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여성 8명 몰카 찍었는데…法 "짧은 치마로 안 보여" 무죄

버스·정류장·도로서 12번 몰카…사기 혐의만 '유죄'
'몰카 처벌' 요구 확산하는데…들쑥날쑥 판결 여전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2018-06-03 07:00 송고 | 2018-06-03 19:55 최종수정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여성 8명의 다리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시내버스나 버스 정류장, 거리를 오가며 치마 입은 여성들을 12번이나 촬영한 혐의는 인정됐지만, 재판부가 "짧은 치마로 보이지 않고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0단독 김병만 판사는 사기·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된 대학생 송모씨(21)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하지만 송씨에게 추가로 적용된 성폭력범죄특례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송씨는 네이버 '중고나라'에 허위 판매글을 올리고 피해자 27명으로부터 3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와 보이스피싱 조직의 인출책으로 활동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송씨는 사기 혐의와 별개로 지난해 4월부터 두 달 동안 시내버스와 버스 정류장, 도로변을 돌아다니며 여성 8명의 다리와 허벅지를 몰래 촬영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송씨가 시내버스 좌석에 앉아 있는 여성의 허벅지를 몰래 찍거나 버스 정류장, 거리에서 여성의 다리를 촬영하는 등 총 12번의 몰카를 찍었다고 판단했다. 송씨는 주로 무릎 위 허벅지 부분까지 올라가는 치마를 입은 여성만 골라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판사는 송씨의 사기 등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형을 선고했지만 몰카 행각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몰카를 찍은 사실은 명백하지만 여성의 전신을 찍었고,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이 들 정도로 노출이 심해 보이지 않다고 본 것이다.

김 판사는 "몰카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인지'를 객관적으로 따져야 한다"며 "촬영 의도·경위·장소·각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판사는 "노출이 심한 짧은 치마로는 보이지 않는다"며 "비록 여성들의 다리에 초점을 두고 촬영하기는 했지만 육안으로 통상적인 방법을 통해 볼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게 촬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송씨가 여성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촬영해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은 맞다"면서도 "이 사진들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며 무죄 선고 취지를 밝혔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몰카 처벌' 요구 높아지는데…판결은 들쑥날쑥

몰카 피해자가 다수이고 증거까지 명백하더라도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6년 대법원은 지하철 안에서 49건의 '몰카'를 찍고 여성을 따라 엘리베이터까지 들어가 신체부위를 몰래 촬영한 유모씨(29)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씨가 몰카를 찍은 것은 명백했지만, 가슴 부위를 강조하거나 윤곽선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지난달 홍익대학교 회화과 수업 도중 남성 누드모델의 나체를 몰래 찍어 '워마드'에 유포한 여성 모델 안모씨(25)가 구속기소되면서 여성들이 대규모 시위를 여는 등 '몰카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다.

하지만 몰카 범죄의 처벌 요건인 '성적 욕망'과 '수치심 유발'의 기준이 모호해 재판부에 따라 판결이 천차만별로 갈리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여성의 동의 없이 촬영했더라도 '전신'을 촬영했다면 죄가 성립되지 않지만 가슴 등 은밀한 신체부위를 부각했다면 죄가 성립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수 있다.

검찰의 기소율도 덩달아 낮아지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카메라이용촬영 혐의 기소율은 2012년 69.7%에서 2016년 41.73%로 28%p 가까이 줄었다.

지난달 18일 경찰청이 '여성악성범죄 집중단속 100일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몰카 범죄' 근절에 나섰지만 정작 애매한 법 규정과 들쑥날쑥한 판결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실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dongchoi89@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