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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밖청소년도 우리 아이"… 거리상담 ‘소화제’ 눈길

스스로 고민털어 놓는 분위기… 불켜주고 밥주고 재능기부도 동참

(부산ㆍ경남=뉴스1) 조아현 기자 | 2018-08-10 16:27 송고
9일 오후 찾아가는 야간 거리상담 프로그램 소화제에서 청소년들이 상담검사를 하고있다.© News1 조아현 기자
9일 오후 찾아가는 야간 거리상담 프로그램 소화제에서 청소년들이 상담검사를 하고있다.© News1 조아현 기자

"열린 공간에서 선입견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바라봐준다는 것, 그게 최대 장점이죠."

부산 번화가에서 저녁 간 학교밖 청소년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민을 덜어주는 거리상담 '소화제'가 눈길을 끈다. '소화제'는 '청소년들과 소통하고 화합해 제 기능을 하도록 돕는다'의 줄인 말.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해 가출한 뒤 답답함을 안고 찾아오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의도치 않게 아이를 가지고 어쩔줄 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신청하는 사례까지 안타까운 사연도 넘쳐난다. 

'소화제'는 2016년 부산지역 상담사들이 자비를 들여 학교밖 청소년들과 소통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고 올해 3년째를 맞았다. 지난해부터는 우수공모사업에 선정돼 시교육청의 지원도 받고있다. 

9일 오후 7시 부산 서면 놀이마루 앞 도로에는 직장에서 퇴근한 이후 '소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달려온 상담업계 종사자 20여명이 북적였다. 간이 테이블과 원판돌리기 게임, 선물꾸러미로 도로를 꾸몄고 지나가던 행인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눈길을 주기는 했지만 자리에 앉아 쉽사리 고민을 털어놓지는 않았다.
상담이 진행되는 간이 테이블 옆에는 큰 천막이 세워졌다. 부산가족상담센터가 주관하는 '청개구리맘밥'이다. 거리를 배회하는 청소년들의 야간식사를 책임지는 곳이다. 오늘의 메뉴는 소고기국과 김치, 컵라면과 요구르트. 인근 주민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반찬과 식기들을 지원해 아이들에게 밥을 제공하고 있었다.

상담 테이블이 마련된지 10여분이 지났을 무렵, 학생 3명이 앉아 전문상담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적성탐색검사와 자아존중감 테스트를 받았다.

옆 테이블에도 학생 2명이 앉아 상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모두 고민이 있어 스스로 찾아온 청소년들이었다.   

검사를 끝내고 상담을 받은 A군(17)은 "사회복지학과를 가는게 어떻겠느냐는 부모님의 조언을 받았지만 스스로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며 "지난 해 거리상담을 우연히 본 기억이 나서 찾아왔는데 적성검사와 상담을 통해 해답의 길이 열린 것 같다. 후련하다"고 말했다. 

함께 검사를 받은 B양(18)은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비하하거나 낮출 때가 많았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을 줄 알았다"며 "그런데 검사결과 적정선 수준이었고 생각보다 좋게나와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고 미소지었다. 그러면서 "학교나 센터에서 진행하는 상담은 막힌 공간이다보니 들어가기가 꺼려질 때도 있고 쉽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며 "(소화제는)오픈된 공간에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덧붙였다.

날이 어둑해지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상담 검사지 글자가 잘 보이지 않을때쯤, 나뭇가지 사이에 LED등을 매달아 빛을 밝혀주는 '슈퍼맨'도 나타났다.

놀이마루 근처에서 냉동기 수리판매점을 운영하는 석갑덕씨(61)다.

석씨는 1년 넘게 매주 열리는 '청개구리맘밥'에 전기 불빛을 밝혀주는 기부를 하고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석씨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박명옥 학생상담자원봉사자 회장은 "상담 결과 정작 자신을 붙잡아고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았다"며 "거리상담은 부모나 친구, 교사에게 말못하는 고민을 꺼냈을 때 선입견없이 수용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남수정 시교육청 학교폭력예방팀 장학관은 "학교밖 청소년들은 학교에 재학중인 청소년과도 결국 연계된다"며 "학교로 돌아올 수 있도록 안전망과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조금만 기다려주면 된다"며 "그 기다림을 어른이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올해 마지막 '소화제'는 수능시험이 끝난 이후 11월 22일 서면 놀이마루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choah4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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