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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혐오도 존중해야?"…고려대 학보사 기자칼럼 논란

"편집 과정서 교직원이 사례 교체…내부관행 개선을"
전문가 "사실상 혐오발언 용인…신중한 검토해야"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박혜연 기자 | 2019-03-31 07:30 송고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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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학보사 '고대신문'에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용인해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이 게재돼 학내사회에 논란이 일고 있다. 성소수자 당사자를 비롯한 재학생들은 칼럼을 싣는 과정에서 교직원인 기획간사가 부당하게 편집권에 개입했다며 개선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일 고대신문 1871호에는 '익지 않은 사과는 쓴맛일 뿐'이라는 제목의 기자 칼럼이 실렸다. 토론 수업 중 한 학생이 "사실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말하자, 다수의 사람이 '날선 목소리'로 해당 발언에 사과를 '거칠게 요구'했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의견이든 말할 수 있고 모든 의견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과사람'이 해당 칼럼에 대해 최초로 문제를 제기하자, 고대신문은 21일 페이스북 페이지에 편집국장 명의의 사과문을 게재했다. 문제가 된 칼럼은 페이스북 페이지와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혐오발언을 용인하는 듯한 내용을 담은 칼럼이 학내 성소수자 구성원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 성소수자 당사자들과 표현의 자유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사람과사람은 "성적 지향성을 개인 잣대로 '일반적인 것'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재단하려는 것은 분명한 혐오표현"이라며 "이런 글을 고려대를 대표하는 공적 매체인 고대신문에 싣는 것은 혐오를 '자유로움'으로 옹호하는 논리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큰 사회적 악영향을 끼친다"고 비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역시 "대학은 한편으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곳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며 "학보는 학교의 공식 매체고, 혐오발언이 실리는 것은 그런 발언을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보다 신중한 검토와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려대학교 학보사 '고대신문' 1871호에 게재된 칼럼은 현재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 뉴스1
고려대학교 학보사 '고대신문' 1871호에 게재된 칼럼은 현재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 뉴스1

◇"데스킹 과정서 혐오발언 추가…시스템 개편해야"

해당 칼럼을 둘러싼 논란은 학생 자치언론에 대한 교직원의 편집권 침해 논란으로까지 번진 상황이다. 사람과사람이 '교직원인 기획간사의 데스킹(기사 수정) 과정에서 문제가 된 단락이 독단적으로 추가됐다'며 △기자와 기획간사를 포함한 책임자 전반의 해명 △데스킹 시스템 개편안 마련 등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학생 당사자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 고대신문 내부의 불합리한 편집 관행이 드러난 만큼,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만 구성원 스스로 혐오발언을 걸러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람과사람 모니터링부장 A씨는 "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의 (관계자) 증언이 있었다"며 "학교 신문이 학생의 목소리를 담는 것이 아니고, (학생의 목소리를) 더 위에서 컨트롤하는 큰 힘이 있었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밝혔다.

사람과사람 모니터링부원 B씨는 "초고에는 아예 다른 예시가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며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김정은 원내대변인 발언)과 의견이 다른 대자보를 훼손한 경우가 (예시로) 있었다. 그게 통째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칼럼에서 든 예시에도 왜곡이 있었다. 위압적인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 목소리(혐오발언 반대)에 동의한 건 두세 명 뿐이었다"며 "심지어 교수님이 '토론장에서는 사과하라는 요구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무마시키고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느꼈다고 (토론수업에 참여 당사자가) 증언했다"고 덧붙였다.

기획간사 C씨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그 칼럼을 통과시킨 책임은 저에게 있다"면서도, 초안에 없던 예시가 데스킹 과정에서 들어갔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라며 언급을 자제했다.

◇'시스템 개편' 의견 모았지만…돌연 편집국원 '직무정지'

고대신문 편집국측은 29일 오전 정식 사과 대자보를 통해 △기획간사의 편집권 참여 최소화 요구 △편집국 데스킹 시스템 개편 △편집국 내부 인권 교육 및 의식 개선 △보도윤리준칙 재정립 등을 추진할 것을 밝혔다.

그러나 편집국원들이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서도 한 차례 파열음이 일었다. 그러나 기획간사 C씨는 27일 오전 8시쯤 편집국원들에게 돌연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 것이다. "외부 압력에 굴복해 고려대학교 신문의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직무정지 조치는 다음날인 28일 낮 12시쯤 돌연 해제돼, 고대신문 편집국원들은 29일 오전 정식 사과 대자보를 게재할 수 있었다. 편집국측은 "기자들끼리 논의해 요구안을 마련해서 기획간사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사람과사람은 "교직원 측의 학생언론 탄압에 대한 문제의식 부족에 매우 유감을 느낀다"며 "고대신문이 평등하게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람과사람은 적극적으로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m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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