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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원의 탐식 수필] 프랑스 치즈 마을의 숨은 이야기들

이국적 식탁 위에 오른 보편적 삶의 이야기

(서울=뉴스1) 김수경 에디터 | 2017-10-26 14:29 송고
편집자주 정상원 셰프의 세계 여러 나라 미식 골목 탐방기를 연재한다. 정상원 셰프는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르꼬숑'의 오너 셰프다.
오베르뉴의 치즈 농장. 여름에 착유한 치즈는 원유에 카로틴과 같은 영양소가 많이 포함되어 풍요롭고 감각적이다. 겨울에 젖소에게 건초를 먹여 얻은 우유에서는 섬세하고 복합적인 향을 가진 치즈를 얻을 수 있다. © News1

치즈는 사람의 노력과 자연의 시간이 만들어내는 창조물이다. 지조를 지켜 치즈를 만들고 나면 겸허하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데, 프랑스 치즈 마을의 사람들은 전통에 대한 믿음을 통해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치즈의 향과 맛 속에 이어져오고 있는 이야기들은 고소하고 향긋한 식탁 위 삶의 일기이고 역사의 기록이다.

미몰레트라는 이름은 '반 정도만 딱딱'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News1

릴의 공, 미몰레트 치즈
  
미몰레트라는 이름은 중간 정도의 딱딱함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왔다. 부드러운 연성치즈와 단단한 경성 치즈의 중간 정도의 질감, 그리고 영롱한 오렌지색은 미몰레트의 가장 큰 특징이다. 
  
미몰레트는 ‘올드 홀란드’라고도 불리기 때문에, 네덜란드 치즈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치즈는 프랑스 북서부 플랑드르 릴 지역(Flandre française région de Lill)의 치즈다.

루이 14세 시절 네덜란드와 프랑스 전쟁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이 즐겨먹던 네덜란드의 에담치즈가 수출입이 금지되면서 릴 지역을 중심으로 네덜란드 치즈의 제조 방법을 좇아 만들기 시작했다. 

그뤼에르의 치즈 농장. 치즈를 만드는 과정 이후에는 오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수개월에서 수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전통의 빈티지 기록과 제조 방법을 믿고 고수한다. © News1

알프스의 샤모니 비스킷(샤모니의 오렌지 과자)의 오렌지색을 내는 천연염료 아나토(annatto)를 사용해서 미몰레트만의 특별한 색을 낸다. 네덜란드와의 전쟁이 있던 시기 네덜란드 치즈를 그리워하여 오렌지색 치즈를 만든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혹은 톨레랑스의 위트일지 모르겠다.
  
풍미가 짙은 이 오렌지색의 치즈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만큼 여러 가지 별칭으로 불린다. 모양이 아담한 크기의 공 모양이어서 만든 지역인 릴의 이름을 따 ‘릴의 공(Boule de Lille)’이라고도 하는데, 이 치즈가 공 모양인 것은 단단한 껍질 속에 부드럽고 고운 속살은 품게 하기 위해서 표면적을 넓힌 결과이다. 
  
조밀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얻기 위해 천연 붉은 벽돌로 지은 저장고의 전나무 선반에서 6주에서 2년 정도 숙성시킨다. 정련 기간 동안 표면은 계속 씻고 솔질의 해서 특별한 미생물이 표면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 안쪽의 공기를 빼내도록 돕는다. 마지막에 회양목 나무망치로 두드려 소리를 듣고 속살의 질감을 예단해낸다. 전통적인 숙성에서 미몰레트는 9개월이 지나면 매운맛이 스미기 시작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치즈 콩테© News1

백작이라는 이름의 콩테 치즈
  
발효의 아버지 파스퇴르의 고향이기도 한 쥐라. 프랑스 북동부 콩테(Franche-Comté), 쥐라(Jura) 지역의 겨울은 치즈의 필요와 숙성 환경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 지역의 콩테 치즈는 긴 겨울을 위해 가열 압착을 통해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콩테 치즈는 치즈가 주는 여섯 가지 맛과 네 가지 향이 분리되어 느껴지느냐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20점 만점을 기준으로 15점 이상이면 포장에 녹색 줄무늬(Comté bande verte)를 붙이고, 12점 이상이면 갈색 줄무늬(Comté bande brune)를 받는다.
 
