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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①]"비용부담에 엄두 안나"…'다윗과 골리앗' 싸움

동일원인 다수피해에도 소송 제각각, 기업 증거독점
공동소송 이겨도 나머지 개별소송…"사법행정 낭비"

(서울=뉴스1) 손인해 기자 | 2019-01-08 06:00 송고 | 2019-01-08 09:29 최종수정
편집자주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BMW 차량화재, 라돈 침대 사태 등을 거치면서 국내에서도 집단소송제 확대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정부는 지난해부터 현재 증권 관련에 한정된 집단소송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아 법안 개정에 나섰다. 올해 관련 법안 개정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화할 전망인 가운데 국내 집단소송제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리잡고 있는 집단소송제에 대한 고찰을 통해 올바른 개정 방향을 6회에 걸쳐 제시하고자 한다.
© News1

"우리나라 법은 기업을 위해 만들어졌나요? 소비자 보호에 대한 내용은 모조리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더라구요."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남·41)는 지난해 11월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로 콜센터가 마비되면서 그날 장사를 공쳤다.

주말 평균 매출 기준 100여만원 손해를 입었지만 법적 대응은 하지 않았다. 직접 시간과 비용을 들여 소송을 제기하는 게 부담스러운 데다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한 법정 다툼에서 승산이 크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와 대진침대, BMW 화재 사건 등 집단적 피해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집단소송제'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 피해구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일부가 소송에서 이기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도 함께 배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한국에선 현재 주가조작 등 일부 증권분야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집단소송이라는 말이 쓰이지만 사실 '공동소송'이 정확하다.

7일 법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9~10월 기준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주요 공동소송 현황은 △BMW 차량화재 사건 29건 △대진침대 사건 11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6건 등이다.

이중 가장 많은 소송이 제기된 BMW 차량화재 사건에서 원고 수는 4명부터 최대 1228명에 달한다. 대진침대 사건의 경우 원고 수도 10~1745명 수준이다.

동일한 원인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는데도 개별 소비자가 작은 혹은 큰 덩어리로 쪼개져 여러 건의 소송이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웬만한 소액 사건의 경우 인지대와 변호사 보수 등 소송비용과 법원 최종 판단까지 수년이 걸리는 시간의 부담 때문에 김씨처럼 애초 소송을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엔 소액의 피해를 입은 개별 피해자나 적은 수의 공동소송 원고들이 기업을 상대로 피해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작용한다.

법무법인 한누리 대표 김주영 변호사(53·사법연수원 18기)는 "개별소송이나 공동소송에서 피해자들은 제각각 싸워야 하는 반면 자금력이나 핵심증거를 독점하고 있는 가해기업은 전체 분쟁을 종합적인 견지에서 전략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가벼운 치료를 필요로 하는 피해자가 수십만원 수준의 배상금을 받으려다 패소할 경우 본인뿐 아니라 상대방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소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공동소송에서 승소해도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는 별도로 다시 소를 제기해야 해서 '사법 행정적 낭비'라는 지적과 아울러 같은 사건에서 다른 결론이 나오는 경우 '사법부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주영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제각각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피해자들의 주장 및 입증내용이 다 달라 재판부가 다른 결론은 내릴 수 있는데 이 경우 통일적 해결이 저해되고 피해자들의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투명성 강화와 시장에 대한 신뢰 증대 차원에서도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기업 입장에서 사고로 피해가 발생해도 배상 부담이 적다면 애초 예방이나 점검시스템에 공을 들일 이유가 없다"며 "기업이 집단적 피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구제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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