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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린 딸이 살려달라고 소리쳐…" 긴박했던 광주 아파트 화재 현장

추석 연휴 첫날 아파트 화재로 50대 부부 사망
대피하려던 남편 추락, 아내는 불길 속에서 발견돼

(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2019-09-12 11:43 송고 | 2019-09-12 11:51 최종수정
추석연휴 첫날인 12일 새벽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50대 부부가 숨지고 4명이 다쳤다. 소방당국 등은 10분간 연기가 발생한 후 갑자기 불길이 번졌다는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상황 등을 조사 중이다. 2019.9.12/뉴스1 © News1 한산 기자


"살려주세요!!!"

추석 명절 연휴 첫날인 12일. 광주 한 아파트에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날 오전 4시21분쯤 광주 광산구 송정동 한 아파트 5층에서 불이 났다. 추석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재회한 주민들이 평온히 잠을 청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살려주세요!!!" 갑자기 한 여성의 비명소리가 났다. 소리가 난 곳을 보니 남녀 2명이 불이 난 아파트 창문에 매달려있었다.

주민 최모씨(67·여)는 "새벽에 '사람 살려' 소리가 나길래 놀라 뛰쳐나와보니 불이 나고 사람이 매달려 있었다. 창문에 매달려 버티고 있는 딸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주민들은 밑에 쓰레기봉지 옮겨놓고, 119 부르고, '불이야, 불이야' 소리지르고 난리가 났었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비명소리에 별안간 잠에서 깬 주민들은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혹여 집에서 잠을 자다 대피하지 못한 사람이 있진 않을까 단지에서 "불이야", "불이야"를 목청껏 외쳤다.

'불이야' 소리에 잠에서 깬 주민들은 아버지 A씨(54)와 딸 B씨(22)이 창문에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죽을 힘을 다해 창문에 매달려 있는 부녀를 본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였다.

한 주민이 아파트 쓰레기장에 있는 쓰레기 봉투를 부녀가 매달린 곳 아래 쪽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화단에 쌓인 쓰레기봉투가 완충 역할을 하도록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그러자 다른 주민들도 누가 먼저랄것 없이 재빨리 뛰어가 봉투를 날랐다.

그 사이 맞은편 아파트에 긴박한 상황을 본 양모씨(46)가 화염으로 뒤덮힌 아파트로 뛰어들었다.

그는 화재가 발생한 집 아래층으로 들어가 가까스로 매달려있는 아버지와 딸을 구하기 위해 아래층 창문에 몸을 반쯤 걸쳤다.


광주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한 한 주민이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2019.9.12/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양씨는 보일러 연통에 겨우 발끝을 대고 버티고 있는 B씨의 다리를 잡으려 두 팔을 힘껏 뻗었다. 양씨가 B씨의 발을 잡자마자 온 힘을 다해 B씨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B씨가 4층 창문으로 빨려들어갔다.

양씨가 B씨의 다리를 두팔로 잡아당기며 뒤로 넘어져 B씨를 극적으로 구조할 수 있었다.

당시 구조 상황을 설명하는 양씨는 팔과 다리 여기저기가 창문 등에 긁혀 붉게 올라와있었다.    

그는 "불이 나고 어쩌고 그런 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람을 살려야겠단 생각에 4층으로 무작정 뛰어 올라갔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씨가 B씨를 극적으로 구조한 직후 매달려있던 아버지 A씨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만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5층 집 안에 있던 아들과 아들 지인도 불길을 피해 1층으로 몸을 던졌고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안에 있던 어머니 C씨(51)는 미처 밖으로 대피하지 못하고 현관문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주민 김모씨(44)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쓰레기봉투도 옮겨놨는데 안타깝다. 너무… 이쪽으로만 떨어졌어도 좋았을텐데…"라며 쌓여있는 쓰레기봉투를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12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50대 부부가 숨지고 4명이 다쳤다. 당시 창문에 매달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아파트 화단에 주민들이 쓰레기봉투를 쌓아놓은 모습.2019.9.12/뉴스1 © News1 허단비 기자

이날 한 주민은 "매달린 딸이 살려달라고 소리쳤는데 지켜만보고 아무것도 못해줬다. 매달린 걸 지켜보는데 심장이 너무 쿵쾅쿵쾅 뛰어서 제대로 쳐다도 못봤다. 너무 미안하다. 아버지도 사셨어야 하는데…"며 눈물을 훔쳤다.  

소방당국은 이날 발생한 화재로 A씨와 C씨 부부가 숨지고 아들과 딸, 아들의 지인, 아파트 단지에서 대피 중 넘어져 부상을 입은 주민 등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화재 연기를 마신주민 11명은 두통을 호소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 등은 거실에 놓인 전동 퀵보드에서 불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퀵보드 전원연결전선과 배터리 등을 수거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beyondb@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