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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왕진의사는 왜 없어졌나

(서울=뉴스1) 김종호 호서대 법경찰행정학과 교수(법학박사) | 2019-08-20 06:03 송고
김종호 호서대 법경찰행정학과 교수(법학박사)© News1
김종호 호서대 법경찰행정학과 교수(법학박사)© News1
나이 드신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옛날엔 '왕진'(往診)이라는 게 있었다.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 의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살피는 것이다. 필자도 40여년 전에 왕진의사를 본 기억이 마지막이다.

왕진의사는 왜 사라졌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의료인이라는 존재가 누구인지부터 짚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아울러 생각해 볼 일이다.
환자를 자기 책임 하에 직접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의료인이다. 왕진이 사라진 것은 의료인수가 부족한 것도 이유지만 의사들이 방문건강관리 서비스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환경에서 1차 진료는 개업의가 담당한다. 개업의가 병원 밖을 나서지 않으니 환자들은 힘들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제 발로 의원에 찾아가야 한다.

꼭 의사만 왕진을 해야 하나? 누구라도 의학적 전문 역량이 있으면 찾아가 돌봐주도록 하면 환자에겐 큰 도움이다. 그러나 의료법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이 함부로 환자를 돌보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의료인을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에 한정하고, 이들에게 국민보건 향상과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부여했다.

의료인이 부족해진 것은 국가 정책이 한몫했다. 의료현장에서 의사, 간호사와 같은 의료인의 일손이 달리자 이들을 보조할 간호조무사를 속성으로 길러냈다. 전문성과 숙련성을 갖춘 고급 의료인을 양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인력 분배의 효율성을 위해 비의료인인 보조인력을 활용해 역할을 세분한 것이다. 
이렇듯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역할과 법적 지위가 다르다. 문제는 의료 현장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병원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그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해야 하고 간호사의 배치 정보를 제공하는 게 도리다. 그러나 대부분 병원은 이런 정보를 알리지 않고 있다.

최근 간호 조무사회가 의료법상 법적 지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간호조무사의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가. 간호조무사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누구의 지휘 감독도 받지 않고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 만큼 훈련돼 있는가,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 

간호조무사회가 최근 촉발한 갈등은 '떼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신들의 주장을 대중에게 설득하기 보다 집단행동을 무기로 삼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아무리 떼법이라고 해도 수용 불가능한 원칙이나 한계가 있는 법이다.

의료법은 의료인들에게만 전국적 조직 설립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의사회·치과의사회·한의사회·조산사회 및 간호협회가 그것이다. 이를 법정단체(의료인 단체)로 명명하고 있다.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회가 자신들도 의료인처럼 법정단체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며 국회와 정부를 압박하는 것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지금까지 역동적인 한국 현대사에서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다양한 요구가 분출될 때마다 국가의 권위는 힘의 논리에 밀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 등장한 간호조무사회의 법정단체 지위 인정요구는 결코 허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구는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간호보조인력인 간호조무사에게 의료인과 동등한 법정단체 지위를 허용하고 그들에게 의료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하게 한단 말인가?

이는 헌법 상 평등원칙이 절대적 평등이 아닌 상대적 평등임을 망각한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요양병원에서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를 지도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는 매우 위험할 뿐 아니라 의료법 위반이다. 국민건강과 환자 안전을 위해 간호조무사는 명칭 그대로 간호사를 보조하는 업무를 하는 인력이며, 반드시 간호사의 지도·감독 하에 업무를 수행토록 하는 것이 의료법의 취지이므로 간호조무사회의 주장은 떼법 그 자체이다. 

왕진의사가 사라진 우리의 의료 현실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역할을 의료인인 간호사가 대신할 수는 있다. 간호사가 지역보건의료 서비스의 일정부분을 담당하도록 하는 것은 훌륭한 공공의료 정책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돌봄)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간호조무사가 사실상 간호사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법과 정책은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있다고 해도 직역(職域)이기주의에 입각한 입법시도가 통해서도 안 될 것이다. 언제까지 국민건강이 떼법을 앞세운 이해관계자들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이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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