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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협상축 정비하고 '체제보장' 배수진…분기점 맞은 북미협상

협상축 통전부→외무성 이동…'체제보장' 전략 전환
새판짜기 보단 의제·구도 조정 목적

(서울=뉴스1) 배상은 기자 | 2019-04-30 07:30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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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비핵화 협상 핵심축과 전략을 재정비하면서 교착에 빠진 북미 협상이 새로운 분기점을 맞은 모양새다.  

'군부 강경파' 김영철 대신 '정통 외교관' 출신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제1부상이 전면에 등장한 가운데 대미 요구사항도 '제재 완화(해제)'에서 '체제안전보장'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새로운 협상을 시작하자"는 대화시그널로 보고 있으나, 사실상 미국에 태도 변화를 요구하며 배수진을 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은 하노이 결렬 이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첫 정상외교였던 25일 북러정상회담을 통해 비핵화 협상 전략과 관련한 상당한 변화를 노출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그간 최고 실세격이었던 김영철과 '백투혈통' 김여정의 부재였다. 이들의 빈 자리는 리 외무상과 최 1부상이 차지했다.

리 외무상과 최1부상은 북러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 양 옆에 각각 배석했다. 1,2차 북미정상회담과 작년 총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모두 김영철 부위원장이 배석했던 것과 비교된다. 김 부위원장은 대미·대남 업무를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장으로서 미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물밑접촉을 시작해 최근까지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 역할을 해 왔다.
국정원은 통전부장이 민화협 출신 장금철로 교체된 것은 맞지만, 이를 김영철 부위원장의 실각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김 부위원장이 하노이 결렬의 책임을 지고 비핵화 협상 일선에서 물러난 것만큼은 사실상 확실해 보인다. 새 통전부장 장금철의 경우 주로 대남사업에 관여해와 북미 비핵화 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는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의 부재에서도 엿보인다. 김여정 1부부장은 작년 10월 4차 방북을 실시한 폼페이오 장관과 김 위원장간 면담에 김영철을 제치고 유일하게 배석해 의전을 넘어 북미협상에도 관여하고 있음을 노출한 바 있다. 북미 협상이 불확실해지면서 파국을 대비해 김여정의 노출을 피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리 외무상의 등판은 앞서 북한 외무성이 차기 북미협상 상대를 폼페이오 장관이 아닌 "의사소통이 보다 원만하고 원숙한 인물"로 교체하라고 요구한 가운데 그간 미국이 협상상대로 바라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도 25일 기사에서 이점을 들어 이것이 "실패한 하노이 협상팀 대신 새로운 팀으로 다시 협상을 시작하자"는 김정은 위원장의 대미메시지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그간 교착국면 마다 협상상대를 영어에 능통하고 핵군축에도 전문적 식견을 갖춘 리 외무상으로 교체해달라고 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S동 건물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 당시 확대회담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양 옆으로 각각 배석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상 제1부상이 보인다. /YTN뉴스 영상 캡처 ©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S동 건물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 당시 확대회담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양 옆으로 각각 배석한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상 제1부상이 보인다. /YTN뉴스 영상 캡처 © 

다만 리 외무상이나 최 부상도 그간 전면에서 미국의 태도를 비난하는 역할을 해온 것을 볼 때, 협상 채널이 정보라인인 통전부에서 정식 외교당국인 '외무성'으로 전환되는 것 외에 이들의 등판이 당장 협상 분위기를 바꿀 가능성은 낮다.

북한 역시 판을 완전히 새로 짜는 것을 노리고 있다기 보다는 협상 의제와 구도를 조종하는 데 1차 목표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 교체 요구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은 당장 다자협상 구도로의 전환을 원한다기 보단 폼페이오 장관 등 기존의 몇가지 걸림돌을 제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을 향해 협상 재개 조건을 가이드하며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번 북러회담을 통해 비핵화 협상 전략을 제재완화에서 '체제보장'으로 전환한 것도 완전히 셈법을 바꾼 것이라기 보다는 미국이 태도에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 군사적 사안과 관련한 보다 강력한 상응조치를 요구해가겠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체제보장을 언급하지는 않은 채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의 입을 통해 이를 간접적으로 전하고 향후 협상에 대한 여지를 계속 남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소 안보통일센터장은 "대북 체제안전보장은 이미 스몰딜에 포함돼있던 것으로 북한이 진정 원하는 것은 결국 '제재 해제'"라며 "요구사항을 체제보장으로 바꿀 경우 미국이 단계적 협상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올 수는 있지만 포괄적 로드맵이 합의되지 않으면 근본적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북한이 끝내 포괄적 로드맵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현재 제재 레짐이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입장을 바꾸지 않은 채 연말까지 그대로 갈 것"이라며 이 경우 올해 말이나 내년 초까지 '도발없는 대치국면'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bae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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