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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행려병자와의 전쟁…'의료·경찰·구급' 고군분투기

주취자 응급의료센터…육체·감정 노동 고단한 현장

(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2017-12-24 07:00 송고
새벽을 맞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의 모습© News1
새벽을 맞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의 모습© News1

"아침에 오셨던 분이에요. 술 드신 상태에서 목을 다치셨네요. 나이는 50대. 행려병자." 
"주취자 체크리스트에 있나요."
"네. 올라 계시네요."

지난 20일 밤 11시, 한 50대 남성이 국립중앙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로 실려왔다. 구급대원과 의료진은 빠르게 환자의 정보를 주고받았다. 남성이 차에서 내려 진료실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응급실 로비는 술 냄새가 가득 찼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남성은 충전재도 없는 얇은 점퍼 한 장만 걸치고, 목에는 피가 묻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구급대원들이 남성을 응급실 문 앞에 데려다 놓자 병원 관계자, 경찰이 그 주위에 모였다. 진료에 들어가기에 앞서 환자의 신원을 파악하고, 어떤 진료가 필요할지 판단하는 '예진'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과 서울시는 지난 2012년부터 알코올중독이 의심되는 주취자와 노숙자 등을 보호·치료하기 위해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국립중앙의료원, 보라매병원, 서울의료원, 동부병원, 적십자병원, 서남병원 등 6곳 병원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가 있다.

그중에서도 국립중앙의료원은 서울 중심부에 위치해 다른 곳보다 더 많은 환자들이 모여든다. 기자는 동지를 이틀 앞둔 20일과 21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찾았다.
'행려병자'는 떠돌아다니다가 병이 들었으나 치료나 간호를 해줄 이가 없는 사람을 뜻한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A씨는 이곳에 오는 행려병자들 중 무연고자 비율은 절반에 가깝다고 했다. 술을 마시다 다치거나 병들어 오지만, 연고자가 없어 홀로 진료를 마친 뒤 응급실을 떠난다. 하지만 이렇게 떠난 이들이 다시 실려 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날 환자도 아침에 이어 두 번째 실려 온 경우였다. 낮·밤을 가릴 것 없이 술에 취해 응급의료센터 문을 두드리는 건 알코올중독자의 특징이다. A씨는 "하루에 두세 번씩 같은 분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찰 B씨는 "주취자 체크리스트를 관리하는데, 얼굴이 익은분들도 제법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구급차의 행렬은 이어졌다.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근처에 쓰러져 있던 60대 남성이 들것에 실려 왔다. 역시 홑겹 점퍼에 맨발, 후두부가 많이 부어 있었고,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B씨는 "지금은 그나마 겨울이라 신고 건수가 뜸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날씨가 추워지면 주취자나 노숙인들이 실내로 일찍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실려 오는 환자 수가 적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비가 지급되는 매월 20일을 기해 신고 건수가 평소보다 늘어나기도 한다. 서울역 앞 다시서기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C씨는 "매월 20일 이후로는 수급받은 돈으로 술을 드시는 분들이 늘어 상대적으로 신고 건수가 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인 21일 밤에는 응급의료센터에서 실랑이가 빚어졌다. 얼굴을 다친 한 행려병자가 술에 취한 상태로 응급실에 도착했다. 환자를 이송해온 구급대원과 경찰이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아 주며 진정할 것을 요청했지만, 만취한 환자는 목소리를 높이며 횡설수설했다. 

"왜 진료실로 들어가지 않느냐"며 구급대원에 고성을 지르다가, 회한 섞인 넋두리도 했다. 응급실에 그대로 들어갔다가는 다른 환자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환자가 진료를 받게 하려는 구급대원과 경찰, 다른 응급실 환자들의 처지까지 고려해야 하는 의료원 측 입장이 부딪치며 일시적으로 언성이 높아졌다.

"안 그래도 서러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이렇게 더 서럽게 하십니까."
"저희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왜 진료실에 안 들어가. 너 119면 다야."
"할아버지. 이렇게 화내고 소리 지르시면 그냥 그대로 집으로 가셔야 해요. 소리 지르시면 안 된다고, 마지막 기회 드렸는데 선생님이 거부하신 거예요. 술 깨고 다시 오세요."

경찰과 구급대원이 15분 넘는 시간 동안 달랬지만, 결국 이 환자는 주취 난동을 자제하지 못해 진료가 거부됐다. 현장에 있던 경찰 B씨는 "구급대원 분들이 가장 힘드실 것"이라며, "실려 오시는 내내 구급차 안에서 욕설과 고성을 질렀다고 들었다. 육체노동에 감정노동까지 더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의료진과 경찰, 구급대가 모두 진료를 돕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확인서를 작성한 뒤, 이 남성은 결국 응급실을 떠났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B씨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이런 경우, 도와드리고 싶어도 정말 어쩔 수가 없어요. 무슨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라고 읊조렸다.

행려병자들을 최대한 돕고 싶어도, 그들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할 수 없는 건 현장에서 일하는 구급대원과 경찰의 가장 큰 딜레마다. 현장에서 6개월째 근무하는 경찰 D씨는 이 같은 무력감을 느꼈던 순간을 털어놓았다.

"하루는 저녁에 몸이 안 좋은 행려병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어요. 딱 보기에도 정말 얼마 못 사실 것 같아 보였어요. 날씨도 추웠고, 어떻게든 설득해서 병원으로 모시고 가려고 했죠. 그런데, 그러다가 돌아가신다고 설득해도 요지부동이었어요. 욕만 하시고, 완강하게 버티셔서 손쓸 도리가 없었어요. 현실적으로 환자를 강제로 병원으로 데리고 갈 만한 법률적 근거도 없고요. 할 수 없이 현장을 그냥 떠났는데, 바로 다음날 새벽 4시에 같은 곳에서 신고가 또 들어왔어요. 출동했더니 마지막 봤던 그 자리에서 그대로 사망하셨더라고요. 그런 경우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A씨 역시 그냥 돌려보내기에 걱정스러운 환자를 할 수 없이 퇴원 조치시킨 경험이 많았다. 그는 "일하다 보면 '만일 발견되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났겠다' 싶은 분들이 많아요. 수혈을 꼭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 그냥 가시는 경우들이 있어요. 정말 안타까워요. 공권력을 동원해서 강제할 수도 없고, 설득이 잘 되지도 않아요. 비용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노숙인 등록이 안 돼 있는 경우에는 진료비 지원이 나오지 않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거부서약서를 쓰고 돌아가시기도 해요"라며 답답한 마음을 표현했다.

환자 이송을 마치고 구급차 장비를 정리하던 한 구급대원은 "요즘은 겨울이라 결핵 의심 증상을 보이는 행려병자분들도 많이 계신다"며 "워낙 길거리에서 자유롭게 지내시던 분들이고, 자존심도 많이 다치신 상태라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진료를 받기 힘든 경우가 많은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B씨는 "순순하게 진료를 받으시는 분들은 이미 병세가 많이 안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게 방문이 잦아지다가 돌아가시는 것"이라고 말을 더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것이 고독사나 무연고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5년 시도별·연령대별·성별 무연고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1년 682명에서 2015년 1245명으로 배 가까이 늘었다. 국립중앙의료원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이용자 수도 올해 12월 현재까지 306명으로 하루 한명 꼴이다. 22일 새벽, 소란을 피우던 환자가 돌아가고 난 뒤, 남은 업무를 처리하는 구급대원과 경찰, 응급의료센터 직원들의 얼굴에 고단함이 흘렀다.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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