프랑스 쥐라는 유서 깊은 치즈 생산지이자 오래된 와인 생산지다. 쥐라의 피노누아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과 꽁테 치즈의 마리아주가 주는 다채로운 향과 맛은 프랑스 미식의 꽃다발이라 할 만 하다.© News1

콩테 치즈는 다양한 향과 맛 때문에 쥐라의 꽃다발이라고도 불린다. 여름에 착유한 섬머 콩테는 신선한 풀의 풍요롭고 감각적인 향이 특징이면, 겨울에 착유한 윈터콩테는 건초에서 오는 복합적이고 섬세한 향이 일품이다. 또 겨울 콩테는 예약을 해야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현지에서도 인기가 높다.
  
콩테는 프랑스의 지명이기도 하지만 백작이라는 뜻도 가진다. 시쳇말로 고지식한 사람을 일컫는 ‘꼰대’는 백작을 의미하는 콩테의 일본식 표기에 기인한 단어이다. 

콩테는 단단한 구조 속에 다양한 향들이 기품있게 담겨 있어 치즈의 백작이라 부를 만 하다. 이 지역의 치즈 농장 사람들은 모든 콩테는 제 각기 맛이 다르고 그것은 자연이 결정한다고 말한다. 

카망베르와 더불어 노르망디의 최고의 치즈 리바로© News1

노르망디의 육군 대령, 리바로 치즈

  
부르고뉴의 에푸아즈, 상파뉴의 랑그르, 노르망디의 리바로. 이 세 가지 치즈를 표현할 때 프랑스 미식가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술어가 있다. “잔인하게 맛있다.” 김치로 비유한다면 이들은 곰삭은 묵은지 같은 치즈다. 치즈의 깊은 숙성의 맛이 누군가에겐 잔인하게 맛있을 수도, 또 다른 이에겐 그냥 잔인할 수도 있다.
  
껍질을 닦은 연성치즈는 숙성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겉표면을 씻어내고 솔질을 해 특유의 강렬한 향과 맛을 만든다. 에푸아즈는 부르고뉴의 피노누아 레드 와인으로 만든 ‘마크 드 부르고뉴’로, 랑그르는 샹파뉴의 스파클링와인 샴페인으로 그리고, 리바로는 노르망디 대서양의 소금물로 표면을 씻어낸다. 

프랑스의 치즈 가게 프로마쥬리의 숙성실을 새긴 스테인드글라스. 소설가 장 룹 쉬플레는 “치즈가 아닌 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치즈는 더 좋아지고, 나쁜 치즈는 점점 더 나빠진다. © News1

거친 주황색 표면 속에 비단결 같은 아이보리를 품고 있는 리바로 치즈는 부드러운 살결 안에 강렬한 향으로 다시 한 번 반전을 노린다. 유리질, 점토질 토양과 대서양의 해양성 기후 때문에 목축이 발달한 노르망디의 풍요로운 치즈 리바로는 ‘가난한 자의 고기’라고도 불린다. 
  
리바로 겉 부분은 버드나무나 갈대로 감싼다. 3~5줄의 끈이 프랑스 육군 대령의 복장과 비슷하다 하여 현지에서는 ‘육군 대령(Colonel)’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치즈의 왕, 브리 치즈© News1

치즈의 왕, 브리 드 모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각국의 대표들이 모인 빈 회의(the Congress of Vienna, 1814~1815)에서 프랑스의 탈레랑은 친선을 목적으로 치즈 경선을 제안했고, 각자 자국 최고의 치즈들을 가지고 연회에 참석하기로 합의했다. 

영국은 스텔튼(Stilton), 이탈리아는 고르곤졸라(Gorgonzola), 네덜란드는 에담(Edam)치즈 등을 소개했다. 탈레랑이 브리 드 모(Brie de Meaux)를 나이프로 가르자 드러난 진하고 부드러운 속살에 빈 회의는 아무런 반론도 없이 브리를 ‘치즈의 왕(Le Roi de Fromages)’으로 선언했다. 이는 브리 치즈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계기가 된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마지막 바람은 브리 치즈와 레드 와인을 맛보는 것이었다. 또 성난 군중을 피해 피난을 가던 중 브리가 생산되는 모 인근 지역에서 지체하다 잡힌 일화가 유명하다.

