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양승태, 대법원 법관 뒷조사…"불이익·리스트는 발견 안 돼"(종합)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발표…"상고법원 추진 몰두, 수단·방법 안 가려"
주요사건 '靑교감' 전략…"돌출 판결 안 나오도록 물밑 조율"

(서울=뉴스1) 최동순 기자 | 2018-05-26 02:05 송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2017.9.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2017.9.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비판적 판사들의 성향 등을 파악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특정 재판과 관련해 담당 법관에게 불이익을 줄 것인지 검토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확인됐다.

다만 특정 판사들의 리스트를 작성해 조직적·체계적으로 인사상의 불이익을 줬다고 인정할 만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25일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9시40분까지 대법원에서 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별조사단은 이른바 '사법 블랙리스트' 파일이 담긴 것으로 의심받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법원행정처 심의관 2명 등의 컴퓨터에서 3만5633개의 파일을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의 동향과 성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내용의 파일들이 존재했음이 확인됐다. 하지만 특별조사단은 이들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이나 인사권 남용으로 볼만한 자료나 정황은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수직적 사법행정 등에 비판적 목소리를 낸 국제인권법학회 내 소모임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이하 인사모)에 대한 견제 전략도 추가로 드러났다. 법원행정처는 인사모와 관련해 2015년 8월~2016년 3월 기획조정실 심의관 및 인사총괄심의관실을 동원해 대응반안을 마련했으며, '인사모의 자연 소멸'을 목표로 한 로드맵이 담긴 문건도 발견됐다.

국제인권법학회 학술대회를 앞둔 지난해 2월 법원행정처가 공지한 '중복가입 연구회 탈퇴조치'도 법원 내 전문분야연구회 가운데 가장 늦게 설립된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수가 가장 많이 감소되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고 특별조사단은 결론내렸다. 특별조사단은 이같은 혐의가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으나, 형사책임을 묻는 적극적 조치로 나아가기에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과 관련해 특정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줄지 여부를 검토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드러났다.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발령행위를 대법원 판례와 달리 고의·과실에 의한 위법행위로 판단,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의 재판장과 관련해 당시 법원행정처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서 직무윤리 위반의 가능성 존재"한다며 대책 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조사단은 "재판의 결과를 두고 담당 판사에 대한 불이익을 검토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사법행정권 남용"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징계절차가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라 검토하는 수준이었고 관련해 진행됐던 연구도 대법원 판례 위반에 대한 징계에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니었다고 특별조사단은 설명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2017.9.1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2017.9.13/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해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을 시도·검토한 정황들도 나왔다.

임종헌 전 차장이 2015년 11월19일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는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이라고 쓰여있다.

특히 "사법부 최대 현안이자 개혁이 절실하고 시급한 상고법원 추진이 BH의 비협조로 인해 좌절될 경우 사법부로서도 더 이상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며 "단호한 어조와 분위기로 민정수석(당시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일정 정도의 심리적 압박은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또한 "BH 국정운영기조를 고려하지 않는 독립적, 독자적 사법권 행사 의지 표명"을 '압박카드'로 명시하며 "그동안 사법부가 VIP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한다고 적었다.

특별조사단은 "임 전 차장이 정부에 우호적 판결이 있도록 협력해 왔고, 비우호적인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조율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설령 협력과 압박카드 활용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다더라도 부적절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문건에서는 'VIP의 세월호 합동분향소 조문 장면이 연출됐다는 보도에 대해 정정보도를 명한 판결' 등을 '최근 관심 판결'로 분류하고, "BH측의 입장을 최대한 경청하는 스탠스"를 우호적 관계 유지 방안으로 제안했다. 2013년 12월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과 관련해서는 청와대가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고민을 잘 헤아리고 이를 십분 고려해 준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내용의 문건이 발견됐다.

이밖에 특별조사단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심 판결을 전후해 임종헌 전 차장이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통화하면서 판결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차원의 대화를 나눈 사실은 있다고 밝혔다. 또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점 등을 법리적 측면에서 분석한 보고서를 상고심 대법원에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특별조사단은 이 보고서가 원 전 원장의 상고심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사법행정 담당자가 가진 시각이 소송이 아닌 경로를 통해 재판부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특별조사단은 "대법원장 임기 내에 달성할 최고 핵심과제로 추진된 상고법원 입법 추진 과정에서 목표 달성에만 몰두해 수단과 방법의 적절성에는 눈 감아 버렸다"며 "이는 헌법이 공정한 재판의 실현을 위해 선언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으로서 크게 비난받을 행위"라고 총평했다.

다만 조사결과 드러난 사법행정권 남용 사례는 뚜렷한 범죄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 형사상 조치는 직접 취하지는 않기로 하고, 공직자윤리위원회, 법원감사위원회, 전국법관대표회의 등의 의견을 들어 조치할 것 제안했다. 또 △사법부 관료화 방지책 △사법행정 담당자의 실체적 규범 마련 △재판 독립 침해시 시정 장치 마련 등 방지 대책을 제안했다.

특별조사단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사법부 안팎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 엄정한 조치를 취하는 한편, 제도개선을 통해 사법부 내부의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국민을 위한 사법' '좋은 재판'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dosool@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