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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되자 취준생 현장실습 봇물…'열정페이' 악습은 여전

형식은 '실습' 실질은 '근로'…현장실습생 간 차이 월 100만↑
교육부 "관리인력 부족…올해 안에 개선방안 마련할 것"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2018-07-22 07:30 송고 | 2018-07-22 09:55 최종수정
서울의 한 대학교 취업정보 센터에서 학생들이 채용정보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의 한 대학교 취업정보 센터에서 학생들이 채용정보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 News1 구윤성 기자

# 경기도의 한 전문대 조리과를 졸업한 A양(21)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의 한 유명 레스토랑에서 실습할 기회를 얻었다. 최저시급 이상을 받으며 실습할 수 있다는 말에 A양은 주저 않고 참여했다. 하지만 업체는 A양에 월 80만원만을 지급했다. 일주일에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방에서 정직원과 똑같이 일하는 것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급여였다. 

# 충남 지역의 한 사립대학 관광학부를 졸업한 B양(26)은 국내 한 유명 여행사 실습생 자리에 지원했다. 선발의 기쁨도 잠시, B양은 회사로부터 실습기간 2달 동안 총 30만원의 실습비를 받는다는 안내를 받고 당황스러웠다. 식비와 교통비를 제하면 사실상 '돈을 내 가며' 일하는 셈이었다.
방학을 맞아 취업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는 대학생들의 마음이 바빠지고 있다. 선택지 중 하나는 '대학생 현장실습수업'(현장실습)이다. 현장실습은 '학생이 향후 전공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데 필요한 지식·기술·태도를 습득'하게 한다는 취지로 교육부가 대학과 기업에 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가 대학과 기업에 제공하는 현장실습 매뉴얼에는 실습비 지원 관련 부분이 권고 수준에 그치고 있어 사실상 '열정페이'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 "현장실습은 근로 아닌 '교육'"…현장에선 '글쎄'

교육부는 현장실습 운영규정 제5조를 통해 '현장실습은 해당 전공분야의 실무능력 향상을 위해 학생 전공과 관련된 실무 실습 과정으로 운영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교육부가 2017년 6월 각 대학과 기업에 배포한 현장실습 운영매뉴얼에는 '현장실습은 일과 학습을 함께 하는 교육프로그램'이라며 '교육적 기능이 우선적 담보돼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현장실습이 사실상 근로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면서도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대학생 상당수는 '실습지원비' 명목으로 한달에 15만~20만원선을 받는다. '실질'은 근로지만 '형식'은 현장실습인 데서 나오는 부작용이다.

게다가 교육부는 현장실습 운영규정 제7조에서 '현장실습에 소요되는 비용의 산정 및 부담방법 등은 대학과 실습기관이 협의하여 결정한다'고 실습지원비 산출을 자율에 맡기고 있다. '(현장실습이) 실질적 근로에 해당하는 경우 최저임금법 및 근로기준법에 따라 최저임금액 이상의 실습지원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2017년 12월 기준으로 15만3181명의 대학생들이 9만3556곳의 실급기관에서 현장실습에 참여하고 있어 교육부 차원에서의 관리·감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열정페이'는 정해진 수순인 셈이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윗선 업무 지시…'실습 아닌 근로'

A양은 "주방에서 피자 굽기·피스타 만들기·설겆이 등 정직원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했고, 일 내용만 보면 그분들과 전혀 차이가 없었다"며 "메뉴 하나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어서 손님에 내놨다"고 말했다.

또 "교수님도 처음에는 최저시급 이상을 받아야 현장실습 인정이 된다고 했는데, 정작 협약서를 작성할 때는 지원비 기재 부분을 공란으로 두라고 했다"며 "결국 너무 부당하다는 판단에 중간에 최저시급을 지급하는 업체를 따로 알아봤다"고 털어놨다.

