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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떼이고 성추행까지'…갑질에 우는 청년예술가들

대금 미지급은 '일상'…공연 하루 전 취소 통보도
"예술인들, 문제 공유할 집단·통로 부족"

(서울=뉴스1) 이헌일 기자 | 2018-02-24 07:00 송고 | 2018-02-25 13:34 최종수정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뮤지컬배우 A씨는 2016년 여름 가족뮤지컬을 공연하기 위해 1달 넘게 단원 23명과 연습했다. 제작사와는 2주간 24회 공연을 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제작사는 공연 하루 전날 24회 공연 가운데 8회차가 취소됐으니 다시 계약을 맺자고 통보했다. 계약서에는 문제가 발생하면 제작사가 3주 전에 통보하도록 돼 있지만 제작사는 다음날이 공연인 상황에서 '배째라'는 식으로 요구했다.

# 도예가 B씨는 작품료를 주겠다고 확인서까지 작성했지만 받지 못했다. B씨는 "미술분야에서 미지급 문제는 너무 당연시되고 있다. 반년, 1년 동안 못 받는 것도 흔한 일"이라고 토로했다. 또 한 에이전트에게 작품을 대여해 줬는데 그 에이전트가 B씨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작품을 판매했다. 판매 의사가 없었던 B씨는 회수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 음악감독 C씨는 2015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같은 극단과 연극, 뮤지컬을 제작해 공연했다. 그러나 두 공연 모두 대가를 받지 못했다. 상반기 공연이 끝난 뒤 대표가 대가를 주겠다고 해서 기다렸지만 주지 않았다. 같이 작업했던 연출가가 하반기 공연에 참여한다고 해서 하반기에도 그 극단과 작업했지만 역시 한푼도 받지 못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지난해 문화예술계 '갑질'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진행한 심층인터뷰 사례다.

청년예술인들은 최근 속속 드러나고 있는 성추행 피해 뿐만 아니라 이같이 다양한 '갑질'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22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올 1월까지 문화예술불공정피해상담센터에 접수된 상담은 96건으로 방문상담이 45건, 온라인상담이 51건이다. 이 센터는 서울시가 예술계의 불공정행위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2월 문을 열었다.

상담 내용 가운데 유형별로 대금 미지급 또는 지연 사례가 33건을 차지해 가장 많았다. 계약서 검토 및 자문상담이 25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저작권 침해와 불공정계약 강요가 각각 8건이었고 창작활동 방해 또는 간섭(2건), 예술활동정보 부당이용(1건), 일방적인 계약해지(1건) 사례도 있었다. 다만 최근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성추행 관련 상담은 없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센터가 개관 초기이고 문화예술계 특성상 큰 조직보다는 선후배간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곳이 많다보니 조심스러워 상담건수가 다소 적었던 것으로 추정한다"며 "예술계 프리랜서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등 센터가 다루는 범위를 넓혀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와 같은 목적으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예술인 신문고'에 접수된 신고사례에서도 다양한 피해 유형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하반기부터 지난해 1분기까지 신고된 297건 가운데 불공정 수익분배가 274건으로 가장 많았다. 불공정계약도 15건, 창작활동 부당개입 6건, 정보 남용이 2건이었다.

특히 신고 사례 가운데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는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또 미지급 사례 중 다수가 계약서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했고 지인을 통해 활동에 참여했을 때 많이 벌어졌다. 이런 사례 가운데는 지인이 그 창작활동에 직접 관계하기보다는 또다른 사람으로부터 창작활동에 참여할 예술인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계약서도 없이 인맥을 통해 창작활동이 진행되는 관례상 맹점이 드러난 셈이다.

특히 최근에는 이윤택 연출가, 고은 시인 등 거장으로 꼽히는 인사들이 성추행 의혹에 휩싸이며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힘없는 청년예술가들이 다양한 구조적 갑질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셈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측은 "심층인터뷰 당시 예술인들이 인터뷰가 끝나고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 중 하나가 '인터뷰를 수락했을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했지만 끝나고 나니 힐링이 된 것 같다'였다"며 "이는 예술인들이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있고 이 문제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나 집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hone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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