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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1년 ⑥] 기자들 "우려와 달리 취재활동 영향 없다"

기업 지원 출장, 식사 확실히 줄어…"서로 조심"
"받는데 익숙한 기자들 모습도 바꾸고 성찰해야"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2017-09-24 06:00 송고
지난해 9월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소병률 한국기자협회 자문위원장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2016.9.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지난해 9월8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설명회에서 참석자들이 소병률 한국기자협회 자문위원장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2016.9.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광고성으로 기사를 좀 싣고 싶은데, 뭐 어떻게 안 돼요. 몇만원이면 할 수 있다던데." "대표님 인터뷰 한번 해주면 내가 좀 챙겨줄게, 돈 좀 주면 되잖아"

최근 취재 현장에서 본지의 기자가 직접 들은 '청탁'의 내용이다. 이런 청탁들은 사실 위법성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현재도 기자들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장면이다. 기자들에게 금품을 주거나 편의를 봐주면 나가지 않을 기사도 낼 수 있고, 나가야 할 기사도 나오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은 우리 사회에 이렇게 여전히 남아있다.
오는 28일 시행 1주년을 맞은 청탁금지법, 소위 '김영란법'의 대상에 기자들이 포함된 이유도 여론의 이런 인식 때문이었다. 법 시행을 앞두고 언론들은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지만 여론은 차가웠다. 법시행에 앞선 여론조사에서 70%에 가까운 국민들이 김영란법 대상에 언론인 포함을 찬성했다.

이런 여론의 기대처럼 김영란법 시행 1년을 경험한 기자들은 일상적으로 이뤄졌던 언론인에 대한 '편의 봐주기'는 취재 현장에서 많이 사라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 취재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인식 자체가 바뀌기 위해서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달라진 식사·선물 문화 회사에서는 '영란카드'도 지급도
김영란법에서 '3만원 이하'로 규정한 식사비 규정은 기자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자기 밥은 자기가 사 먹자'라는 자조어린 비판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동안 취재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식사비를 전가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기자들 사이에서는 "취재 역량이 줄어들었다"라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기자들이 일상적으로 취재원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닌다'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기사화를 원하건 원하지 않건 기자와 취재원의 사이에서 기자가 우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취재원이 기자들을 '대접'하는 것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는 관행처럼 이뤄지던 취재원들과 식사도 껄끄러워졌다. 서울 소재 한 방송사 사회부 기자인 A씨는 "예전에는 일상적으로 이뤄지던 취재원과의 술자리, 식사자리가 확실히 줄어들었다"라며 "그렇다고 약속을 만들이 않는 건 아니지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더치페이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이 활동하던 지난해 12월 박영수 특검이 기자 40명과 점심 식사를 하고 더치페이를 하면서 기자들이 식당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 20여분 간 계산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자들이 '더치페이'하는 문화가 생겨나면서 언론사들이 기자들에게 별도의 취재비를 추가로 지급하는 일도 생겼다. A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회사로부터 소위 '영란카드'라고 불리는 법인카드를 받았다. A씨는 "(지원되는 금액이) 많은 돈은 아니지만, 취재원 만나서 밥 한끼 하는 것에 부족하다는 생각은 안 든다"고 말했다.

출입기관에서 행사·명절 때마다 기자들에게 주었던 '선물' 문화도 크게 바뀌었다. 최근까지 스포츠부에서 구기 종목을 담당했던 일간지 기자 B씨는 "예전에 경기가 있을 때면 구단에서 취재 기자들에게 입장권을 많이 줬는데 이제는 없어졌다"라며 "한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구단과 기자들 사이에 간담회를 하면 그때도 선물같은 것을 주곤 했는데 이제는 사라진 것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 경제지 기자는 "명절이 되면 관리가 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선물이 오곤했는데, 김영란법 시행 뒤에는 눈에 띄게 선물이 준 것을 체감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대로 선물을 보내는 기업 홍보팀에서 법위반을 걱정하는 기자들에게 선물을 보내기 전 '김영란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하며 선물 수령 여부를 묻는 경우도 생겼다. 

기업에서 지원하는 출장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산업분야를 담당하는 기자 C씨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기업들이 돈을 들여 출장을 데려가는 경우가 거의 사라졌다"라며 "필요한 경우 기업에서 추첨을 해서 출장을 가는 회사를 정하기는 하는데 이것도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된다"고 밝혔다.

C씨는 "그래도 기업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경우가 줄어드니 오히려 기업에 눈치 보지 않고 기사를 쓸 수 있게 돼 공정성이 확보된 게 같다"면서 "지원을 받고 취재를 가게 되면 아무래도 기업에 우호적인 입장에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기자들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사를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크게 달라진 것도 없어"…"광고라며 돈 받는 회사가 더 문제"

김영란법 시행 전 언론은 법시행이 '언론의 취재역량'을 줄일 수 있으며 '언론자유'를 축소할 것이라는 지적을 쏟아냈다.

한국기자협회는 기자들이 포함된 김영란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가 합헌 판결을 받자 성명을 통해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취재 활동의 제약은 불가피해질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권력이 김영란법을 빌미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릴 가능성을 경계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과거의 우려와는 다르게 현장의 기자들은 김영란법이 취재 역량과 언론 자유 축소에 대해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A씨는 "기자가 꼭 취재원들하고 밥을 먹거나 술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게 불편해졌다고 취재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며 "법의 영향 때문에 3만원 이하의 식사 메뉴가 나오는 등 법의 영향력을 인식해 적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B씨의 경우 "취재 역량이 줄어든다는 생각은 과거의 취재방식을 고집하는 낡은 사고에서 오는 것 같다"라며 "사실 서로 약간 부담스러워 하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것도 크게 없는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앞서 언급했던 C씨의 경우 기업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오히려 언론의 공정성이 높아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B씨는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결탁하는 것은 개인적인 기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차원의 문제인데 김영란법은 너무 기자 개인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기자 개인이 편의를 봐주고 특정인에게 호의적인 기사를 써주면 부정 청탁이 되지만, 회사 차원에서 광고라는 이름으로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협찬기사를 써주는 것은 여전히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있는데 3만원 넘는 식사를 먹느냐 마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B씨의 설명이다. 

◇ '받는데 익숙한 한국 기자' 이제는 바뀌어야

김영란법 시행을 바라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영란법이 법을 강제해 실제로 언론 환경을 어떻게 바꾸었는 지에 대한 분석에 앞서 기자 사회 스스로가 김영란법의 대상이 됐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정수영 한국언론정보학회 연구이사는 "아직도 왜 국민 여론이 기자들을 김영란법의 대상으로 넣길 원했는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며 "김영란법의 효과에 대해 분석하기 전에 이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 이사는 "한 유력지 기자가 김영란법에서 식사비를 규정한 것에 대해 '취재원을 만나지 말라라는 이야기'라며 반발하더라, 정말 문제가 뭔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 같다"며 "법이 기자들이 공짜로 무언 것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것에 대한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 이사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취재를 지원한다는 차원에서 기업이 기자들의 편의를 봐주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라며 "법이 원래 그 취재에 맞게, 언론인들의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성찰의 기회를 가지게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pot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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