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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73년전 오늘 죽음으로 시인의 '자화상' 완성하다

시와 자료로 바라본 윤동주 죽음의 의미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8-02-16 08:51 송고
윤동주 시인/뉴스1DB

'그 길로 시체실로 찾아가 동주를 찾았다. 관 뚜껑을 열자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요?'라고 동주는 내게 호소하는 듯했다. 사망한지 열흘이 되었으나 큐우슈우 제대(九州帝大)에서 방부제를 써서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일본 청년 간수 하나가 따라와서 우리에게 하는 말, "아하, 동주가 죽었어요. 참 얌전한 사람이……죽을 때 무슨 뜻인지 모르나 외마디 소리를 높이 지르면서 운명했지요" 하며 동정하는 표정을 보였다.(윤영춘의 회고글 '명동촌에서 후쿠오카까지' 중에서)

1945년 2월16일 금요일 오전 3시 36분 시인 윤동주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부터 73년전, 조국의 광복을 불과 여섯 달 앞둔 날 어두운 감방 안에서 해가 졌다. 윤동주 시인의 아명은 '해처럼 빛나라'는 뜻의 '해환'이었다. 
윤동주의 사인은 '뇌일혈'이라고 기록되었지만, 당시에 규슈(큐우슈우) 제대에서 바닷물을 이용한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주장이 1980년 일본에서 나오면서 그가 일본의 생체실험 희생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의 전시 행정실록에 따르면 윤동주 시인이 수감된 후쿠오카 형무소에는 1943년 64명, 1944년 131명, 1945년에는 259명이 옥사해 대규모 생체실험이 이뤄졌음을 짐작하게 했다. 

윤동주의 당숙이자 가수 윤형주의 아버지면서,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의 최후를 본 유일한 증언자인 윤영춘의 기록에서도 이는 뒷받침된다. 윤영춘은 윤동주가 옥사했다는 부음을 듣고 사망 10일 후 형무소를 찾아 '죽은 동주는 후에 찾기로 하고, 산 사람부터 먼저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몽규를 먼저 찾는다. 

그날 면회를 위해 복도에 들어서자 푸른 죄수복을 입은 20대 한국 청년 근 50여명이 주사를 맞으려고 시약실 앞에 죽 늘어선 것을 본다.
'몽규는 반쯤 깨어진 안경을 눈에 걸친 채 내게로 달려온다. 피골이 상접이라 처음에는 얼른 알아보지 못하였다. 어떻게 용케도 이렇게 찾아왔느냐고 여쭙는 인사의 말소리조차 저세상에서 들려오는 꿈 같은 목소리였다. 입으로 무어라고 중얼거리나 잘 들리지 않아서 "왜 그 모양이냐"고 물었더니, "저놈들이 주사를 맞으라고 해서 맞았더니 이 모양이 되었고, 동주도 이 모양으로……"하고 말소리는 흐려졌다.'(윤영춘의 회고글 '명동촌에서 후쿠오카까지' 중에서)

윤동주 시인 장례식(사진 출처: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사업회  웹사이트)
윤동주 시인 장례식(사진 출처: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사업회  웹사이트)

윤동주 시인의 장례식은 1945년 3월6일 중국 용정시 명동촌 자택에서 치러지고 윤동주는 교회묘지에 묻힌다.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그날 치러진 장례식에 대해 '그의 장례는 3월 초순(날짜가 확실히 기억되지 않는다) 눈보라가 몹시 치는 날이었다. 집 앞뜰에서 거행된 장례식에서는 연희전문 졸업 무렵 교내 잡지 '문우'에 발표되었던 '자화상'과 '새로운 길'이 낭독되었다.(중략) 단오 무렵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서둘러 묘비를 '시인 윤동주지묘(詩人 尹東柱之墓)'라고 크게 해 세웠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서 처음으로 시인이란 일컬음을 받은 것이다'라고 책 '윤동주의 생애'에 썼다. 

윤동주 시인 유품/뉴스1DB 
윤동주 시인 유품/뉴스1DB 

윤동주 전문가인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그의 책 '처럼'에서 윤동주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판결문 문장을 인용하면서 윤동주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면을 소개한다. 김교수는 '일반적으로 윤동주의 이미지는 강한 독립투사와는 거리가 먼 듯 느껴진다. 그러나 '윤동주에 대한 판결문'을 읽어보면 조금 다르다'면서 윤동주가 징병제를 무력 봉기에 역으로 활용하려 했다고 판결문에 써있다고 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둘 다 무장투쟁을 주장했던 독립운동가이자 명동서숙의 설립자 김약연의 제자이기에 그런 생각을 가졌을 것으로 짐작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윤동주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완성이었으며,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영웅의 비극적 죽음은 명예가 되듯이 그의 죽음은 시인의 명예, 남은 자의 긍지로 부활했다고 했다. 매년 2월16일은 '살리는 죽음'이 다가오는 명예와 '긍지의 날'이다. 그날은 '윤동주'라는 텍스트가 고전으로 완성된 날'이라고 오늘, 2월16일을 기렸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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