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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불법이 아니다"…각계 여성들 '낙태죄 폐지' 한목소리

"의학적으로 100% 피임법 없어…안전한 임신중절 보장하라"
"낙태죄는 국가가 인구를 통제하는 도구인 국가폭력"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2017-09-28 12:38 송고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와 안전한 임신중절 보장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2017.9.28/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20대 여성 A씨는 지난 2012년 12월 소개팅 상대에게 모텔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했다. 생리가 나오지 않아 찾아간 병원에서는 먼저 가해자를 고소하고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며 낙태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가해자는 합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A씨는 경찰이 가해자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나서야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이미 임신 14주를 지나 수술의 위험성도 비용도 초기보다 커져 있는 상황이었지만, A씨는 수술 직전 "성폭력 피해가 아님이 밝혀질 경우 책임을 지겠다"는 서약서에 서명까지 해야 했다.

#50대 여성 B씨는 1996년 한 해에만 두 번의 낙태수술을 했다.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도 아이 둘을 '독박육아'해야만 했던 B씨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첫 번째 수술을 받은 지 불과 2개월만에 B씨는 남편의 강요로 피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억지로 성관계를 맺고 곧바로 임신했다.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B씨는 임신을 버틸 수 없었고, 결국 두 번째 낙태를 했다.

#20대 여성 C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4년 낙태를 했다. 성관계를 강요하는 남자친구를 달래 가며 가벼운 애무만 했다가 운이 나쁘게도 임신이 된 것이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마음고생은 온전히 C씨의 몫이었다. 남자친구가 한 일은 "그런 걸로도 임신이 돼?"라고 무심하게 물으며 수술에 동의하는 것뿐이었다. C씨는 "제 인생에 대한 고민을 통해 얻은 결론을 왜 그 애에게 허락받아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각자의 이유로 낙태를 경험해야 했던 여성 10명의 증언이 차분하게 이어졌다. 발언을 마친 여성들은 붉은 리본 한 줄을 들고 서로를 이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질병이나 장애가 있든 없든, 자신의 의사만으로 낙태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는 의미에서였다.

'임신중단을 위한 국제행동의 날'을 맞아 28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인 여성들은 "모든 여성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피임기술과 의료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며 정부에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낙태죄는 사문화되지 않고 낙태한 여성과 시술 의사만 처벌하는 법의 특성을 악용해 협박 수단이 되고 있다"며 "다양한 상황에 놓인 사회 구성원들이 실질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지 않고 여성만 독박 처벌하는 행위는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의학적으로 100%의 피임법은 없으므로 합법적이고 안전한 인공임신중절을 보장해야 한다"며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행위는 위험한 시술을 더욱 부추기는 방법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산아제한 정책이 실시되던 시절 낙태를 눈감아주던 국가가 출산율 제고를 명목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들은 "국가는 인구가 많을 때 낙태죄를 무시하고 낙태와 가족계획을 강요하다가 인구가 필요해지자 낙태죄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나선다"며 "낙태죄는 국가 주도의 출산 통제, 인구 관리를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로 활용돼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폭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는 국가가 사회가 감당해야 할 생명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채 우리 삶의 권리를 무시하고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은 법과 정책을 거부한다"며 "여성에게는 처벌 대신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국가와 사회는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ma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