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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있는 이변" 노벨문학상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간 의미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밥 딜런 이어 '독특한 목소리와 방식' 높이 평가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10-06 00:17 송고
가즈오 이시구로(민음사 제공)© News1

지난해 밥 딜런을 뽑았던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역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파격의 결정을 5일(현지시간) 내렸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은 일본계 영국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63)는 정통 문학가라는 점에서 지난해보다는 덜 이변이지만, 60대의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인데다가 대중적인 인지도도 다른 후보군 작가들에 비해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시구로가 수상한 것은 낡은 문학 문법을 버리고 '혁신'쪽으로 나아가려는 노벨상위원회의 '이유있는'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3파전' 예상했지만 상은 '독특함' 보여준 이시구로에게
 
발표 전까지 영국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 등의 대중들은 물론이고 문학전문가들도 이시구로를 유력 후보로 생각하지 못했다. 케냐의 응구기 와 티옹오(79),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68),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78), 한국의 고은(84) 등을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로 꼽았고 특히 최근의 페미니즘 열풍을 반영하고 문학의 영역을 확장해내가는 의미에서 페미니즘 작가인 애트우드의 수상을 유력하게 보기도 했다.

노벨상위원회는 "이시구로가 위대한 '감정적 힘'을 가진 소설을 통해 세계를 연결하는 우리의 환상적 감각 아래에 있는 심연을 발견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또 "제인 오스틴과 프란츠 카프카를 섞어놓은 듯하다. 여기에 마르셀 프로스트의 성향도 약간 가미돼 있다"며 독특한 미학 세계를 높이 샀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이시구로의 문학에 대해 "인간의 결함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것이 서양문학(비극)의 핵심인데 이를 동양적인 감성과 잘 결합했다"고 평가했다. 
또 "지난해에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에게, 올해는 가장 섬세한 소설가 중 하나에게 상을 수여했다"는 노벨상위원회의 설명처럼 장 대표 역시 "이시구로는 역사적인 담론이나 역사의식, 인간성의 탐구는 기본으로 안고 (작품에서) 문학적인 섬세함이나 개성적 형식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장 대표는 민음사 편집장을 맡으며 당시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이시구로의 책들을 2000년대 후반부터 출간했다.

◇"낡은 문법 버리고 '독특한 목소리와 방식' 보이라"는 메시지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문학상 수상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거론된 고은 시인과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0년대 중반부터 거론되어 10년이 넘는 단골후보였다. 응구기와 티옹오 역시 최근 수년간 1~2위를 다투었다. 특히 고은 시인은 발표를 불과 이틀 앞두고 래드브록스에서 10위에서 4위로 갑자기 순위가 뛰어올라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들 셋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일각에서는 과거 노벨문학상이 중시했던 '탈식민주의'나 '민주화 운동' 등 정치적 요소의 중요성이 약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의식이나 인간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2015년 '저널리즘 문학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서 이같은 새로운 관점이 시도되었다가 2016년 밥 딜런에서 너무 나아간 면이 있지만 두 사례가 노벨상위원회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고 문학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물론 올해 이시구로가 선정되면서 다시 정통문학으로 복귀했지만 여전히 "소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독특한 목소리와 독특한 방식을 보여줘야 한다"는 노벨상위원회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선정이라는 분석이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고은 시인 © News1 구윤성 기자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고은 시인 © News1 구윤성 기자


◇이시구로, 영국·프랑스·미국 등에서도 작품성 인정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영국으로 이주해 켄트 대학과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수학한 후 런던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1982년에 영국 국적을 땄다.

1982년에 발표한 첫 소설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받았고 1986년 작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로 휘트브레드 상과 이탈리아 스칸노 상을 받았으며, 이 작품은 부커 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은 1989년에 부커 상을 받았으며,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그 외에 1995년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2000년 '우리가 고아였을 때'에 이어 문제작 '절대 날 떠나지 마' 그리고 '녹턴'까지 이시구로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내왔다. 가장 최근 발표한 소설 ‘파묻힌 거인’(2015년)까지 그는 모두 8권의 장편소설과 영화와 드라마 각본 등을 썼다. 이런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1995년 대영제국 훈장을, 1998년 프랑스 문예훈장을 받았다.

이시구로의 수상으로 역대 동양인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1913년 인도 시인 타고르, 1968년 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 일본 오에 겐자부로, 2000년 프랑스 국적의 중국인 카오싱지엔(가오싱젠), 2012년 중국의 모옌 등 총 6명이 됐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알리는 노벨상 웹사이트 화면 캡처 © News1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알리는 노벨상 웹사이트 화면 캡처 © News1

◇국내 출간된 작품들은

국내 번역된 이시구로의 작품은 전쟁과 원폭 후 일본의 황량한 풍경을 투명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그려 낸 데뷔작인 '창백한 언덕 풍경' 등이 있다. '남아있는 나날'은 영국 귀족의 장원을 자신의 세상 전부로 여기고 살아온 남자인 스티븐스의 인생과, 그의 시선을 통해 가치관의 대혼란이 나타난 1930년대 영국의 격동기를 묘사한 작품이다.

2005년작인 '나를 보내지 마'에서 이시구로는 에스에프(SF) 형식을 시도했다. 이 소설은 1990년대 후반 영국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복제인간)들의 사랑과 성, 슬픈 운명을 그려 주목받았으며 '타임'이 선정한 ‘100대 영문 소설’에 들기도 했다.

1995년 작인 유명 피아니스트를 주인공 삼은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과 2009년 출간한 연작 단편집 '녹턴'은 작사가로도 활동한 그의 음악의 영향을 잘 보여주면서 음악을 매개로 인간 삶의 본질을 들여다보았다.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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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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