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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약관의 역습]㊦처방 없이 진흙탕 공방에 멍만 든다

보험사들 소송·배임 운운하다 결국 백기
금감원 "책임 여부 떠나 잘못 지적하고 할 일한다"

(서울=뉴스1) 김영신 기자 | 2018-07-23 06:12 송고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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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과 보험사들은 자살보험금, 즉시연금 등 이슈를 두고 똑같은 유형의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금감원은 제재 권한을 무기로 보험사들을 압박하고, 보험사들은 소송 운운하며 버티다 항복하는 식이다. 금감원과 보험사 간 책임 공방 과정에서 부실 약관에 대한 깊은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정작 가장 중요한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는 이유다.

23일 금감원에 따르면, 즉시연금과 관련해 보험사들에 요구하는 일괄구제는 비슷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개별적으로 분쟁 과정을 밟지 않아도 금융사가 한 번에 조치하도록 하는 제도다. 금감원은 전 금융권에 일괄 구제 제도를 올해 하반기 중 도입한다. 즉시연금 문제에 일괄 구제를 시범적으로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보험업계도 애초에 약관이 미흡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고의로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데 이제 와서 보험사들에 일방적으로 막대한 돈을 토해내 책임지라는 것은 무리라고 항변한다. 업계 안팎에선 과거 약관을 검토·승인한 금융감독당국 역시 책임이 무겁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해 자살보험금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즉시연금 논란에서도 다수 계약자의 이익 침해, 배임 이슈도 등장한다. 위법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금감원의 요구로 안 줘도 될 돈을 토해내면 다른 계약의 보험료 부담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등은 주식시장 상장사들은 주주들이 경영진을 상대로 배임 혐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지난해 자살보험금 국면에서 대형 생보사들은 막판까지 배임 소지를 들어 버텼으나, CEO 및 영업정지 징계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고 판단하고 투항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사실상 사업비 등을 전혀 떼지 말고 보험 계약을 운용하라는 금감원 논리는 보험의 기본 원리와 어긋난다"며 "과거 약관 심사를 한 금감원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냐"고 항변했다. 업계 일각에선 소송전까지 불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오지만, 실효성이 없어 실제 소송까지 가긴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금감원이 각종 제재 권한을 쥐고 있어서다. 자살보험금 사태 때도 대법원판결과 금감원의 요구가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법과 별개로 감독 당국의 칼에 금융사들은 현실적으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특히 윤석헌 금감원장은 최근 첫 언론브리핑에서 '종합검사 제도 부활'을 꺼냈다. 보험사들이 현재 금감원의 요구에 반발하고 있지만 결국은 수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금감원 관계자는 "책임 여부를 떠나 잘못을 지적하고 할 일을 한다는 것이 윤석헌 원장을 비롯한 우리의 입장"이라며 "즉시연금 미지급 건에 일괄구제를 적용하도록 보험사들을 지도하고, 소비자 보호 취지에 어긋나는 사례에 엄정히 대응한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선 이번 논란을 금감원의 대형 금융회사 길들이기의 한 사례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국과 금융사들이 갈등을 반복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소비자 보호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결 구도로 가기보다는 부실 약관이라는 근본적 병폐를 뜯어고치는 차분한 논의가 필요한데 매번 진흙탕 여론전으로만 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eri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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