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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어이, 형씨! 당신? 어디다 대고 당신이야?

이건범, 박창식 등 8인 공저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서울=뉴스1)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2018-12-02 07:00 송고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길거리를 걷다가 아무나 붙들고 한 판 싸우고 싶은가? 앞서 가는 남자 어깨를 툭 치면서 “어이, 형씨!’라고 부르면 금방 해결된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존중하는 호칭이 분명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그리 부르느냐에 따라 상대방을 매우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호칭이다. 때문에 상대방을 어떻게 호칭하는가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호칭 자체가 ‘내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정체성’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과 나의 관계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핸드폰에 연락처를 입력할 때마저 그 사람의 호칭을 어떻게 입력해야 할 지 늘 판단을 하는 것이다.

‘춘부장, 자당, 모친, 부친, 아버님, 어머님, 어머니, 아버지, 아빠, 엄마’처럼 한 사람에 대한 호칭이 일부러 공부를 해야 할 만큼 많은데다 ‘처형, 처제, 처남, 동서, 김서방’은 있는데 ‘처오빠, 처언니’는 없는 복잡성 때문에도 늘 그렇다. 이런 복잡다단한 말 풍습은 필시 왕조시대 사농공상(士農工商) 계층을 만들어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던 소수 양반들이 다수 ‘무지렁이’들을 지배하는 방편에서 유래됐음이 분명하다. 호칭이 민주주의 최고 가치인 평등의식과 직결되는 이유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진보하면서 원래 문제가 있던 불평등 호칭이나 가치관의 변화로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는 호칭 때문에 사회 곳곳에서 충돌이 잦다.

대표적인 사건이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때 있었다. 모 신문이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를 보도하면서 ‘대통령 부인 김정숙 씨’라고 호칭한 것이 문제가 됐다. 신문사는 ‘사람의 성이나 이름에 붙여 그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이르는 말’이란 국어사전의 뜻대로 ‘씨’를 써왔지만 언어 관습이 변해 존칭보다는 그 반대의 의미로 쓰이는 추세를 인정해 결국 ‘김정숙 여사’로 바꾸면서 ‘국민적 논쟁’은 일단락 됐다.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모든 을(乙)들에게도 호칭은 늘 중요하다. 호칭이 상대방과 대화의 문을 여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꼬이면 그 이후는 기대할 게 없다. 가장 난감한 경우가 명함의 이름 뒤에 ‘꼬리표 (직위)‘가 없는 ‘평민, 평사원’이 갑(甲)인 경우다. 그가 “그냥 씨로 부르세요”라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개 씨’라 부를 정신 나간 을(乙)은 없다. 유독 우리나라에 ‘사장님’과 ‘선생님’이 많은 이유다. 다행이 요즘은 ‘아무개 님’이란 호칭이 일반화 돼 그 고민이 많이 해소됐다.

미국에 ‘미스김 라일락’이란 꽃이 있다. 해방 직후 미 군정청에서 일하던 미국인이 우리 토종 수수꽃다리 씨앗을 본국으로 가져가 퍼트린 후 이름을 그리 붙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 미 군정청 사무실에 잡무를 맡은 김 씨 성을 가진 한국인 여성 직원이 있었을 거라고 쉽게 추측이 된다. ‘미스 김’이란 호칭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널리, 아무렇지도 않게 쓰였다. 그런데 가까운 언제부터인가 이 호칭은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불편한 호칭이 됐다. 아마도 시간이 더 흐르면 ‘미스김 라일락’이란 꽃 이름도 바꿔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이 좋으면 좋았지 나쁜 일은 결코 아니다. 시민의 일상생활에 베인 적폐라 할 권위주의와 차별의식을 없앰으로써 진정한 평등과 상호 인권존중의 마음이 ‘불편부당, 차별적 호칭의 폐지와 개선’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언어혁신이 곧 민주화의 진전이다. 이제부터라도 민주주의 원칙에 맞게 ‘도련님, 아가씨’ 같은 문제적 호칭 기상도를 전향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

◇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 이건범, 박창식 등 8인 공저 / 한겨레출판 펴냄 / 1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