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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출장소' 오명 벗나 했더니 이젠 '한은寺·척척寺'

1998년 독립했는데 20년째 따라다니는 '한은 독립'
"빼앗긴 들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듯" 촌평

(서울=뉴스1) 장도민 기자 | 2018-10-23 06:05 송고 | 2018-10-23 08:57 최종수정
[자료] 한국은행 전경 © News1 양동욱 기자

재경부 남대문 출장소와 재경부 금리국. 이는 과거 한은이 뒤집어쓰고 있던 오명이다. 지난 1997년 12월 31일 한국은행법이 전면개정되기 이전까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은 한은 총재가 아닌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정부의 입맛대로 금리를 주무를 수 있는 구조다 보니 세간에선 한은을 두고 '재경부 남대문 출장소 또는 금리국'으로 깎아내려 부르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 이후 한은을 정부가 통제해선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가 빗발쳤다. 이후 한은은 은행 감독권을 당시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으로 넘겨주는 큰 대가를 치르고, 독립성을 확보했다. 이렇게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어도 표면적으로나마 독립성을 확보하면서 한은은 재경부 남대문 출장소와 금리국 등의 오명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이후 한은은 새 별명을 얻었다. 바로 '한은사(寺)'다. 현재는 리모델링을 위해 비어있지만, 원래 한은은 서울에서 가장 번잡한 남대문로의 한 가운데 자리했다. 한은은 분주한 도심 중앙에 있음에도, 석조로 구성된 외관 덕분인지 차분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곳으로 유명했다. 언젠가부터는 이런 한은의 약칭 뒤에 절을 의미하는 '사(寺)'가 붙었다.

좋은 의미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 한은의 또 다른 오명이다. 한은이 금융시장과 통화정책을 수행할 때 주도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수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말이다. 미국에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날을 세우고 대립하는 정도까지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 수준은 아니더라도 끊임없는 독립성 논란이 더는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서 붙은 오명일 가능성이 높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은행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2018.10.2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한은사라는 말은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화두였다.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중앙은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화정책으로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인데, 요즘 한은은 절간 같다고 한은사라는 지적을 받는다"며 "시장을 선도하고 신호를 주는 것이 아닌 확정된 방향에 편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8일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와 이날 국정감사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가 11월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한다. 이 총재가 이렇게 발언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꼬집은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이 공개 발언으로 금리 인상 압박을 가한 이후 한은의 11월 금리 인상 시그널이 한층 강해졌다.

한은사라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이날 국정감사에서는 전 정부와 이번 정부의 압력행사 여부가 큰 쟁점이었다. 이 과정에서 '척척사(寺)'라는 단어도 튀어나왔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최경환 전 부총리와 이주열 총재의 관계를 빗댄 '척하면 척'을 비꼬아 "한은은 고도의 정치를 하는 척척사"라고 쏘아붙였다. 이렇게 2018년 국정감사에서도 독립기관으로서의 한은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한 금융인은 23일 한은 독립을 열망하던 시절 자주 인용됐던 이상화의 시를 빗대 "빼앗긴 들(한은)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 같다"고 촌평했다.

다소 민감한 지적이 이어지다 보니 이 총재는 국정감사에서 어떤 압력도 받은 적이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전 정부와 현 정부 모두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개입을 하거나 개인적인 연락을 하지 않았다"며 "금통위원의 판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어떠한 압력도 행사한 적이 없고 정부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jd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