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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원전 협력업체 "올해 안에 줄도산" 눈물의 호소

[창원 르포] 올해 물량 끝, 눈물 머금고 직원들 떠나보내
"탈원전 반대 안해. 신한울 3, 4호기라도 재개를"

(창원=뉴스1) 박동해 기자 | 2019-03-11 07:00 송고 | 2019-03-11 09:32 최종수정
15명의 직원이 3명으로 줄어든 경남 창원의 한 협력업체 공장. 용접용 마스크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15명의 직원이 3명으로 줄어든 경남 창원의 한 협력업체 공장. 용접용 마스크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정부가 '탈원전'을 선언한 지 2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최초의 상업용 원자로의 가동이 중단되고 신규 원전 건설도 백지화됐다. 원전 건설 공사에 부품을 납품하던 협력업체들의 악몽은 계속되고 있다.

뉴스1은 지난 7일 원자력 발전설비를 생산하는 두산중공업의 협력업체들이 몰려있는 경남 창원을 찾았다. 창원은 국내 최대 민간 원전업체인 두산중공업과 협력사 300여곳이 있는 대표적인 원전 도시다. 방문하는 업체마다 한숨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미 달관한 상태에서 공장의 문을 닫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다는 업체 대표도 있었다. 원전에 들어가는 초정밀 부품들을 개발할 수 있다는 이들의 자부심은 자괴감으로 바뀌었다.

갑작스레 바뀐 정책으로 매출은 반 이상 줄어들고 눈물을 머금고 직원들을 떠나보내고 있다. 이런 억울한 심정을 밝히고자 업체명과 대표의 실명을 내걸고 언론과 인터뷰를 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회사가 어렵다고 판단한 은행들이 빚을 상환하라고 찾아왔다. 직원들 월급이라도 주기 위해 빚을 내려고 해도 대출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독촉장만 쌓였다.

뉴스1과의 인터뷰에 응한 협력업체의 대표들은 자신들의 이름과 회사명을 밝혀도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갈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익명으로 보도하기로 했다.

◇원전에 올인했는데… 올해 안에 물량 '끝'

20여 년째 원전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을 제작하고 있는 A사는 신고리 5, 6호기에 들어가는 마지막 주문 물량을 생산하고 있었다. 더는 주문되는 제품이 없기 때문에 한 달이면 생산할 수 있는 제품들을 1년 내내 만들어 내고 있었다.

A사는 매출 전부를 두산중공업에 납품하는 원전부품에 의지해왔다. 그렇기에 타격은 더 컸다. A사의 대표 ㄱ씨는 공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부러 생산을 늦추는 방법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일감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ㄱ씨는 "원전 부품 생산을 위해 시스템을 다 맞춰놨기 때문에 다른 제품을 주문받으면 별도의 비용이 들어간다"라며 "지금 어떻게 해서든 밖에서 일을 좀 찾아보려고 했는데 경기가 안 좋아서 수지가 맞는 일감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A사가 보유한 원전 관련 일감은 올해 7월이면 모두 동이 난다. 이런 상황에서 ㄱ씨는 해외에서 원전을 수주하면 일감이 다시 생길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답답하다'는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ㄱ씨는 "해외 수주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설계 등의 과정을 거쳐 협력업체로 일감이 오려면 2~3년 시간이 걸리는데 그때까지 남아있을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창원의 한 원전업체에서 제작된 원전 관련 부품들. 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창원의 한 원전업체에서 제작된 원전 관련 부품들. 뉴스1 © News1 박동해 기자

◇"IMF 때도, 조선업 몰락 때도 지금보다 힘들지 않았다"

"평생을 철공소 밥을 먹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B사의 ㄴ씨는 현재 상황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보다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선박 관련 제품도 생산하던 ㄴ씨는 최근 몇 년간 불어닥친 조선업 위기에 관련된 일감이 끊기자 공장부지 일부를 매각하면서 회사를 지켜냈다. 하지만 최근에 상황에 대해서는 "내리막이 너무 심하다"며 "과거 공장 한두 곳이 문을 닫는 일이 있어도 산업 자체는 유지됐지만, 현재는 줄도산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B사의 매출도 탈원전 정책 이후 50%가량 줄었다. 이윤은 사실상 '0'에 가깝다. ㄴ씨는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을 줄이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업이 어려워지자 직원들이 스스로 떠나기도 했다. 사업이 잘될 때는 40명까지 늘어났던 직원이 현재는 23명으로 줄었다. 자녀 학비 지원 등 직원들에게 제공되던 복지 혜택도 대폭 축소했다.