만찬에서 치즈는 본식사와 달콤한 디저트 사이에 제공된다. 초대받은 식탁에서 치즈를 많이 먹는 것은 차린 음식이 부족하다는 뜻이니 적당히 맛보는 것이 프랑스 식사의 예절이다.© News1

브리는 멸균하지 않은 생유로 만들어 생산과정 동안 온도를 37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송아지의 네 번째 위에서 발견된 레닛(rennet)이라는 응유효소를 사용하는데, ‘펠르 아 브리’라는 전용 국자로 섞어 전용 브리 틀에 넣고 전용 볏짚 매트에 밭쳐 전용 균주를 주입해 숙성시켜 만든다. 

치즈의 꽃이라 불리는 흰 솜털의 회피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질감의 속살 사이에서는 다양하고 풍부한 향이 흘러나오는 브리. 문헌상으로 700년대 중반에 처음 등장하니 천년이 넘은 치즈의 왕조를 이루고 있다.
  
노르망디의 카망베르 치즈는 브리와 같은 치즈다. 차이점이라면 브리는 10~15인치의 크기로 만들고 카망베르는 4.5인치의 크기로 만든다는 것이다. 4.5인치의 브리는 ‘쁘띠 브리’라고 부른다. 카망베르는 프랑스 혁명 당시 노르망디로 피난 온 사제들이 작은 크기의 브리 치즈를 만들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오베르뉴의 밤나무 통에서 숙성 시키는 블루치즈© News1

페니실린 푸른 곰팡이의 블루 도베르뉴
  
블루치즈는 푸른 곰팡이로 만드는데, 푸른색 대리석 무늬 때문에 블루치즈라는 이름을 얻었다. 균주는 자신들만의 생장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생장과정에서 다른 균주의 생장을 막는 물질을 배출한다. 
  
오베르뉴의 블루치즈는 밤나무로 만든 숙성 틀에서 숙성시켜 밤나무 향을 입힌다. 온도가 낮은 아침에 착유하는 전통적인 방법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데, 그해의 온도와 습도를 계측해 숙성 기간을 정한다.
  
치즈 마을들은 저마다의 자존심으로 치즈를 만들고 있다. 프랑스에만 마을의 이름을 딴 치즈들이 수 천 종에 이른다. 그들은 그들 조상의 유산에 올해의 이야기를 기록해 후대에 넘겨주는 연결고리를 자처한다.© News1

겸허한 마음으로 하늘을 기록하는 유럽의 치즈 농장들
  
와인이나 치즈가 만들어진 특정한 연도를 ‘빈티지’라 부른다. 우리에게는 그해 농축산 가공품의 가격을 정하는 기준으로 여겨지는 빈티지가 그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작황을 통해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기록한 빈티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매년 기록하여 후대에 넘겨주는 숙제다. 
  
빈티지는 그해의 바람과 땅과 햇빛을 적은 대한 일기장이다. 재배자인 동시에 관측자인 치즈 농장 사람들은 그해의 빈티지를 어린아이처럼 바라보고 선대의 빈티지를 통해 숙성의 정도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록해 다음 대의 사람들이 치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돕는다.
  
전통에 대한 믿음과 시간에 대한 겸허함에 의존해 숙성되고 있는 치즈들은 그 시간이 가지는 이야기를 특유의 맛과 향으로 고스란히 담는다. 
  
치즈의 속살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톡 쏘는 아이러니와 짭조름한 땀방울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향긋하고 고소하다. 

(오른쪽 위 주황색 치즈로부터 시계방향) 미몰레트, 브리, 콩테, 블루, 리바로 치즈(사진제공: 프랑스 국립낙농협회(CNIEL), 소팩사 코리아.)© News1

2017 유러피안 치즈 위크(2017.11.7~11.23)를 통해 전국 28곳 레스토랑과 백화점 등지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다섯 가지 치즈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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