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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대한 검찰?…아동학대 사범 4명 중 1명만 기소

아동 진술 증거 채택 안 돼…CCTV 없으면 결국 좌절
“검사 개인 생각 개입해선 안돼…학대 기준 명확해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8-01-27 07:30 송고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 같이 진술했는데 증거가 없데요. 엄마랑 얘기가 같으면 진술이 오염됐다고 하고, 틀리면 신빙성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난 2016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남양주 몽키스패너' 사건으로 알려진 아동 학대 의심 사건이 발생했다. 9명의 부모들은 유치원 교사가 회초리로 때리거나 몽키스패너를 사용해 손가락을 조이는 등 아이들을 학대한 정황이 있다며 경찰에 고소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 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법무부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윤상직 의원에게 제출한 '아동학대사범 접수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2년에 252명이었던 아동학대사범은 2016년 4580명으로 늘어났지만 기소율은 27.2%에서 26.1%로 낮아졌다. 아동학대사범으로 신고된 4명 중 1명만 기소가 돼 재판을 받는 것이다.

뉴스1은 자신의 아이가 학대를 받았다고 생각해 법적 처벌을 요구했으나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아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부모들을 만났다.

◇"10명 넘는 아이가 동일하게 진술하는데 무혐의"
뉴스1과 만난 몽키스패너 사건 피해 아동 채원양(가명·5·여)의 어머니 이미영씨(가명)는 한마디씩 말을 이어갈 때마다 깊은 한숨을 쉬었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라 폐쇄회로(CC)TV 설치가 의무가 아니었고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의 진술뿐이었는데 검찰은 피해 아이들의 진술들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CCTV가 없는 상황에서 유치원의 잘못을 입증하기 위해서 유일한 증거는 아이들의 진술이었지만 검찰은 피해자인 9명의 병설유치원 아이들의 진술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작성한 불기소결정서에는 아동들의 진술내용이 신빙성을 갖기 어려운 이유가 반복적으로 적혀있었다. 그중에는 아동이 일관되게 피해를 주장하고 있으나 검사의 판단으로 학대가 아님을 정의하는 내용도 있었다.

"일관되게 피해자로(피의자의 오기인 것으로 판단)부터 막대기로 맞았다고 진술하나, 피의자가 피해자를 막대기로 때릴 때 친구도 있었고 심지어 다른 선생님도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하는바 피의자가 다른 선생님과 친구가 보는 앞에서 피해자를 막대기로 때렸다는 점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검찰의 불기소결정서 내용 중)

또 검찰은 아동과 부모의 진술이 일치하는 경우 아동의 진술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였고, 서로 진술이 어긋날 경우에도 일관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미영씨는 "수사를 담당한 검찰이 단한번도 피해자들과 면담하지 않고 서류조사만 진행했으며 아동학대라고 판단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의견서와 진술 분석가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판단해 처분을 내렸다"고 하소연했다.

◇아동학대 의심 신고 했더니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벌금'

"저는 누구한테든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 절대 신고하지 말라고 할거예요."

세종에 거주하는 이지혜씨(가명)는 요즘 아이가 당한 아동학대 건을 신고한 것이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경찰신고를 통해 경찰과 아동전문보호기관이 '학대'라고 판단해 검찰로 사건을 송치했지만 역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고 오히려 어린이집으로부터 명예훼손을 했다며 고소를 당해 벌금을 내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지혜씨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당시 만 3세였던 아들 태헌(가명)이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갑자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이가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한 지혜씨는 이유를 묻기 시작했고 결국 태헌이는 "원장 선생님이 원장실에서 여기(뺨 부위)를 때렸어. 맞고 나서 입이 삐뚤어졌는데, 무서워서 똥이 나올 뻔 했어"라는 말을 쏟아냈다.

지혜씨는 결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사건을 신고해 어린이집의 CCTV를 확인하게 됐고 어린이집교사가 아이들을 학대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들을 찾아냈다. 특히 어린이집 교사 한명이 발버둥 치는 태헌이를 원장실로 데려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원장실에는 CCTV가 없어 뺨을 맞았다는 태헌이의 말을 증빙할 구체적 증거가 없었다.

물론 어린이집 영상에는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이들의 볼을 꼬집거나 얼굴을 밀고 턱을 들어 올리는 행위, 아이들에게 가방을 휘두른 행위, 바지에 소변을 보았다는 이유로 한 아이들 다른 아동이 보고 있는 상태에서 2분간 속옷을 벗겨놓는 등의 행위 등이 CCTV에 포착됐지만, 검찰은 이를 훈육 과정의 일환이거나 학대의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검찰은 SNS에 CCTV 녹화 장면을 올리고 학대 의혹을 제기한 지혜씨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3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어린이집 측의 고소를 받아드린 것이다. 지혜씨는 "어린이집 쪽에서 먼저 부모들한테 학대가 없었다는 주장을 담아 안내장을 보냈기에 이에 반박하기 위해서 영상을 공개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지혜씨에 따르면 태헌이는 과거의 상처를 잊기 위해 현재도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지혜씨는 지금도 태헌이가 별일 없다가도 잠에서 갑자기 깨거나, 낯선 사람을 보면 자신의 상의를 들추고 숨으려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린다고 했다.  

◇아동학대 정확한 기준 없어…검찰 아동 정서 이해해야

아동학대 사건에대해 계속해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재 아이들의 정서를 반영한 정확한 아동학대의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검사 개인의 생각이 죄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성희롱의 경우에는 피해 당사자가 '수치심을 느꼈다'라고 생각하면 죄가 성립된다는 구체적인 기준이 있지만 아동학대는 그런 기준이 없다"라며 "아이의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상해가 명확하면 신체학대가 될 수 있지만 아이가 공포감을 느끼거나 교사로부터 방치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학대 행위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 대표는 "CCTV를 피해서 일어나는 학대행위가 많은 만큼 아동들의 진술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이를 파악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공 대표는 아동학대 문제와 관련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보호기관에서 학대행위로 보인다고 판단한 사건에 대해 검사가 무혐의 처분하는 것은 전문성에 의구심이 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검찰이) 나름은 법적인 근거와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보호해 줘야 할 대상인 아이들이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을 고려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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