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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쪽방촌에는 살을 에는 추위…"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

"여름보다 겨울이 힘들긴 하지…가스비 내렸으면"
"다들 서민인데…재개발 하면 어쩌나 걱정"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양재상 기자, 차오름 기자 | 2017-12-31 08:00 송고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모습. (자료사진) © News1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모습. (자료사진) © News1

낮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27일. 한낮에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의 추위는 두터운 외투 속을 파고 들었다. 

다닥다닥 붙어 있어 햇빛마저 들지 않는 쪽방촌의 한 가게 옆 빈 공간에는 60~70대로 보이는 남성 4명이 난로를 사이에 두고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털모자에 패딩점퍼를 두개씩 껴입은 이들은 난로 가까이 손을 내민 채 작은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은 "불 좀 더 피우면 안될까"라며 하얀 입김을 내뱉었다. 
모든 것이 작고, 좁은 쪽방촌에서도 A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방은 더욱 작은 듯 했다. 성인 남성이 몸을 간신히 누일 수 있는 공간에 세간살이라고는 작은 선반 위에 놓인 소형냉장고와 TV 등이 전부였다. 손바닥 만한 작은 방 바닥을 덮고 있는 이불 한 채가 그나마 한기를 막아주고 있었다. 

60년 가까이 쪽방촌에 거주했다는 김모 할머니(82)는 "가스비 좀 내렸으면 좋겠다"라며 "날이 추워 보일러라도 틀라치면 어마어마한 가스비 때문에 무섭다"고 토로했다.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내부. © News1

'빈방을 보고 싶다'는 말에 쪽방촌의 한 아주머니가 이끌고 간 곳으로 들어가니 성인 2명이 딱 달라붙어 누울 수 있는 넓이의 방이 보였다. 방에는 얼마나 된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선풍기와 소형TV가 놓여 있었다. 그나마 칼바람을 막아주는 내부이긴 했으나, 외투를 벗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을 알선하는 이 아주머니는 "하루 (숙박비는) 8000원"이라고 말한 뒤 "좀 주무시고 있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이처럼 썰렁한 분위기와 달리 쪽방촌 주민들은 마음 한켠에 나름대로 새해 소망을 갖고 있었다. 가게 안에서 담소를 나누던 주민들은 "우리도 망년회 한 번 해야지, 언제 할래?"라며 서로 의견을 묻는다. 

한참 대화를 하다 가게를 나선 조모씨(58·여)는 겨울나기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여름보다 겨울이 더 나기 힘들긴 하다"며 "그래도 괜찮다. 지낼만 하다"고 웃는다.

그는 본인보다 다른 주민들을 걱정하며 "여기 사람 사람들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고, 90%는 알코올 중독"이라며 "술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겨울에 많이 돌아가신다"고 말했다. 조씨는 12월 초에만 3명이 숨졌다며 "그럴 때마다 돌아가신 분 치우고 다른 사람 받고…방만 내주고 나몰라라하는 사람들한테 섭섭한 마음이 생기긴 한다"고 말끝을 흐렸다.

평소 앓던 당뇨질환 때문에 이날에도 병원에 다녀왔다는 조씨는 "살아있음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새해에는 여기 사는 사람들 모두 술 좀 줄이고, 원하는 거 뜻대로 이뤄나갔으면 좋겠다. 모든 이에게 행운이 따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이곳에 벌써 몇년째 살고 있다는 B할아버지도 "여름보다 겨울이 힘들긴 하지"라면서도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요령이 생겨 두껍게 옷 입고 다니면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는 "새해에는 욕심 좀 버리고 살아야지"라며 "욕심 때문에 병도 생기고, 스트레스도 생기고…새해에는 건강이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젊은이도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살아"라는 말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성뒤마을에 놓인 연탄들. © News1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성뒤마을에 놓인 연탄들. © News1

본격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서울 강남의 한 판자촌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마을 한켠에 놓인 빨간 고무대야의 물이 꽁꽁 얼정도로 추웠던 이날 서초구 우면산 자락 남부순환도로변 40여년 된 판자촌인 방배동 '성뒤마을' 주민들은 먼 미래에 대한 소원보다 당장의 재개발을 걱정하는 듯 했다.

주로 컨테이너하우스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그나마 작은 창문마저 옷가지나 짧은 커튼 등으로 막아놓고 있었다. 공용수도관이 이어진 한 집은 혹여 수도관이 얼어 터질가봐 헌옷 등으로 긴 수도관을 덮어놓고 있었다. 한 주민은 "이렇게 해놔도 수시로 관이 터진다"고 귀띔했다.

이곳에 17년째 살고 있다는 이모씨(65·여)는 그래도 본인은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따뜻하게 하려면 한달에 수십만원이 들기 때문에 많이 사용하지 못한다"고 들려준다. 그는 "이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탄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 손주와 단 둘이 살고 있다는 김모씨(61·여)는 "주민 99%가 연탄보일러를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며 "연탄기부 역시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조그맣게 사업을 하다 실패해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분들이 많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새해 소망을 묻는 질문에 "주민들은 재개발이 제일 큰 고민"이라며 "이곳에서 사는 것도 벅찬데, 나가서 살 곳을 구하라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성뒤마을은 2018년에 재개발 관련 지구계획을 수립, 2019년 공사에 착공, 2022년에는 준공을 예정하고 있다. 

또 다른 주민 이모씨(49·여)도 "다들 서민인데, 성뒤마을을 벗어나면 경제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재개발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이곳에 사는 주민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재개발이 되면 집값이 크게 오를텐데.. 큰일이다"라며 씁쓸해했다. 


jung9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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