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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편의 오디오파일] 오디오 갖고 놀기…헤드폰·케이블 편

(서울=뉴스1)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 2018-02-18 09:01 송고
젠하이저 모멘텀과 새 케이블(김편 제공)
젠하이저 모멘텀과 새 케이블(김편 제공)

지금까지 많은 헤드폰과 이어폰을 들어봤다. 포칼의 ‘유토피아’, 오디지의 ‘LCD-4’, 울트라손의 ‘트리뷰트7’, 젠하이저의 ‘HD800’ 같은 고가의 헤드폰부터 스탁스의 ‘SR-L500’, 닥터드레의 ‘비츠 와이어리스’, B&W의 ‘P3’, 인케이스의 ‘소닉’, AKG의 ‘AK120’ 등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중저가 헤드폰, 그리고 보스의 ‘IE2’나 몬스터의 ‘그래터튜드’, 애플의 ‘이어팟’ 같은 이어폰까지 그야말로 잡다하게 들었다.

하지만 지금 현재 필자가 갖고 있는 헤드폰은 딱 2개뿐이다. 2013년 3월에 종로 교보문고 지하매장에서 52만원을 주고 산 젠하이저의 ‘모멘텀'(Momentum), 2014년 마지막날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AKG의 블루투스 헤드폰 ‘K845BT’다. 이중에서 ‘K845BT’은 그 뛰어난 음질과 착용감에도 불구하고 아주 가끔씩, 자전거를 탈 때나 쓰는 정도다. 이어폰은 아예 안쓰고 있다.  
‘모멘텀’은 18옴 임피던스에 주파수응답 특성은 16Hz~22kHz, 최대음압(SPL)은 110dB, 왜율(THD)은 0.5%를 보이는 밀폐형 오버이어 헤드폰이다. 무게는 190g. 어느 특정 대역을 강조하는 일 없이 전체적으로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플랫'(flat)한 소리를 들려준다. 귀에 닿는 폭신폭신한 이어패드는 영국산 가죽이라는데 보드랍고 편안한 착용감은 두고두고 칭찬할 만하다.

새 케이블(위)과 순정케이블 굵기 비교(김편 제공)
새 케이블(위)과 순정케이블 굵기 비교(김편 제공)

며칠 전 이 ‘모멘텀’의 케이블을 바꿨다. 순정 케이블이 딱히 단선되거나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5년 가까이 되면서 변화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마존에서 새로 구매한 케이블은 중국 뉴판타지아(NewFantasia)라는 제작사에서 만든 ’모멘텀’ 전용 업그레이드 케이블이다. 선재는 무산소동선(OFC)이며, 피복은 케이블 엉킴방지를 위해 나일론을 정교하게 꼬았다. 직경은 4mm, 길이는 1.2m, 무게는 18.1g이다. 순정케이블과 비교하면 더 굵고, 더 짧으며, 더 무겁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잘 안꼬인다.

새 케이블(아래)과 순정케이블 잭 비교(김편 제공)
새 케이블(아래)과 순정케이블 잭 비교(김편 제공)

만듦새에서 가장 놀란 것은 잭(jack)의 품질이다. 소스기기에 꽂는 3.5mm 수컷 잭의 경우 순정케이블 잭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고급스럽다. 재질도 플라스틱에서 알루미늄으로 바뀌었다. 헤드폰에 들어가는 2.5mm 잭 역시 알루미늄 하우징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었다. 이 케이블 가격이 12달러(1만3000원), 운송료 포함해 총 구매가격이 17달러(1만9000원)인 점을 감안하면, 디자인과 품질은 그야말로 ‘가성비 갑’이다.
소리는 어땠을까. 사실, 이 대목이 가장 궁금했다. 순정과 업그레이드 케이블간에 유의미할 정도로 음질 차이가 있을까. 그리고 아무리 업그레이드 케이블이라지만 2만원도 안되는 케이블이 무슨 마법을 펼치는 게 가능하기는 할까. 호기심과 우려가 계속되지만 역시 결론은 하나다. ‘직접 들어보자’. 에이징이 전혀 안된 상태이긴 하지만 전기밥을 처음 먹였을 때의 그 서먹함과 생경함, 부자연스러움까지도 ‘즐기자’.

