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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청원 16만건 넘는데 국회청원은 겨우 138건…기준 없고 복잡

2년간 청원심사소위원회 8차례…89%는 잠자고 있어
"청와대로 모든 분야 청원 몰리는 상황도 우려"

(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 | 2018-04-14 09:00 송고
국회 본회의장./뉴스1 DB © News1 안은나 기자
국회 본회의장./뉴스1 DB © News1 안은나 기자

2017년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열렸다. SNS 및 포털 아이디만 있으면 청원을 누구나 청원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답변 조건도 간단했다.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하겠습니다." 청와대가 밝힌 답변 기준이었다. 개설한 지 1년도 안 돼 현재(2018년 4월) 16만 건 이상의 청원이 접수됐다. 답변이 완료된 청원은 18건이다.

청와대에만 청원제도가 있는 건 아니다. 국회에도 청원제도가 있다. 13대 국회부터 시작한 입법청원제도다. 오래된 제도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 19대 국회에선 227건의 입법청원이 접수됐다. 이 중 177건은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본회의까지 올라가 가결된 청원은 2건이었다.
반환점을 눈앞에 둔 20대 국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8년 4월까지 접수된 입법청원은 138건이다. 이 중 각 상임위에서 논의된 건은 17건, 본회의까지 올라가 가결된 건은 3건이다. 입법청원의 89%가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의원과 직접 연락해야…의원들은 '무관심'

국회 입법청원이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관문은 국회의원 소개조항이다.
국회청원심사규칙에 따르면 입법청원은 국회의원의 소개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서명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국회의원 소개 없이는 청원이 불가능하다. 문제는 일반적인 시민이 국회의원과 직접 연락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제로 입법청원은 개인보다 시민단체 등이 하는 경우가 많다.

현역 의원들의 관심도도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입법청원에 의원이 답해야 하는 강제적인 기준도 없고, 꼭 소개해야 한다는 조항도 없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통계를 보면 20대 국회에서 2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입법청원을 상임위에 소개한 국회의원은 절반 수준인 148명이다. 그마저도 공동으로 이름을 올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2번 이상 소개한 의원만 압축하면 54명으로 확 줄어든다. 10회 이상 소개한 의원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20회)이 유일하다.

박 의원은 "국회에서 청원이 무겁게 다뤄지지는 않는 것 같다. 청원을 가지고 고민하는 의원들은 많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캡처) © News1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캡처) © News1

◇청원 심사하는 소위 2년간 총 8번 열려

일단 국회의원을 통해 청원을 넣었다고 해도 본회의까지 가는 길은 멀다. 대부분의 청원은 18개로 구성된 각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가 폐기된다.

국회청원심사규칙에 따르면 입법청원이 상임위에 안건으로 상정되는 방법은 2가지다. 각 상임위 별로 구성된 '청원심사소위원회'(청원소위)를 열어 심사 하거나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에 상정된 법률안과 관련이 있는 청원의 경우 법안소위에서 같이 심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청원소위를 열거나 법안소위에서 심사를 해야 하는 기준이 없다 보니 현실적으로 청원 심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입법청원만을 별도로 심사하는 청원심사소위원회도 회기와 관계없이 활동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사실상 거의 열리지 않는 상황이다. 20대 국회 18개 상임위원회에서 지난 2년 가까이 청원소위가 열린 횟수는 단 8회에 불과하다. 절반이 넘는 상임위는 청원소위를 1번도 열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청와대 청원과는 다르게 훨씬 많은 사람이 동참한 청원마저도 몇 년째 계류 중인 경우도 있다. '창원광역시 설치 법률제정'은 70만명이 넘는 국민이 청원에 함께했지만 1년 넘게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고, 60만명이 넘게 동참한 학교급식법 개정 요구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청와대로 청원 몰리는 상황도 우려스러워"

국회 입법청원 절차가 복잡하고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 보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청와대 청원으로 국민의 요구가 몰렸지만 그것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까지 무조건 청와대에 얘기하면서 청와대가 전지전능한 입장이 되어버렸다"며 "결국에는 청와대가 무조건 해결할 수 있다는 중앙집중적 사고가 많아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청원이 해결하지 못하는 청원이 많아진다면 전혀 바뀌는 게 없다는 인식이 늘어나게 된다"며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능력이 없어 못 한다는 실망감만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도 "청와대 청원이 분명 긍정적인 기능도 있지만 보이지 않게 청와대 중심 정치로 옮겨가는 부분이 있다"며 "청와대가 모든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는 인식을 주면서 국회는 무기력화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청와대 청원을 보면 청와대 담당이 아닌 분야의 청원도 많이 올라온다"며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 볼 때 정책 혼선이라든지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 News1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 News1

국회 청원은 입법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청와대 청원과는 다르다. 다만 지금보다 활성화된다면 청와대로 몰리는 청원이 적절히 분산될 여지가 있다. 또 국민의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는 대의기구라는 점에서도 입법청원을 정비해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박주민 의원은 "국민들이 효능감을 못 느끼기 때문에 국회 입법청원이 계속 활성화가 되지 않고 청와대로 몰리는 것"이라며 "청원인 수 등에 따라 논의 기간을 한정한다든지, 결과나 과정에 대해 고지하게 해준다든지 하는 부가적 절차 마련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꼭 기존 청원 시스템을 고치는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다. 박 의원은 '국민 발안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언급했다. 국민 발안제란 국민이 직접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는 제도로 지난달 발표된 대통령 개헌안과 일부 정당의 개헌안에도 포함된 개념이다.

박 의원은 국민 발안제를 설명하며 "핀란드는 5만명 이상이 청원에 참여하면 자동으로 법률안 심의가 된다"며 "한국도 그런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의원이 아무리 대표자라 할지라도 국민이 관심 있는 것과 거리가 생길 때도 많다"며 "기존 청원제도를 더 강화하거나 법률안 제출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sewry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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