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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기승에 일선 경찰 '곤혹'…"니가 경찰이면 난 검찰"

주취자 가족에게 전화해도 "사기 치지 말라" 전화 끊어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양재상 기자, 차오름 기자 | 2018-01-11 06:00 송고 | 2018-01-11 11:31 최종수정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직장인 A씨(28)는 얼마 전 모르는 번호로 자신을 경찰이라고 소개하는 전화를 받았다. 이전에 사흘에 걸쳐 법원·검찰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탓에 신경이 곤두선 A씨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곧장 전화를 끊었지만, 전화는 같은 번호로 계속해서 걸려왔다.

화가 난 A씨는 "5년도 더 지난 수법인데 남을 등쳐 먹지 말고 정직하게 돈 벌고 살라"고 답한 뒤 3번째로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해당 번호는 A씨가 접수한 민원에 대해 담당 경찰관이 지정되면서 수사에 들어갔음을 알리기 위해 경찰서에서 걸어 온 전화였다.
A씨는 "이상하게 근래에 보이스피싱 전화가 자주 오는 바람에 경찰서에서 온 전화인 줄은 몰랐다"며 "일을 열심히 하는 선량한 경찰분이었는데 너무 죄송해서 바로 전화를 걸어서 사과를 드렸다"고 멋쩍게 웃었다.

검경 수사관 등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면서 일선에서 대민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들이 업무에 지장을 받는 웃지 못할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민원인에게 문자를 통해 신분과 용건을 설명해야 했던 사례는 흔하다. 서울 일선 경찰서 소속 B수사관은 "사건 관계자를 재수사하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네가 경찰이면 나는 검사다, 이놈아'라는 말을 하며 끊어버리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있다"며 "문자로 소속을 밝히고 사건 관련 내용과 공지를 재전송하자, 관계자가 다시 연락해 신분을 확인하고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C수사관은 "사람들이 의심을 하는 경우가 많아 처음에는 좋게 설명하는데 간혹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며 "제가 하는 말과 상대방의 기억이 논리적으로 맞아떨어지고 당사자와 경찰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를 대면 그제야 믿는다"고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길에서 잠든 주취자를 보호하다 가족에게 인계하는 경우가 잦은 지구대·파출소 소속 경찰관들도 고역을 겪고 있다. 주취자의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하더라도 경찰임을 믿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D경위는 "지난해 파출소에서 보호하게 된 주취자의 부인에게 전화하자 '사기 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더이상 통화가 되지 않았다. 결국 신분증에 적힌 주소대로 택시에 태워 보내야 했다"며 "이렇게 주취자 보호조치를 하면서 주변인들에게 연락할 때 보이스피싱으로 오인받는 경우가 잦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른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E경위 또한 "주취자가 쓰러져 있기에 귀가시키려고 휴대폰을 찾아 가족 연락처로 전화를 하면 처음에는 잘 믿지 않는다"며 "처음에는 안 믿을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연락한다"고 말했다.

한편 '하필이면' 경찰 가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보이스피싱범이 헛물을 켠 경우도 있다.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F경위는 "같은 팀 직원의 어머니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불안해하며 전화를 하셨길래 아예 받지 마시라고 했다"며 "걔들이 경찰인 줄도 모르고 그런다"고 혀를 찼다.


m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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