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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일간 대한민국 피란수도'…진짜 부산을 만나다

'피란수도' 부산 여행 이모저모

(서울=뉴스1) 윤슬빈 기자 | 2018-01-09 18:14 송고
피란민들의 치열했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산복도로© News1 윤슬빈 기자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 부산'이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신청 잠정 목록에 등재됐다. 신청 목록에 선정된다면 2025년 유네스코 회의에서 세계유산 최종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피란수도'는 낯선 수식어지만, 부산은 한때 대한민국 수도였다. 1950년 6·25 전쟁 기간에 1023일 동안 행정의 중심지이자 경제활동의 중심지였다. 그와 동시에 부산은 수많은 피란민의 '최종적 삶터'였다. 산지가 많고 평지가 좁은 부산에 모여든 피란민들은 산과 언덕으로 기어올라 급한 대로 움집과 판잣집을 지어나갔다.

현재까지도 부산 곳곳엔 그들의 애환이 남아 있다. 진짜 부산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피란수도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부산 동구 이바구캠프에서 바라본 산복도로 야경. 부산관광공사제공© News1  

◇ 산복도로라는 이름 아래 '산동네 마을'

범일동을 비롯해 수정동, 초량동, 영주동엔 산의 중턱을 지나는 '산복도로'가 있다. 산복도로들은 부산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엔 일본인이, 개항기(1876~1910) 이후엔 부두 노동자들이, 6·25 전쟁엔 피란민이 이곳에 정착했다.
  
전쟁 후 피란민들은 일자리가 있는 부산항과 도심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도시 권역 안에 급한대로 무허가 구조물을 빽빽하게 지어 살았다.
 
미군들이 마셨던 맥주와 콜라 등의 캔을 이어 붙여 지붕을 만들고, '콜타르'를 바른 식량 상자로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을 지었다.   

진짜 부산을 만나보고 싶다면 산복도로로 가보자. 산자락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붙어 있는 파스텔색 집들이 있는 '감천문화마을',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지어진 '아미 비석 문화마을', 영화 '변호사' 촬영지인 '흰여울 문화마을' 등 피란민들의 힘겨운 삶의 흔적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다.  
 
서구 천마산로에 자리한 최민식 갤러리© News1 윤슬빈 기자
최민식 작가의 작품 '희로애락'. 안전행정부 제공© News1

◇피란민들 가장 가까이서 바라 본 사진 작가…최민식 갤러리


서구 천마산로에 있는 대한민국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최민식(1928~2013)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갤러리다. 최민식 작가는 피란민들의 삶을 그 누구보다 잘 담았다. 그의 사진을 보면 부산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최민식 작가는 황해도 연안 출신으로 1945년 평안남도 진남포 미쓰비시 기능공으로 근무하던 중 해방을 맞이했다. 군 철도연대 복무를 하고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만기 제대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중앙미술학원 디자인과 2년 과정을 마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하면서 56년간 사람을 담은 사진을 찍었다.

1962년 가톨릭계의 한국자선회에서 사진을 담당했고, 동아일보 객원기자로도 활동했다.

임시수도기념관 전경© News1 윤슬빈 기자
응접실© News1 윤슬빈 기자

◇약 3년간 청와대 역할을 했던 '임시수도기념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정부는 대전과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이전하면서, 서구엔 '경무대'(대통령의 관저)가 자리하게 된다. 고급 저택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원래 진주에 있던 경남도청을 부산으로 이전해오면서 1926년 경남도지사를 위한 관사 용도로 지어졌다.

2층짜리 붉은 벽돌의 고풍스러운 건물은 입구 현판엔 '사빈당'(思邠堂)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북한의 침략에도 온 국민이 힘을 모아 빼앗긴 당을 수복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관저 안엔 대한민국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최종 결정과 대외적인 외교업무가 이루어진 응접실과 이승만 전 대통령 밀랍인형이 있는 서재, 프란체스카 여사가 사용한 내실 이외에 식당, 욕실, 경비실, 조리사실 등 작은 공간들 하나하나가 잘 보존되고 복원돼 있다. 

동아대 부민캠퍼스 전차© News1 윤슬빈 기자

◇추억의 전차가 있는 '부경대 부민캠퍼스'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엔 1968년도까지 부산시민들의 발이 되어준 전차가 전시돼 있다.
 
부산에선 1915년부터 1968년까지 전차가 운행됐다. 전차는 일제 강점기엔 구덕운동장과 동래 온천장 왕복 노선을 시작으로 부산시청과 부산역, 서면 등을 거쳐 운행해 나갔다. 

해방 되고 6·25전쟁 이후에도 전차는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막대한 유지 보수와 관리비 문제에 산업화 이후 시행된 시내버스의 도입과 증차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부경대 부민캠퍼스에 전시된 전차는 미국 애틀랜타에서 운행했던 전차로 1952년 미국에서 무상 원조로 들어온 것이다. 부산의 전차 운행이 중지되자 한국전력의 전신인 남선전기주식회사가 학습용으로 동아대학교 구덕 캠퍼스에 기증했다. 이후 전체적인 수리작업을 거쳐 2009년 3월 부민캠퍼스 완공과 함께 이곳에 옮겨왔다. 지난 2012년엔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제494호로 지정된 바 있다.
  
복원한 40계단(왼쪽), 40계단 문학관© News1 윤슬빈

◇계단마다 담긴 피란민의 땀과 눈물…40계단

중구 동광동에 공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팔던 장터이자, 전쟁 중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는 장소로 유명하다.

지금의 40계단은 원조는 아니다. 원래 40계단은 현재 위치에서 25여 m 떨어져 있는데, 인근의 주거지가 확대되면서 폭이 1m로 축소돼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계단 아래로는 피난민과 부두 노동자의 애환이 담겨 있는 이곳에 1950~1960년대 분위기가 재현돼 있다. 1953년 '부산역 대화재'로 소실되기 전의 옛 부산역과 피난민을 실어 나르던 부산항을 주제로 한 길이 조성돼 있으며, 거리 곳곳에 옛날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조형물을 만나볼 수 있다. 40계단 인근엔 6층 건물의 기념관도 자리해 있다.

옛 영도대교. 부산중구 제공© News1
현재 영도대교 모습© News1 이승배 기자

◇피난민들의 만남의 장소…'영도대교'

영도를 가는 관문이자 피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다리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군사 물자 보급을 쉽게 하려고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도개교이다. 피난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가족들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이 다리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피란민들은 각자 열차 지붕 위에 매달려서 피란 선을 비집고 마지막 종착지인 영도다리로 향한다.

다리 곳곳엔 가족을 만나지 못하는 이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적은 벽보가 빼곡히 붙여지고,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점집들이 다리 밑에 들어섰다. 

1966년 이 다리는 교통 체증 문제로 도개를 멈추고 수차례 철거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아픈 역사가 서린 다리 철거를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2007년 복원 후 2014년 재개통하게 된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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