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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디자이너 열전②]루이비통의 첫 흑인 수장, 버질 아블로

패션 배운 적 없지만…세계 3번째 럭셔리 브랜드 수장으로
중고 옷에 프린트 붙여 10배 가격에 파는 '파이렉스 비전' 등 과감한 실험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2019-10-01 07:00 송고 | 2019-10-01 13:55 최종수정
편집자주 "패션은 변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1883년 8월~1971년 1월)이 생전 남긴 말입니다. 흔히 패션은 유행에 민감하다고 하지요. 그러나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디자이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당대의 편견과 맞서며 기성 패션계에 도전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계 패션 역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디자이너들의 극적인 삶을 매주 한편씩 소개합니다.
루이비통 영상 갈무리 © 뉴스1
루이비통 영상 갈무리 © 뉴스1

지난해 6월21일 프랑스 파리에서 루이비통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인 '버질 아블로'의 루이비통 데뷔 무대가 열렸다. 카니예 웨스트, 리한나, 트래비스 스캇… 내로라하는 '흑인 아티스트'들이 그 자리를 지켰다.

쇼가 끝나는 순간 언론의 이목이 집중됐다. 주인공 아블로가 나타났고 눈물을 터뜨리는 아블로를 그의 오랜 친구 카니예 웨스트가 껴안았다. 둘은 '자수성가한 흑인'의 아이콘으로 떠오르며 소외된 이들의 희망이 됐다.
200년 역사의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이 남성복 부문 수장으로 임명한 아블로는 가난한 가나 이주민의 아들이었다. 건축학도인 그는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이 없다. 그러나 발망의 올리비에 루스텡, 지방시의 오즈왈드 보탱에 이어 럭셔리 업계 세 번째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등극했다.

디자이너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패션업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해 타임지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중 하나로 뽑았다.

© AFP=뉴스1
© AFP=뉴스1

◇'시카고의 아이'에서 200년 역사의 루이비통 수장으로
"저는 시카고(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 키즈입니다. 저는 (루이비통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이 일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블로는 루이비통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직후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아블로는 미국 일리노이주 락포드의 가난한 가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재봉사로 일했고 아버지는 페인트 업체를 운영했다.

아블로는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토목공학 학사를, 일리노이공대에서 건축학 석사 딴 공학도였다.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가 프라다와 협업해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을 보고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됐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2009년 아블로는 펜디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패션계에 뛰어들었다. 펜디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많은 '인연'을 남겼다. 그는 그곳에서 칸예 웨스트와 함께 일했고 웨스트는 훗날 그를 자신의 크리에티브 디렉터로 임명하며 패션 디자이너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해 준다.

또 마이클 버크 루이뷔통 회장(당시 펜디 최고경영자)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아블로와 웨스트가) 스튜디오에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는 방식은 강한 인상을 줬다"며 "그 이후로 나는 그의 커리어를 유심히 지켜봤다"고 회고했다.

아블로도 FT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마이클 버크가 펜디를 담당하고 있을 때 펜디의 인턴이었다. 그리고 이후 몇 차례 만났다. 그리고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았다"며 루이비통에 합류하게 된 일화를 소개했다. 

그룹 빅뱅 지드래곤이 오는 25일 미국 LA에서 열리는 케이블채널 Mnet '엠카운트다운 왓츠 업 LA(M COUNTDOWN What's up LA)' 참석 차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2013.8.23 머니투데이/뉴스1
그룹 빅뱅 지드래곤이 오는 25일 미국 LA에서 열리는 케이블채널 Mnet '엠카운트다운 왓츠 업 LA(M COUNTDOWN What's up LA)' 참석 차 2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있다. 2013.8.23 머니투데이/뉴스1

◇경계를 파괴하는 과감함…아블로의 '치트코드'

40달러(약 5만원)짜리 중고 옷에 큼지막한 프린트를 덧붙인다고 해서 550불(약 60만원)에 되팔 수 있을까?

2012년 아블로가 '파이렉스 비전'이라는 자신의 첫 번째 브랜드이자 패션 프로젝트를 론칭하면서 한 일이다.

파이렉스 비전은 정확히 말하면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중고 폴로 남방과 저지 등에 'PYREX 23' 등의 커다란 프린트를 붙이는 '실험'이었다. 일각에서는 아블로를 '사기꾼'이라며 비난했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파이렉스 비전은 국내에서도 지드래곤과 설리 등이 입으면서 유명해졌다.

아블로는 훗날 "(파이렉스 비전 프로젝트는) 나에게 아주 중대했다"며 "자신이 믿는 프로젝트에 뛰어드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프로젝트는 당신의 커리어를 이끌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아블로의 창의적인 행보는 그치지 않았다. 이듬해 아블로는 스트리트 브랜드 '오프화이트'를 론칭했다. 그는 오프화이트도 일반적인 패션 브랜드와는 다르게 운영했는데 다양한 협업 시리즈를 선보이며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나이키와의 협업 프로젝트 '더 텐'은 아블로를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올려놨다. 나이키 에어조던1 시카고를 아블로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조던1 시카고X오프화이트'는 현재 리셀(전매) 가격이 400만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블로는 패션 및 가구 디자이너이자, DJ, 영상아트를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5월에는 한국에 방문해 서울 성수동에서 DJ 공연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운영하며 '상업적 디자인이 어떻게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예술이 되는지'에 대한 논란을 일으기키도 했다.

 © AFP=뉴스1
 © AFP=뉴스1

"무엇이 당신의 '시그니처'인가요?"

아블로는 2017년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강연에서 이같이 물었다. 그는 "당신의 시그니처는 '치트코드'(게임을 쉽게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코드)가 될 것"이라며 "오직 나를 대표하는 시그니처를 찾기 위해서 매우 바삐 일했다"라고 말했다.

1980년생의 젊은 디자이너 아블로는 이미 자신의 시그니처를 확립했다. FT는 "아블로가 만든 패션 브랜드 오프화이트는 '길거리 의상'을 '고급 패션'에 편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아블로는 강연에서 "내가 학생일 때 누군가가 '너가 선택한 길은 모두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규율을 넘어섰다"며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길을 과감히 개척할 것을 독려했다.


hemingwa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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