젠하이저 모멘텀과 새 케이블(김편 제공)
젠하이저 모멘텀과 새 케이블(김편 제공)

필자의 스마트폰(LG V10)에 꽂아 첫 곡으로 로베타 플랙의 ‘킬링 미 소프틀리 위드 히즈 송'(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들었다. 타이달(Tidal)의 스트리밍 음원이다. 첫느낌은 순정케이블 때보다 귀가 편안해 하는 소리라는 것. 잔향감은 더 살아났고, 악기수는 더 늘어났으며, 베이스의 펀치력과 무게감 역시 상승했다. 찰랑거리는 금속성 퍼커션의 존재감도 확실히 더 늘었다. 사운드스테이지만 빼놓고는 거의 모든 항목에서 점수가 조금씩 상승했다. 케이블의 저항성분이라 할 임피던스가 낮게 관리됐음이 분명하다.

커티스 풀러의 ‘오스칼립소'(Oscalyso)에서는 뒤통수쪽에서 미니어처 스타일의 가상 무대가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각 재즈 악기의 이미지와 정위감도 상급이다. 그만큼 케이블의 해상력이 기대 이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드럼 림(rim·가장자리) 플레이의 경쾌한 질감과 풋워크가 돋보이는 것을 보면, ‘고역대 질감과 표현력의 상승’이 이번 케이블 교체에 따른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싶다. 이러다보니 전체적으로 현장감과 악기의 리얼리티가 더 살아나는 것 같다.

재클린 뒤 프레의 명곡 ‘엘가의 첼로 협주곡’은 AB테스트(두 가지 이상의 것 중 최적을 선정하기 위해 시험하는 방법)를 해봤다. 계속해서 새로 교체한 케이블로 들어보면 첼로 현과 활의 촉감, 그 마찰음의 열기가 생생히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상당히 뒤쪽에서 아득하게 들린다. 예전 순정케이블로 바꿔보니, 조금 전까지 그렇게나 혈기방장하고 자유롭게 뛰어놀던 그 음들이 아니다. 갑자기 조심스러워졌고 신중해진 것이다. 깊은 맛, 아기자기한 맛, 단단한 맛, 모두가 휘발됐다. 가상의 무대는 약간 평면적으로 돼버렸다.

‘생각보다 변화가 큰데’ 싶어 대편성곡을 AB테스트 해봤다. 피에르 불레즈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의 ‘불새’ 중 ‘카세이 무리들의 지옥의 춤’인데, 아뿔사, 이 곡은 새 케이블이 거의 낙제점을 받았다. 순정케이블로 듣다가 새 케이블로 바꾼 순간, ‘음량’ 자체가 너무나 줄어들었다. 순정케이블의 고역대가 시원스럽게 뻗지 못하는구나 싶었지만, 새 케이블에서는 이같은 음질 분석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소리가 시원하게 나오질 않았다. 맞다. 그동안 간과했던, 아니 무의식적으로 지나치려 했던 ‘몸이 덜 풀린’ 소리가 마침내 민낯을 보이고 만 것이다.

여기까지다. 새 케이블의 음질 업그레이드 순간도 확인했고, 에이징 부족으로 인한 생경하고 딱딱하며 의기소침한 순간도 확인했다. 흔히 케이블은 최소 72시간 에이징 후에 들어야 진짜 제 실력이 나온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같은 주장에 찬동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중고를 사는 게 낫다. 신품을 사는 이유는 바로 처음부터 ‘나만의 소리’를 만들고자 함이 아닌가. 초반 몸이 덜 풀린 소리마저 오랫동안 기억에 담아두고 싶은 이유다. 더욱이 지금은 돈자랑 수준이 아닌, 그저 ’2만원의 행복’ 그 자체가 아닌가. 이래서 오디오가 재미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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