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잇단 성추행 폭로에 고은은 "안했다"…문단도 '난감'

최영미·박진성 시인 폭로에 고은 "부끄러운 짓 안했다"
"고은, 자신 향한 의혹 구체적으로 해명해야" 목소리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8-03-07 08:02 송고 | 2018-03-07 11:44 최종수정
최영미 시인(왼쪽)과 고은 시인©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최영미 시인(왼쪽)과 고은 시인©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최영미 시인의 '성추행' 폭로 후 침묵을 지키던 고은 시인이 외신을 통해 의혹을 전면 부인하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문단도 난감한 표정이다. 피해자가 주장한 장면을 목격하지 않았다 해도 주장을 물리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에 고 시인이 자신을 향한 의혹을 구체적으로 해명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영미·박진성 시인 "고은 시인 성추행·추태 부렸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달 초 자신의 풍자시 '괴물'과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이 문단 뒷풀이 자리에서 고은 시인을 뜻하는 'En선생'의 옆자리에 앉았다가 성추행당했으며, 1993년~1995년 사이의 어느날 창작과비평사의 망년회에서 En선생이 유부녀 편집자를 괴롭히던 것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지난달 말 동아일보에 원고를 보내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 당시 민족문학작가회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에 En시인이 들어와 의자 위에 누워 자신의 성기를 만지는 추태를 벌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영미 시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후속 폭로는 한동안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5일 박진성 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En 시인의 추행에 대해 증언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해 고 시인의 성추행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박진성 시인의 고은 시인 추행 폭로 글(박진성 페이스북 캡처)

박 시인은 고 시인이 2008년 4월 한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초청강연회 후 뒤풀이에서 술을 마신 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고 적었다. 아울러 "고 시인이 당시 참석자 중 옆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손을 보자고 하더니 손을 만지기 시작했다"면서 "손을 만지다가 팔을 만지고 허벅지를 만졌고, 그 여성은 당황스러워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고 시인은) 여성이 저항하자 무안했는지 자리에서 벌떡일어나 지퍼를 열고 성기를 꺼내 흔들었다"면서 "3분 넘게 흔들던 고 시인은 자리에 다시 앉아 '너희들 이런 용기 있어?'라고 말했다"고 덧붙여 최 시인의 앞선 폭로에 힘을 실어주었다.  

◇고은, 외신 통해 "부끄러운 짓 안했다"

잇단 폭로에 침묵을 지키던 고 시인은 외신을 통해 자신을 변호했다. 고 시인은 영국 언론 가디언의 2일자 기사에서 "나는 최근 의혹에서 내 이름이 거론된 데 대해 유감이며, 나는 이미 내 행동이 초래했을지 모를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 뉘우쳤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몇몇 개인이 제기한 상습적인 비행 비난은 단호하게 부인한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 나는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 진실이 밝혀지고 논란이 잠재워지기를 기다릴 것"이라면서 "하지만 사실과 맥락을 잘 알 수 없는 외국의 친구들에게는 부인과 나 자신에 부끄러운 어떤 짓도 하지 않았음을 밝힌다"고 했다. 

고 시인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영미 시인의 추가폭로에서 배경이 된 단골 주점인 '탑골'의 전 여주인(사장)인 한복희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영미의 글은 있을 수 없는 가공의 소설"이라며 "삭제하기를 바란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 씨는 "그분(고은)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했을지언정, (중략)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 씨는 뉴스1과 통화에서 "최영미 시인의 폭로는 입에 담을 일말의 가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최 시인이 쓴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소설이며 그 글 속에 나를 '술집마담'으로 표현하면서 비하하고 내 실제 성격과 달리 "아유 선생님도"라며 곰살거리는 여우로 표현했다"고 비판했다.  

가디언 기사가 국내에 알려진 4일 오후 다시 최 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괴물에 대해 매체를 통해 한 말과 글은 사실입니다"라며 "나중에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기구가 출범하면 나가서 상세히 밝히겠습니다"라고 짧은 글을 올려 다시 고은 시인의 입장을 반박했다.

최영미 시인의 추가폭로에서 배경이 된 주점 '탑골'의 전 사장 한복희 씨의 반박 글(페이스북 캡처)

◇ 문단 '난감'..."고은 구체적으로 해명해야" 주장도

고 시인의 반박이 강하게 나오며 문단도 난감한 표정이다. 뉴스1이 취재한 시인들 대부분은 고은 시인에 대한 무성한 소문은 들었지만, 고은 시인이 바지를 내리는 정도의 행동까지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시인 A는 "고은 시인이 옆 자리 여성의 손을 만지거나 어깨를 꽉 친다거나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보았다"면서 "하지만 바지를 내리고 그러는 막나가는 행위는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이어 "그렇지만 내가 못보았다고 그런 일이 없다고는 확신을 못하니 매우 혼란스럽다"고 덧붙였다. 
 
시인 B 역시 "고은 시인을 오랫동안 보아왔지만 술을 먹다가 과도하게 신명이 올라 좌중을 휘어잡는 과장된 행동을 할 경우가 있었다"며 "시각에 따라 그것이 추태로 보일 수는 있었겠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인 C는 고은 시인이 "젊은 시절이나 중장년 시절은 잘 모르겠지만 노년에는 술좌석 등에서 우연히라도 젊은 여성이 자신 옆에 앉게 되면 문단 어르신들을 손짓해서 불러 바꿔 앉히곤 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고 시인을 오랫동안 보았지만 그렇다고 24시간 붙어있었던 것은 아니고, 구체적으로 현장을 목격한 이들이 있다고 하니 '고은 시인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고 강력히 나설 수도 없는 상태"라며 난감해했다. 
 
고은 시인 © News1 문요한 기자
고은 시인 © News1 문요한 기자

문학평론가인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고은 시인이 동석한 여성의 손을 만지는 것은 보았어도 그 이상은 목격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김명인 교수는 고은 시인으로 추정되는 'En 선생'의 성추행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의 작품 '괴물'을 실은 잡지 '황해문화'의 주간이다. 

그는 그러나  고은 시인이 외신을 통해 "부인과 자신에게 부끄러운 짓을 한 것이 없다"는 첫 공식 입장을 낸 데 대해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성희롱 등을 한 것이 없다는 의미인지 통념상 그런 일은 있어도 (예술가로서의) 자기 논리에 따라 부끄럽지 않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라면 자신을 향한 의혹을 구체적으로 해명해야한다. 사회규칙이나 상식에 벗어났어도 문인들은 이해한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다면 (자기주장도) 해볼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도 저도 아니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 

문학계 미투운동이 어떤 식으로 이어질까 묻자 시인 D는 "예전에는 '어떤 행동이 문제'라는 것이 학습이 되지 않았던 상태였다"면서 "미투 운동 전에 문단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있어서 당시 대부분 걸러져서 고은 시인 외 유명 문인에 대한 추가 고발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한 문학평론가는 "기억만 가지고 공방하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그런 범죄나 추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ungaungae@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