨있다. .2019.10.3/뉴스1 © News1 서근영 기자
3일 오전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강원도 삼척시의 한 해변가 마을의 자동차와 주택이 토사가 섞인 흙탕물에 잠겨있다. .2019.10.3/뉴스1 © News1 서근영 기자

진한 갈색을 띤 물길은 깊이조차 가늠할 수 없어 섣불리 발을 딛기 두려울 정도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혹여나 남아있는 주민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도로 한편에서는 집안을 확인하겠다는 한 노인과 안전을 우려해 그의 진입을 막는 소방대원 간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무릎까지 잠기는 물살을 헤쳐 나오면서 “경북 포항에 있다가 어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려왔지만 물살이 심해 진입조차 못했다”며 “오늘 오전에야 집을 확인했는데 이 지경”이라며 흙탕물로 범벅이 된 집안을 가리켰다.

기곡천과 인접한 노경리 역시 태풍으로 불어난 빗물로 마을 주민 대부분이 거주지를 잃었다.

노경리 주민 임일영씨(57)는 “삽시간에 물이 들이닥치자 거동이 불편한 80대 아버지가 누워계신 돌침대가 천장까지 떠올랐다”며 “119에 구조신고를 했는데 물살이 너무 세서 결국엔 집안으로 들어온 사다리차 바스켓을 타고 겨우 나왔다”고 밝혔다.

피해지 대부분은 해안가나 하천과 인접한 곳으로 주로 흘러내려온 토사가 배수로를 막으며 마을이 물바다가 됐다.

고향이 초곡이라는 장영민(53)씨는 “태풍 매미·루사 때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집 절반이 잠겨버렸다”며 “마을 위쪽에 철도공사장 토사가 쓸려 내려와 마을하천이 막혀 역류하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고 성토했다.

이광순 궁촌1리 노인회장은 “지난밤부터 냉장고가 뒤집힐 정도로 방안에 물이 가득 들어차는 등 수해로는 이번이 피해가 가장 크다”며 “마을 위 철도공사장에서 흘러내려온 토사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피소인 원덕복지회관에서 만난 주민 역시 “인근 남부발전에서 복지관 건설 공사 중인데 그곳에서 발생한 토사와 함께 물길이 마을로 쏟아지며 피해가 커졌다”며 인재를 의심하기도 했다.

3일 오전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강원도 삼척시에 마련된 한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대한적십자사의 구호물품을 받아보고 있다. 2019.10.3/뉴스1 © News1 서근영 기자
3일 오전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강원도 삼척시에 마련된 한 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대한적십자사의 구호물품을 받아보고 있다. 2019.10.3/뉴스1 © News1 서근영 기자

옷가지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주민들은 지자체가 마련한 대피소에 머물며 집안 걱정에 쪽잠을 자는 등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오후를 기해 태풍 영향권을 벗어나며 비바람은 잦아들었지만 물폭탄에 모든 것을 잃은 이재민들은 앞으로가 걱정이다.

대피소인 원덕복지회관에서 만난 주민은 “토사랑 물이 집안에 밀려들어 가전제품이고 뭐고 다 손을 쓸 수 없게 됐다”며 “집안이 걱정돼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시름을 토했다.

한편 미탁의 영향으로 지난 2일부터 이날 정오까지 내린 삼척 궁촌 488.5㎜, 삼척 389㎜, 강릉 368.6㎜, 동해 367.7㎜, 미시령 206.5㎜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동해안에 대규모 피해를 입힌 미탁은 오전 6시를 기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sky4018@news1.kr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