ㄴ씨는 "최근에 미세먼지 때문에 말이 많은데 나는 미세먼지 숟갈로 퍼먹으라고 해도 먹을 테니까 영업이 잘돼서 직원들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다"라며 "대리기사라도 해서 돈을 벌어서 직원들에게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ㄴ씨는 원전 건설의 중단이 오히려 원전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원전에 부품을 납품했던 업체들이 도산하고 나면 기술력을 갖춘 인력들이 남지 않게 되고 향후 원전 운용에서 문제가 생길 때 이를 수리·보완할 인력이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이다. ㄴ씨는 "현재도 기술 인력은 부족한 게 현실인데 최근에는 인력들이 경기가 좋아지는 일본으로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원전 한다고 하기 창피하다"

대형 원전 부품을 공급하던 C사의 공장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원전 관련 주문이 없어 화력 발전용 부품을 일부 생산하고 있었다. 300t(톤)이 넘는 부품을 깎아 낼 수 있었던 기계는 10분의 1의 크기도 안되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16명이었던 직원은 3명으로 줄었다. 일손을 부릴 여유가 없어 대표 ㄷ씨의 아내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회사 경리 일을 보고 있었다.

ㄷ씨는 "이전에는 원전을 한다는 게 자랑스러웠는데 이제는 원전한다고 하면 창피해서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주문받은 대형 부품을 트럭에 꽉 채워 실어 보낼 때 느꼈던 뿌듯함은 2년여 전 이후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C사는 대형 원전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구입했던 장비 2대 중 1대를 지난해 매각했다. 10년 전 30억원에 구매한 기곗값은 4억원이 됐다. 중고기계라고 해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이었다. 직원들도 2017년 12월을 기점으로 절반으로 줄인 후 지속해서 감축을 계속해야 했다. 그래도 은행에는 35억 정도의 부채가 남아있다. 대형기계를 돌려야 하기 때문에 매달 1000만원이 넘게 발생하는 전기료는 매출의 30% 이상을 잡아먹었다.

원전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인천에서 있던 공장을 정리하고 창원에 자리 잡았다는 ㄷ씨는 "이제는 원전을 하게 된 게 후회가 된다"라며 "원전 공사가 재개 안 된다면 올해 안에 문을 닫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ㄷ씨는 사업을 접는다고 해도 정부가 더 이상 원전을 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마당에 현재 갖추고 있는 장비들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고철이 될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탈원전 반대하지 않아…다만 시간을 좀 달라"

인터뷰를 진행한 업체 대표들은 모두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일감이 끊기는 상황을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고 입을 모았다. 장기적으로 탈원전을 추진하더라도 당장 진행 중인 공사는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 업체는 현재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 4호기의 공사를 재개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 ㄱ씨는 "업종을 바꾸더라도 적어도 2~3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며 "그동안 중단된 신한울 공사만 재개되더라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ㄴ씨도 "이미 주민동의 등 기초 조건을 다 갖춘 신한울 공사를 재개하고 그 시간 동안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원전을 어떻게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탈원전 정책 시행의 직격탄을 맞은 경남지역의 원전부품 업체들 대부분이 신한울 원전의 공사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경남지역본부가 최근 도내 원전부품 생산기업 85개사를 대상으로 현황조사를 한 결과 82.4%가 신한울 원전의 공사가 완전히 중단될 시 '원전 관련 업종 휴폐업'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최연혜, 강석호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탈원전반대 범국민서명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1월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2019.1.2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최연혜, 강석호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탈원전반대 범국민서명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지난 1월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2019.1.21/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계속되는 원전 관련 업계의 어려움과 전력 수급에 대한 우려 등으로 올해 초부터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 4회의 공사를 재개하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앞서 야당을 중심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비판이 계속돼왔다. 여기에 더해 여당 소속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오래된 원자력·화력 발전소 대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면서 신한울 원전 공사 재개 여론의 불을 댕겼다. 더욱이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면서 미세먼지 배출이 적은 원전의 발전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취임한달 후 고리 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탈핵 국가로 가는 출발'을 선언했다. 같은 달 정부는 신고리 원전 5, 6호기 건설을 일시 중단하고 민간 배심원단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3개월간의 활동 끝에 '공사 재개' 결론을 내렸지만 궁극적으로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권고안을 정부에 전달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권고안을 수용해 탈원전을 바탕으로 한 에너지전환로드맵을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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