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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내놓고 달린다"…택시기사 '주폭'에 무방비 노출

취객에 목적지 묻다 사망, 변상 요구하다 의식불명
기사들 "서비스 개선 노력 중…서로 배려했으면"

(서울=뉴스1) 이철 기자 | 2018-05-13 07:00 송고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노모씨(57)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강남구 청담동에서 승객을 태워 용인으로 가던 중 분당-수서간도시고속화도로에서 갑자기 승객이 노씨를 수차례 발로 걷어찼다. 차일 때마다 택시는 좌우로 휘청거렸지만 노씨는 간신히 핸들을 붙잡고 차를 가장자리로 운전해 세웠다. 그는 "1차선이었다면 중앙분리대에, 3차선이었다면 벽에 부딫혔을탠데 2차선이라 다행이었다"며 "경찰에 신고해 현재 검찰로 사건이 넘어갔지만 이후 피의자와 한차례 만난 것을 빼고는 어떠한 사과나 합의 전화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택시기사들이 승객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특히 운전 중에 일어나는 폭력의 경우 자칫 교통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기사들은 승객들 대부분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같은 일을 저지른다고 설명한다. 승객들이 쉽게 흥분하는 만큼 최대한 대응하지 않으려 하지만 갑자기 폭행을 당해도 손을 쓸 수가 없다는 설명이다.

◇목 조르고 때려 사망까지…공포에 떠는 기사들

택시기사들은 이같은 폭행 사건이 비일비재하다는 입장이다. 손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어깨에 발길질을 하는 경우, 뒤에서 목을 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씨는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는 기사들은 주간조보다 차량이 적고 더 많은 손님을 태울 수 있는 야간조를 선호하는 편"이라며 "하지만 승객들 대부분이 취한 상태로 택시에 탑승하기 때문에 시비가 많이 붙고 폭행을 당하는 일도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달 말에는 70대 택시기사가 목적지를 되묻는다는 이유로 30대 승객에게 폭행을 당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10일에도 술에 취해 택시에 구토를 한 20대 남성이 변상비용을 요구하는 60대 택시기사를 때려 의식불명에 빠뜨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른바 '묻지마 폭행'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에는 운전중인 택시기사를 상대로 "택시운전사들은 사기꾼이니까 죽여버려야 한다"며 폭행한 50대 남성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천영호 서울개인택시조합 강남지부장은 "택시기사가 사망에 이른 것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며 "강남지부만 해도 승객에게 폭행을 당해 도움을 청하는 기사들의 민원이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두대 맞았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택시기사들도 많다"며 "신고해도 형사처벌이 대부분 벌금으로 그치는데다 자신이 받은 피해를 보상받으려면 다시 지루한 민사 소송을 제기해야하는 등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 그냥 폭행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들이 아닌 택시에 손해를 입히는 것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승객을 이미 태웠거나 예약콜을 받고 손님을 태우러 가다가 다른 승객이 자신을 태우지 않았다고 택시에 발길질을 하는 것은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이외에 시비가 붙어 문을 강하게 여닫거나 문짝을 벽, 가드레일 등에 부딪히게 하는 경우도 많다.

노씨는 "정지 신호라도 걸려서 정차하면 손님들이 택시에 발길질을 하거나 주먹으로 치는데, 이 때 차를 세우고 항의하면 무조건 손해"라며 "내려서 (승객에게)따지고 싶지만 이미 취해서 자제력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봉변을 당할까봐 그냥 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토로했다.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2017.10.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이용하고 있는 모습. 2017.10.19/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언어 폭력은 일상"…악몽같은 '다산콜 신고'

술에 취한 승객이 반말이나 욕설을 하는 것도 택시기사들 입장에서는 곤혹스럽다. 특히 일방적으로 피해를 받았는데도 오히려 승객이 민원신고를 하면서 이중고를 겪는 경우도 있다.

천 지부장은 "물론 택시기사가 불친절하거나 문제가 있다면 손님들은 당연히 다산콜센터나 경찰에 신고를 해야한다"면서도 "하지만 손님이 먼저 반말이나 욕을 하더라도 하루하루 돈을 벌어야 하는 기사들은 꾹 참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취한 손님이 반말을 하거나 욕을 하면 시비를 피하려 대꾸를 안하는데 이게 또 기분이 나쁘다며 다산콜센터에 신고를 한다"며 "네비게이션 안내대로 가는데도 요금이 평소보다 많이 나오거나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았다며 폭언을 하는 등 피해사례도 다양하다"고 토로했다.

승객이 다산콜센터에 택시를 신고하면 콜센터는 해당 내용을 서울시 교통불편신고 조사팀으로 이관한다. 이후 택시가 소속된 구청으로 민원이 보내진다. 민원이 접수된 택시 운전사는 서울시나 구청을 방문해 경위서를 내야 한다.

천 지부장은 "신고가 접수되면 구청에서 집으로 경위서를 보내는데 빈칸에 내 입장을 적어서 직접 (구청에)가져다 줘야 한다"며 "사건 입증의 책임이 택시기사에게 있어 민원 처리 시 시간적·금전적으로 피해를 받지만 허위신고를 한 승객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택시기사들은 승객의 무리한 신고를 다산콜센터에서 모두 받아주는 것도 문제라는 입장이다.

천 지부장은 "손님을 태웠는데 '미국에 가자'고 해서 안 간다니까 다산콜센터에 신고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럴 때도 소명을 우리가 해야한다"며 "손님이 길에서 손이 아닌 발을 슬쩍 들어 그냥 지나쳤는데 승차거부했다고 신고당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택시기사들도 서비스 정신을 강화하고 이미지를 바꾸려 노력하는 중"이라며 "승객과 택시기사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승객들도 조금은 기사들을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편 지난해 다산콜센터에 접수된 서울 택시 민원은 총 1만8646건을 기록해 전년 대비 전년 2만783건 대비 10.3% 감소했다. 2013년 3만7870건과 비교하면 절반 이상 감소한 수치다.


ir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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