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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노점실명제' 3년…생계형도, 보행권도 못지켰다

노점주인 알수 없고, 길막고 영업 …규정위반 만연
단속적발은 20분의1로 줄고…등록취소 한건도 없어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2019-05-12 06:00 송고
명동 중심가에서 길을 막고 영업하고 있는 노점 2019.05.06./ 뉴스1 © 뉴스1 김정현 기자
명동 중심가에서 길을 막고 영업하고 있는 노점 2019.05.06./ 뉴스1 © 뉴스1 김정현 기자

#연휴 마지막날이었던 지난 6일 오후 5시, 명동 상권의 중심지인 우리은행 명동지점 앞 사거리는 노점들이 1m 정도 간격으로 빽빽히 자리잡았다. 명동거리 곳곳에서 노점상과 그 앞에 서서 음식을 먹는 관광객들에게 길이 막혀 '병목현상'이 벌어졌다. 닭꼬치, 가리비구이 등에서 발생한 연기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고 손사래를 치며 지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서울 중구청은 지난 2016년 노점과 상생하겠다며 서울 지자체 중 최초로 '노점실명제'를 도입했다. 중구청은 노점에 1년마다 도로점용허가를 주는 대신 기업형 노점을 없애고 생계형 노점만 두겠다며 △1인1노점 △소유자 직접 운영 △노점 재배치 통한 보행권 회복 및 거리질서 확립이라는 목표를 밝혔다.
그러나 노점실명제 도입 후 3년이 지난 지금, 명동의 노점들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다. 단속이 쉽지 않다는 핑계로 구청이 뒷짐만 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규정 위반 일상이지만 허가취소 '0건'…피해는 시민 몫

2019년 기준 노점실명제에 등록된 명동의 노점수는 364개다. 규정상 이들은 2부제 영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명동 지역 내 1일 영업 노점수는 182개를 넘을 수 없다.
그러나 지난 3월28일 오후 6시 명동 거리에서 영업 중인 노점은 이를 57개나 초과한 239개 였다. 주말인 지난 4월7일에는 그보다도 많은 244개의 노점이, 5월6일에는 249개의 노점이 길까지 막고 영업하고 있었다.

소유자 직접운영 원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명동지하쇼핑센터 근처에서 케밥을 판매하는 한 노점은 3월28일에는 중동 출신으로 보이는 외국인 남성 2명이 영업하고 있었지만 지난 6일에는 20대로 보이는 한국인 남성 2명이 운영했다. 노점 주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이들은 대답을 피했다.

규정을 일상적으로 어기는 현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명동 지역 노점 불법행위 적발 건수는 692건(2017년)에서 29건(2018년)으로 2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규정위반 3회 이상이면 허가가 취소되지만, 3년간 규정위반으로 노점 등록이 취소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중구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주일에 3~4번씩 점검을 나가고는 있지만 무작정 단속할 수 없어 구두로 몇번 계도하다 시정되지 않는 경우 적발한다"고 답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명동을 찾는 시민들의 몫이었다. 오랜만에 명동에서 친구들을 만났다는 장원영씨(49·여)는 "연기 때문에 눈도 아프고, 앞에서 먹는 사람들도 피해다녀야 해 불편하다"면서 "길 한 쪽도 아니고 길 한가운데를 양옆에서 틀어막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가족과 명동을 찾아 아이에게 닭꼬치를 사준 이준용씨(42)는 "애들은 좋아하지만 불편을 끼치면서 이런 번화가에서 임대료나 세금도 안내고 현금 장사하는 사람들이 생계형일지는 잘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서울 중구 명동 거리 노점에서 자욱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2019.05.06/ 뉴스1 © 뉴스1 김정현 기자
서울 중구 명동 거리 노점에서 자욱한 연기가 올라오고 있다 2019.05.06/ 뉴스1 © 뉴스1 김정현 기자

◇노점상 재산·소득도 모르는데 '생계형'?…노점들과 협의해 기준 마련한 영등포구

실제로 중구청은 노점실명제에서 '생계형 노점'의 재산 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중구청 관계자는 "본인이 등록하고 운영하는 노점은 모두 생계형으로 봤다"며 "그동안 검토는 했지만 어디까지 저소득으로 볼지 기준을 세우기 굉장히 어려워 노점들에 대한 재산조회·소득조회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다"고 답했다.

중구청이 2015년 1월 노점실명제를 추진하며 만든 '중구 거리가게 관리 운영규정 제정계획'에는 '재산소유액 2억원 이하' 기준이 있었지만 실제 거리가게 운영규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재산기준 항목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산 문제는 노점상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문제"라며 "재산 기준을 전제로 해버리면 노점 허가 문제에 걸림돌이 되어 한걸음도 못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구청 측은 협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재산기준 마련을 미루고 있지만, 노점들과의 협의를 통해 기준을 마련하고 노점들을 정리한 곳도 있다. 최근 영중로 앞 노점 45곳 중 30개소만 남겨 거리가게로 정비하고 있는 영등포구청이 대표적이다.

영중로 보행환경 개선사업에 나선 영등포구청은 영중로 노점들과의 협의를 통해 1인 3억5000만원, 부부합산 4억원 이라는 자산 기준을 세우고 영등포구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만 '거리가게 가이드라인'에 따라 노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부천에 거주하는 신기원씨(36)는 영중로 노점이 철거된 것에 대해 "사람 많이 몰리는 시간엔 심지어 길에서 줄서서 지나갔어야 했는데, 길이 넓어져 좋다"고 답했다.

인근 병원에서 근무하는 최문영씨(44·여) 역시 "노점들에서 흘러나오는 오물로 더럽고 불편해서 일부러 돌아서 가기도 했다"며 "넓고 깨끗해진게 보기좋다"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무작정 놔두면 정말 무법천지가 되는 것이 노점"이라며 "기준을 맞춰 상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분명 쉽지는 않겠지만, 행정 관청에서 계속 선을 그어주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문했다.


K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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