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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사랑을 공포로 바꾸다

[북리뷰] '이토록 달콤한 고통'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8-17 15:16 송고
© News1

'밤이면 그는 2층 더블 침대에서 그녀와 같이 잠들었다. 그녀에게 팔베개를 해주다 몸을 돌려 그녀를 꽉 끌어안으면 그의 욕정은 상상 속 여체의 무게를 느끼며 여러 번 절정에 도달하고도 그 이상으로 치솟았다. 그런 다음 손으로 침대보를 쓸면 그저 헛헛함과 외로움에 젖었다.'(본문 29쪽)

20세기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로 불리는 미국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1921~1995)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영화 '태양은 가득히'와 '리플리' 등에서 표현된 '톰 리플리'다. 하지만 하이스미스는 1955년부터 36년간 이어질 리플리 시리즈를 쓰던 중인 1960년 이 시리즈의 속편이라 할 만한 '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발표하면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캐릭터를 구축한다. 인간의 심연, 그중에서도 ‘집착’이라는 감정을 세심하게 그려낸 이 작품의 주인공 데이비드 켈시는 사랑의 절절함을 일순 공포로 전환시키는 인물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그렇듯 한가지 색으로만 칠해지지 않는다.  
하숙집 사람들이 ‘성인'(聖人)이라 부를 만큼 예의 바르고 조용하며 회사에서는 유능한 직원으로 인정받는 데이비드는 일주일 중 닷새는 하숙집에, 이틀은 '윌리엄 뉴마이스터'라는 가명으로 구입한 집으로 가 완벽하게 두 세계를 분리해서 살아간다. 월급의 대부분을 대출금 갚는데 쓰면서도 집을 산 이유는 2년전 한눈에 반해 결혼하려고 했지만, 어물어물하는 사이 다른 이와 결혼한 애나벨과의 상상의 결혼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다.

'애나벨이 결혼이라는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잠시 상상한다고 뭐 안 될 게 있을까? 아주 잠시나마 애나벨이 나와 결혼했다고 한숨 돌리며 행복한 상상에 빠지는 게 왜 안 되는데?'(본문 27쪽) 

하지만 온순한 듯한 주인공 데이비드의 모습은 상상의 그녀와 느끼는 달콤함과 쓸쓸함이 절절할수록 더욱 기괴해진다. 애나벨이 원치 않는 결혼을 했기에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믿는 주인공은 수없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과 전화를 기다린다. 그 와중에 데이비드와 같은 하숙집에 살면서 그를 짝사랑하는 에피가 데이비드의 친구 웨스와 함께 그의 뒤를 밟으면서 상상의 세계는 균열이 생기고 주인공은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현실에 발을 디디게 된다.
사랑과 집착도 네 남녀로 확대된다. 이유를 확실히 밝히지 않으면서 데이비드를 거부해 더욱 애타게 하는 애나벨, 애나벨에 집착하는 주인공을 비난하면서도 거울처럼 똑같이 지긋지긋한 집착을 보이는 에피, 에피를 좋아하면서도 마음을 숨기고 주인공에게 이죽거리는 친구 웨스는 뒤틀린 사랑의 감정에 탐닉하는 '병증'을 가진 이들이 주인공 데이비드뿐이 아닌 것을 보여준다.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완벽한 또 다른 자아인 뉴마이스터를 꿈꾸었던 데이비드는 상상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자신을 아껴주었던 하숙집의 노부인으로 자신의 생명보험의 수혜자를 바꾼 뒤, 갖지 못한 사랑과 상상 속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스스로 파멸을 향해 간다.

하지만 마지막 주인공의 모습은 치정때문에 생을 그르친 지질한 '스토커'의 모습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공포와 연민을 재료로 캐릭터를 구축해내는 작가의 힘 뿐 아니라 사랑이 착각으로 시작해 자기애로 굴러가는 '미친 짓'임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1만4000원)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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