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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대상 법관들의 공통점은?…상고법원에 방해되면 '사찰'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상고법원 설치가 숙원사업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8-01-30 18:55 송고 | 2018-01-30 18:57 최종수정
양승태 전 대법원장/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중 법원행정처가 법관을 사찰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법관사찰 문건을 살펴보면 사찰대상 법관들에게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공교롭게도 양승태 대법원이 추진하는 '정책' 또는 '인사'에 반대입장을 취했다는 점이다.
특히 상고법원 설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판사들이 사찰대상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 상고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라고까지 불리던 제도였다는 게 법원 내부의 정설이다.  

◇대법관 증원이나 사실심 충실화 대신 상고법원 설치 추진

상고법원은 상고심(3심) 사건 가운데 비교적 경미하고 단순한 사건을 대법원 대신 처리하는 법원을 말한다.

상고심에 사건이 몰려 대법관들이 업무과중을 호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상고법원을 설치하기보다 국민들이 사실심(1·2심)에 승복해 상고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사실심을 충실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사실심 충실화 또는 '대법관 증원'보다 상고법원 설치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지만 사실상 대법원장의 '보좌기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법원행정처 역시 양 전 대법원장의 뜻에 따라 상고법원 설치를 '지상과제'로 설정했다는 후문이다.

전문가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의 권위유지에 방점을 뒀기 때문에 '상고법원' 설치에 매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들이 1·2심 판결에 승복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1·2심 판결이 진행되는 방식 등에 대한 불신과 불만족 때문"이라며 "상고사건 적체 문제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실심 충실화"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사실심 충실화만으로 소송증가 추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면 그때는 대법관 증원이 답"이라며 "사건이 많아 문제라면 가장 좋은 해결방법은 바로 사건을 처리할 법관 수를 늘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럼에도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에 역점을 뒀던 것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대법관 수가 증가하면 현행 14명의 대법관이 누리는 위상이 낮아질 것으로 염려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상고법원을 설치하면 상고법원 판사라는 고위법관직이 더 늘어나게 되는 점도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에 역점을 뒀던 이유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국민중심 관점에서 사법정책을 펼친 것이 아니라 법원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정책방향을 설정했다는 것이 법원 안팎의 시각이다.  

일선에서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은 양 전 대법원장이나 고위직 법관들과 달리 '고위법관직 신설'에는 관심이 크지 않다. 반면 국민들과 직접 부딪히면서 재판을 진행하기 때문에 재판제도 개선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안에 더욱 관심이 많다. 일선법관들이 생각하는 개선방안과 대법관의 권위유지에 방점을 둔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정책 추진 방향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대법원장과 일선판사들이 추구하는 정책방향이 달라 법원 내에서 대법원장의 뜻과 다른 목소리가 나올 경우 정책 추진에 문제가 생길 여지도 있다. 이 때문에 양 전 대법원장과 휘하의 법원행정처는 자신들이 추진하던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법관과 학술모임을 '사찰'하고 '탄압'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 행정처 심의관이 국회입법조사처까지 접촉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를 강하게 추진하면서 사실상 대법원장의 '보좌기구'로 전락한 법원행정처도 '상고법원' 설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양 전 대법원장 재직 당시 법원행정처 고위직뿐만 아니라 정책실 소속 심의관까지 상고법원 설치 법안의 국회통과를 위해 국회의원과 국회의원 보좌진에게 사실상 '입법로비'를 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원행정처 소속 심의관이 국회입법조사처 소속 조사관들에게까지 접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국회의원이 특정 현안에 대한 법률적 자문을 요청하면 국내 연구결과와 해외 입법례를 토대로 의견을 내는 곳이다. 국회의원이 제도도입 등을 할 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양 전 대법원장의 뜻에 따라 상고법원을 지상과제로 여기고 있던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법관들을 주요 사찰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법관사찰 문건에 등장하는 차성안 전주지법 군사지원 판사의 경우 상고법원 설치 대신 법관수를 늘려 사실심(1·2심)을 충실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법원 내부 전산망에 올렸다가 사찰 대상이 됐다.

아울러 지난해 3월 법관 뒷조사 문건 의혹이 제기된 이후 고위직 법관들을 중심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의 '정치성향'이 거론돼 왔다. 법관들이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 법원 내에서 정치세력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법원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내부관리'라는 취지의 항변을 한 것이다.  

이종수 교수는 "이번 추가조사위의 조사결과로 확인된 문건들에 따르면 법원 내 최대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의 '정치성향'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며 "다만 '정치성향'을 이유로 탄압과 사찰 대상이 됐던 법관과 법원 내 학술모임이 양 전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사법정책에 비판적이었다는 사실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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