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본문 바로가기 회사정보 바로가기

미국은 '지난 25년간' 북한에 돈을 '갈취'당했을까

1993년 대화 본격화…지원은 2009년 사실상 중단
"외교 및 지원 중단시, 북한은 미사일 시험 발사"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2017-08-31 17:38 송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에 25년 동안 얘기해왔고 부당하게 돈을 지불해왔다. 대화가 답은 아니다"라고 트위터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사실일까.
이를 검증하기 위해선 이 메시지에 담긴 3가지 주장을 각각 살펴봐야 한다. △북한과 25년간 대화해왔는지 △이 기간 동안 재정적 지원을 해왔는지 △대화의 결실은 없었는지를 봐야 한다.

◇1993년 외교적 노력 본격화

시간을 26년 전으로 돌려보자. 1991년 12월 31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고 비핵화 공동선언이 나왔다. 1992년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원자력 설비시설의 감찰에 관한 특별조약을 체결하고, 자국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IAEA가 1993년 2월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다음 달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의사를 통보했다. 1차 북핵 위기가 터졌다. 이에 북미 간 대화가 진행됐다. 1993년 6월 로버트 갈루치 국무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 대표단이 뉴욕에서 북한 대표단과 회담을 벌였다.

북미 간 외교적 노력이 본격화된 때다. 하지만 앞서 1992년 1월 뉴욕에서 김용순 북한 노동당 국제비서는 아놀드 캔터 미 국무차관과 회담을 했다. 북미 간 대화의 시발점을 이 회담으로 잡으면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25년이 정확하다.

어쨌든 북한의 NPT 탈퇴 통보 발효 하루 전 북한은 미국의 설득으로 일부 시설에 대한 IAEA 일반사찰을 수락했다. 하지만 효력은 일년 밖에 가지 못했다. 1994년 6월 북한은 IAEA 탈퇴를 통보했고, 미국은 안보리에 대북 제재를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 방북

이때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선 이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94년 6월 방북했고, 북한은 일정한 조건 하에 핵 프로그램 동결 의사를 표명했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대북 지원이 논의됐다.

곧이어 1994년 8월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가 나왔다. 미국은 북한의 핵 활동 동결에 대한 대가로 연간 50만톤 중유 지원, 40억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2기의 경수로(LWR) 건설 등을 약속했다. 

합의 당시 유엔주재 미국 대사였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회고록에서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제네바 합의는 즉각적인 위기를 끝냈고, 북한이 수십 개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깨닫지 않도록 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 합의는 완전히 이행되지 않았다. 수차례의 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결국 핵 프로그램을 재개했다. 2003년쯤 북한은 NPT에서 탈퇴하면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시인했다.

미국은 6자회담의 틀로 회담을 계속했다. 2005년 9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일련의 원칙에 합의했다. 북한은 경제 및 에너지 지원에 대한 대가로 핵시설의 폐쇄·봉인에 합의했다. 어느 정도의 대북 지원은 계속됐다. 하지만 이 합의는 결국 2008년 좌초됐다.

2014년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1995~2008년 미국은 북한에 약 약 13억달러의 지원을 했다. 식료품과 에너지 지원이었다. 이후, 대규모 식량 지원 재개 논의가 이따금씩 진행됐지만 2009년 초쯤에 미국은 사실상 지원을 중단했다.

◇협상의 성과 

북미 간 외교 관계는 부침을 겪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 하에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2000년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는 제임스 켈리 차관보가 2002년 10월 북한을 다녀왔다. 

뉴스위크에 따르면 북한은 비핵화 약속을 계속 지키지 않고 비밀리에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계속했지만 1993~1998년과 1999~2005년에는 미사일을 시험발사하지 않았다. 미국이 지원을 제공하고 치열한 외교적 노력이 개입됐을 때다.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의 조슈아 폴락 선임연구원은 "모든 미사일 시험 발사는 우리가 외교를 중단하고 지원을 하지 않으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해법으로 "대화가 답이 아니다"고 말한 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우리는 결코 외교적 해결책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추구한다. 절대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allday33@

이런 일&저런 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