B양이 하는 일도 여행사의 기존 업무와 다르지 않았다. 여행사 고객의 예약 내역을 확인하거나 비자를 발급하고, 경쟁사 상품과 요금비교를 하는 등 사실상 '실습'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2006년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지휘·감독을 하는 경우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 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되는 경우 등의 기준을 충족하면 이는 실질적으로 근로로 봐야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A양과 B양은 '근로자'에 해당한다.

박사영 노무사는 "형식은 현장실습이어도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지, 시킨 업무를 하지 않았을 때 제재가 있는지, 재량권이 있는지 등을 파악해야 한다"며 "현장실습생들이 윗선으로부터 지휘감독을 받았다면 근로자로 봐야 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맞춰야 하고 수당도 지급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누구는 '최저시급' 누구는 '실습비'…'오락가락'

교육부가 대학과 기업에 배포한 '현장실습 운영매뉴얼' 중 실습지원비에 관한 부분(교육부 매뉴얼 갈무리).2018.7.22/뉴스1© News1
교육부가 대학과 기업에 배포한 '현장실습 운영매뉴얼' 중 실습지원비에 관한 부분(교육부 매뉴얼 갈무리).2018.7.22/뉴스1© News1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같은 현장실습생이어도 누군가는 최저시급을, 다른 누군가는 최저시급에 턱없이 못미치는 실습비를 받고 있다.

거제 지역의 대학에서 조선기술을 전공한 C군(23)은 방학 4주 동안 호텔 기계실에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C군은 "하는 업무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도 비슷하고, 현장에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좋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A양·B양·C군 모두 일주일에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지만 B양은 C군에 비해 한달에 100만원 이상을 덜 받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같은 현장실습생이지만 어느 대학에서 어느 기업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천양지차다.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지점이다.

보험 가입과 협약서 작성 여부도 저마다 다르다. A양은 화상과 자상의 위험이 상존하는 주방에서 일했지만 업체로부터 보험에 대한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했다. B양은 회사의 안내에 따라 자비로 상해보험을 들었다.

표준협약서 작성은 현장실습에 앞서 필수사항이지만 B양은 이 같은 협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A양은 실습지원비와 상해보험 가입 등이 안내되지 않은 '반쪽짜리' 협약서를 썼다. 반면 C군은 온전한 협약서를 작성하고, 실습과 관련한 상세 내용을 모두 안내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장실습생을 받고 있는 한 여행사 관계자는 "산업현장은 아니어서 특별히 위험한 게 없어 보험을 따로 들게 하지는 않는다"며 "아예 위험요소를 다 배제하는 쪽으로 실습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교 "사실상 '열정페이' 맞다"…교육부 "개선할 것"

결국 현장실습 사업이 그 규모에 비해 관리·감독은 느슨한 탓에 취업이 아쉬운 대학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묵인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계속되고 있다.

고충은 대학생뿐 아니라 대학과 업체에도 있다.

A양이 졸업한 전문대의 현장실습 담당자는 "대학 입장에서는 교육부 지침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며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또 "학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열정페이'가 맞다"며 "그래도 교육부에서 받는 지원이 축소되지 않으려면 현장실습 참여를 계속해야 하고, 그래서 교수들도 현장실습생을 보낼 업체를 통사정해서 발굴한다"고 말했다.

B양이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국내 여행사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학교 측 필요에 따라주는 측면이 있다"며 "인턴사원이라면 업무의 퀄리티를 높이게 노력할 수 있지만, 현장실습생은 현실적으로 단순 업무보조밖에 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고영종 교육부 일자리총괄과 과장은 "초·중·고교는 시·도교육청이 있지만 대학생 현장실습은 교육부가 전담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하다"며 "여름방학 동안 샘플로 몇 곳의 현장실습업체를 정해 관리·감독을 하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대학교에서 알아서 진행해야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 "학생들에 적정한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곳이 있는데, 업체가 현장실습에 대한 인식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고 본다"며 "대학과 업체 간 협약 내용을 모두 모니터링하는 건 불가능하고, 현장실습 취지에 맞게 올해 안에 개선 방안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kays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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