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자유 찾아온 탈북민, 밤낮없이 뛰다보니 '보험왕'

"통일되면 北에 1호 보험사 지점 여는게 꿈"

(대구=뉴스1) 공정식 기자 | 2018-12-31 16:45 송고
윤광남씨(36)는 지난 2010년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와 현재 경북 한 도시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고객이 찾으면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됐다는 윤씨가 지난 28일 경북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며 손을 내밀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윤광남씨(36)는 지난 2010년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와 현재 경북 한 도시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다. 고객이 찾으면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됐다는 윤씨가 지난 28일 경북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며 손을 내밀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1983년 함경남도 함흥시 성천강구역 함흥역 인근에서 태어난 윤광남씨(36)는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 남북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지켜보며 어린시절 집 앞 철길에서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고 회상했다.

윤씨는 "통일이 되면 먼저 고향 함흥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마을길을 걷는 상상을 했다. 직접 차를 몰고 육로를 달려 소식이 끊긴 고향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 성탄절 무렵 윤씨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이런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 잘 보내고 계십니까? 사랑의 손길이 필요해 글을 올립니다.

화물차를 운전하는 북한이탈주민이 직장에서 월급 대신 초콜릿을 받았답니다. 그는 얼마 전 태어난 쌍둥이 딸의 아빠입니다.
당장 돈이 필요한데 월급을 못받아 많이 힘든 상황이라는 얘기를 듣고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도움을 청합니다'

이후 게시물 댓글에는 초콜릿을 1세트부터 5세트, 10세트를 사겠다는 사람 10여명의 주문이 줄을 이었고, 윤씨는 이들의 주문을 전해줬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윤씨의 휴대전화에는 쉴 새 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수시로 문자가 날아든다.

"안녕하세요, 윤광남입니다. 비교견적이요? 잠시만요…."

고객이 찾으면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됐다는 윤광남씨가 지난 28일 경북 한 카페에서 인터뷰 도중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고객이 찾으면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됐다는 윤광남씨가 지난 28일 경북 한 카페에서 인터뷰 도중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윤씨는 2015년부터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해 현재 한 보험회사 지역본부의 지점에서 팀장(FP급)을 맡아 일하고 있다.

하루 100여통의 전화통화와 상담, 부르면 어디라도 달려가겠다는 각오로 하루를 바쁘게 보낸다.
    
2010년 남한에 정착한 윤씨는 중장비학원에 다니며 단기 아르바이트부터 건설현장 일용직, 요금소 과적단속, 일당 농장일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그러다 보험이라는 것을 알게 돼 가입하면서 지점장과 친분을 쌓게 됐고, 면접을 권유받아 보험 공부를 시작했다.

윤씨는 봉사활동에서 알게 된 최민석씨(가명·35)와 친구가 됐다. 최씨 부부는 윤씨의 첫 보험에 든 고객이다.

이들의 인연과 우정이 쌓여 최씨의 여동생을 소개받아 결혼에 성공한 윤씨는 두돌된 아들과 아내와 가정을 이루고 있다. 내년 8월에는 둘째가 태어난다.

처음 보험일에 뛰어들기까지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보험이 뭔지도 모르면서, 탈북민이 할 수 있겠나?"

보험사 일부 직원과 주변의 수군거림에 윤씨는 오기가 발동했다.

'탈북민이어서 안된다니, 연고가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한 그는 보란듯이 입사 시험에 합격했다.

윤씨는 고객과의 상담이 반복되자 부족함을 깨닫고 잠을 쪼개 실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고객이 찾으면 언제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느리지만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가자 윤씨를 찾는 고객이 점점 늘어났다.

고객이 찾으면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됐다는 윤광남씨가 지난 28일 경북 한 카페에서 새해 소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고객이 찾으면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됐다는 윤광남씨가 지난 28일 경북 한 카페에서 새해 소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2018.12.31/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2018년 3월 '지점 보험왕'에 올라 포상을 받은 윤씨는 "통일이 되는 날 내 고향에 북한 1호 보험회사 지점을 차리겠다"는 꿈을 밝혔다.

1997년 무렵 15살 나이에 북한 땅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제3국을 통해 2010년 남한으로 온 윤씨는 "탈북민에 대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과 선입견이 무척 어려운 과제였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탈북 이유는 각자 달라도 자유가 그리워 남으로 내려온다. 그런데 탈북민이라는 것을 밝히면 무서워하고 심지어 혐오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해 새 삶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너무 높고 큰 장벽이다. 인터넷을 통해 통일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면 분위기는 좋은데 댓글에는 온갖 비난이 난무하더라"며 "탈북민에 대한 욕설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무척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남북 교류와 더불어 통일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누군가 통일비용을 놓고 목소리를 높여 말하니 언젠가부터 통일비용만 따지고 통일은 손해보는 장사라는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며 "후손에게 통일된 나라를 물려주고 함께 고향에 가고 싶은 소박한 꿈을 너무 짓밟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jsgong@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