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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과학수사①] 소파는 그날 밤 범행을 기억했다

정황 증거뿐이던 강간 범행, DNA 감식 앞에서 '덜미'

(서울=뉴스1) 최은지 기자 | 2017-11-05 07:03 송고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시골에서 주점을 운영하던 A씨는 B씨와 사귀다 헤어졌다. 이후 B씨는 공개된 장소에서 A씨를 성적으로 비하하는 등 집요하게 괴롭히다 급기야는 A씨를 성폭행했다.

A씨는 수사기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기억을 더듬어 그동안의 피해사실을 진술했다. 경찰은 A씨의 진술을 토대로 B씨의 범죄사실을 특정해나갔다.
B씨는 '명백한 증거'가 있는 혐의만 인정하고 나머지 모든 범행은 부인했다. 특히 강간 사실에 대해서는 '성기능감퇴'를 이유로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은 B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은 혐의가 소명되는 다른 범죄사실과 지속적으로 A씨를 괴롭혀온 죄질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은 끝내 B씨의 준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입증하지 못한채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건을 넘겨받은 춘천지검의 최희정 검사는 고민에 빠졌다. 이미 신병을 확보한 B씨에 대해 준강제추행 혐의만 적용할지, 준강간 혐의까지 적용할지 기로에 섰다.

B씨의 강간 범행 직후 주점을 찾아온 한 손님이 있었다. 목격자인 손님은 '주점에 갔을 때 A씨가 소파 위에 하의가 벗겨진 채 누워있었고 그 옆에 B씨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 목격자는 범행 장면을 직접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진술은 정황증거밖에 될 수 없었다.

안타깝게 A씨는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손님이 찾아와 깨어보니 소파 위에 하의가 벗겨진 채 누워있었고 소파가 젖어있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B씨는 'A씨가 술에 취해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이미 하의가 벗겨진 상태였고 소파 위에 잠든 A씨를 물티슈로 닦아주다 보니 소파가 젖게 된 것일 뿐 성관계 사실 자체가 없다'고 부인했다.

최 검사는 사건이 송치된 당일 밤새 기록검토에 나섰다. 그러던 중 최 검사의 눈에 한 현장 사진이 들어왔다. 바로 범행 현장을 찍은 소파 사진이었다.

최 검사는 '소파에 범행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고 바로 다음날 대검 과학수사2과(과장 정진용)에 연락해 현장 검증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과학수사2과는 신속하게 현장검증에 나섰고 DNA감식 결과 소파 위에서 정액반응이 양성, DNA형이 B씨의 것으로 판단했다. B씨에 대한 구속기간 만료일을 불과 3일 남겨두고 나온 결과였다. 과학 증거물 앞에서 B씨는 결국 범행을 자백하고 최근 법원은 유죄판결을 선고했다.

최 검사는 "모든 수사가 그렇지만 성폭력사건 수사는 물적 증거의 확보가 수사의 성패를 좌우한다"며 "피해자가 범행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물증을 찾아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silver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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