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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생리대 안전하다면서 제품명 공개…또 '엇박자' 신뢰 추락

'화학포비아' 불거질 때마다 반복된 '땜질식' 발표
김만구교수 측 정면반박…식약처 신뢰도 또 추락

(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 2017-09-06 06:20 송고 | 2017-09-06 09:13 최종수정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5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 생리대 판매대에서 직원이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2017.9.5/뉴스1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5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 생리대 판매대에서 직원이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2017.9.5/뉴스1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리대 유해성 논란을 두고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을 발표면서 소비자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식약처가 김만구 교수팀의 조사 결과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고 밝힌 지 4일 만에 여성환경연대가 제출한 시험보고서와 생리대 제품명을 공개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진 이후 유해성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이 같은 책임회피식 '엇박자' 발표를 반복해 신뢰 하락을 부르고 있다.

식약처는 아모레퍼시픽 '치약파동' 당시에도 CMIT·MIT 성분이 치약에 포함돼도 안전하다고 입장을 밝힌 직후 정부합동으로는 해당성분이 함유된 모든 제품에 대해 현황조사에 나선다고 밝혀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줬다.

◇식약처 "연구신뢰 어려워" vs 교수측 "식약처 전문성 부족"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식약처 독성·역학조사 전문가로 구성된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는 지난달 30일 김만구 교수팀의 조사 결과에 대해 "과학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과학적으로 따져봤을 때 사용해도 안전에 큰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런데 4일 후 식약처는 여성환경연대가 제출한 시험보고서와 유해물질이 검출됐다는 의심을 받는 모든 생리대 제품명을 공개 발표했다. 식약처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밝힌 조사자료를 공개 대리자로 나선 것이어서 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제품명 추측이 난무하고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검출량·유해성 논란이 계속돼 제조사 동의를 얻어 제품명을 공개한 것"이라며 "생리대 위해성과 관련된 조사 내용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는 취지"라고 공식으로 밝혔다.

다만 조사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실험연구자 측에서 설명하는 게 맞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자 김만구 교수 측은 5일 "식약처 검증위원회는 수질 분야 전문가로 구성돼 저희 측 실험을 분석하는 건 역부족"이라며 "시험 방법과 분석 결과에 자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 측에서 식약처의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 전문성이 오히려 부족하다면서 맞대응에 나선 것.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는 식약처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한 조직이다. 식약처에 대한 전문가와 국민들의 신뢰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화학 전문가 "식약처 발표 이해불가…연구결과도 의심스러워"

이 사안을 유심히 지켜본 화학분야 전문가들은 식약처가 이번에도 과학적인 입증보다는 사회적 여론을 의식해 정책 방향을 정하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신뢰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료들을 대신 공개한다는 점을 이해할 수가 없다"며 "식약처가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고 발표를 할 땐 왜 안전한지도 함께 설명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알 듯 말 듯한 말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식약처가 모든 제품명을 밝혀야 했다면 여러개의 자료들을 분석해 왜 유해하지 않은지 이유를 설명했어야 했다"며 "소비자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발표를 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덕환 교수는 김만구 교수의 실험 결과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강원대 연구진이 완전히 정리하기 전의 자료를 내놓아서 해석해내기 어려웠다"며 "VOC 검출만으로 문제 제기가 가능한지 충분히 확인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생리대 외부에 적용된 접착제에서 방출되는 VOC는 인체 접촉 가능성을 낮다는 사실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며 "이처럼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전문가라면 충분히 검토해서 최종 결과를 확실하게 발표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사안을 두고 식약처의 생리대 검사 항목 중에 휘발성유기화합물질(VOC)이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논란을 불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여성환경연대의 의뢰를 받아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 실험'을 진행해 국내 시판되는 일회용 생리대 10종에서 VOC이 검출됐다고 올해 3월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식약처는 "VOC의 생식기능에 미치는 영향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품질관리기준 항목에 포함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해외에서도 생리대의 VOC 검출 조사를 하는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해외에서도 생리대에 포함된 화학성분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연구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2014년 미국의 여성환경건강단체인 '지구를 위한 여성의 목소리'가 미국 여성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생리대 4개 타입 제품을 분석한 결과 스타이렌과 염화에틸·클로로폼 등 발암성 화학물질들이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주는 생식 독성물질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식약처 "지난해 10월 VOC·농약·벤조피렌 등 104종 연구착수"

식약처는 지난해 10월 휘발성유기화학물질(86종) 농약(14종) 기타·벤조피렌 등(4종)으로 총 104종 대한 인체에 대한 위해성 평가 연구(아주대학교)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리대 유해성 논란이 크게 불거지자 시중에 유통 중인 모든 생리대(56개사 896품목)를 대상으로 벤젠·스티렌 검출량 조사를 8월 착수했다.

식약처는 그러나 환경보건학회 등 관련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역학조사 필요성에 대해서는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학계에서는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을 추적해 인체와 연관성을 찾는 역학조사를 함께 진행해야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경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생리대 제품에 대해서도 위해평가 이외에 광범위한 노출평가와 잘 설계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며 "제품을 사용한 수많은 여성들이 문제를 호소할 땐 원인이 분명 있을 텐데 위해평가에만 집중하면 원인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실제보다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소비자들이 이 생리대를 사용하면서 부작용을 겪었다고 온라인에서 주장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며 "여성환경연대에서 릴리안 제품명을 노출하면서 과학적인 입증보다는 마구잡이식 마녀사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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