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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종 칼럼] 삼성전자와 인텔의 반도체 왕위전

| 2017-08-07 13:44 송고 | 2017-08-09 15:04 최종수정
© News1
나는 전자공학이나 정보통신기술에 무지(無知)하다. 해서 전자 및 정보통신(IT) 분야의 업계 추세는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는 기사를 보고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조감도를 내려다보듯 이 분야 판도를 깊게 멀리 내다보지 못한다.

이런 인식 수준으로 볼 때도, 삼성전자의 2분기(4, 5, 6월) 영업실적은 경이롭다.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3개 주력 부문에서 모두 세계 1위다. 요즘 대학생들에겐 이런 삼성의 실적이 하나도 놀랍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세상눈을 떴을 때 삼성전자는 세계적 글로벌 기업이었으니까. 그러나 한 세대 전 뉴욕의 쇼핑몰에서 삼성전자 TV가 소니에 밀려 초라하게 구석에 진열되어 있던 기억을 가진 나에게는 충격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어떤 곳인가. TV, 스마트폰, 반도체의 원조(元祖) 국가다. TV는 일찍 일본 소니에 1등을 내줬지만 스마트폰과 반도체 분야에선 ‘애플’과 ‘인텔’이란 원조 기업이 아직도 막강하게 버티고 있는 곳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는 지난 몇 년간 미국 시장 점유율을 놓고 애플의 아이폰과 1위를 뺏고 뺏기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왔다. 작년 갤럭시7 배터리화재 사고로 애플에 정상을 내줬고 그 후유증이 한참 갈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올해 갤럭시S8 출시가 히트하면서 애플을 꺾고 다시 1위로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1400만대를 팔아 미국시장 점유율 33.3%를 차지했고, 애플은 1010만 대를 팔아 24%로 밀렸다.

스마트폰 시장에도 일종의 국가경쟁력 흐름이 있는 것일까. LG전자도 2분기 미국에서 720만대를 팔아 점유율 17.1%로 3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 스마트폰 시장의 50.4%를 과점했다. ‘스마트폰 한류’라 할 만하다.
실로 놀라운 것은 2분기 반도체 실적이다. 매출과 영업이익 규모에서 삼성전자가 인텔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세계 1위로 등극했다. 매출에서 삼성전자는 17조5800억 원이고, 인텔은 16조6600억 원이다. 삼성이 인텔을 약 1조원 앞섰다. 영업이익은 삼성이 8조300억 원이고, 인텔은 4조2900억 원이다. 돈벌이를 삼성전자가 2배나 잘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20년 이상 메모리 분야에서 시장을 지배해왔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를 석권하고 있는 인텔에 매출 규모에서 언제나 밀렸다.

삼성전자는 어떻게 반도체 매출 1위로 등극한 걸까.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걸 보면, 세계 산업 환경의 새바람이 삼성전자 쪽으로 불고 있는 것 같다. 스마트폰 등 IT산업 환경의 변화로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폭발하는 추세다. 앞장선 기술과 월등한 시정점유율을 가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증가와 가격상승으로 꿩 먹고 알 먹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IT회사로 성장한 것이 스마트폰 시대에 잘 올라탄 덕택이었다면, 이제 스마트폰 시대의 확대로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수요증가를 부른 셈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도약을 놓고 “인텔시대의 종언”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보면 반도체 시장 환경이 변하는 것을 미뤄 짐작할 만하다.  

문득 1994년 말 실리콘밸리 인텔 본사에서 앤디 그로브 최고경영자와 인터뷰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1993년 펜티엄칩을 출시하여 전 세계의 화제를 모으고 있던 인텔의 전설적인 CEO였다. 당시 미국의 전통산업은 일본에 밀려 위기감이 팽배할 때였는데, 실리콘밸리가 미국의 성장 동력으로 부상하고 있었으며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미국 IT산업의 총아였다.   

반도체 기업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도 손을 댔으나 1980년대 도시바 등 일본 기업의 공세로 나오자 인텔은 CPU, 즉 시스템 반도체에 집중했다. X86 시리즈로 기선을 잡더니 펜티엄칩을 출시하며 PC시대를 제압했다. 그때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일본기업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PC의 기판 속에는 삼성전자의 메모리칩과 인텔의 CPU가 똑같이 들어갔지만 그 PC의 가치는 ‘인텔인사이드’(intel inside)' 캠페인에 압도되고 있었다.      

그때 인텔의 간부는 메모리칩과 펜티엄칩을 혼동하는 나에게 재미있게 그 차이를 설명해줬다. 컴퓨터를 인간으로 간주한다면, 인텔이 만드는 CPU(펜티엄칩)는 두뇌에 해당하고 삼성전자가 만드는 메모리칩은 정보를 기록해두는 노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같은 반도체지만 차원이 다른 일을 한다는 인텔의 우월감이 배어나오는 설명이었다. 그 후 23년이 흐르는 동안 반도체기술은 괄목할 진화를 거듭했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인텔 간부가 말한 메모리칩과 CPU의 차이점으로 그대로 남아있다. 

당시 나는 앤디 그로브 CEO에게 삼성전자의 미래 가능성을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삼성전자는 대단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재정적으로 삼성전자가 어려우면 삼성재벌이 나선다. 삼성재벌이 힘이 모자라면 한국정부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텔은 사면초가다. 이 실리콘밸리 곳곳에 인텔이 망하기를 기다리는 경쟁자가 널려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로브는 연구개발(R&D)과 투자재원의 중요성, 그리고 한국의 재벌지원정책을 얘기를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시간은 참 무서운 변화를 불러왔다. 거의 25년 동안 산업 환경과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했고, 삼성전자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했다.  ‘황의 법칙’이니 ‘낸드플래시’니 하는 기술 혁신을 자랑했지만, 나 같은 문외한들은 언론에 보도되는 실적 보도를 보고 들어야 글로벌 기업으로서 삼성전자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인텔의 주특기인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주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도약으로 매출 1등을 내놓긴 했어도 인텔은 견실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과거 독보적이었던 것과 달리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 인텔을 쫓아오고 있다.

기술기업으로서 인텔은 자율주행차와 AI 분야로 시야를 넓혔다. 인텔은 지난 3월 이스라엘 벤처기업 ‘모빌아이’를 무려 153억 달러를 주고 사들였다. 인공지능 칩을 탑재한 카메라와 센서가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분석하여 앞차와 간격을 유지하고 추돌위험을 피하게 할 수 있는 첨단 운전자 보조시스템을 개발한 곳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지적대로 ‘인텔시대의 종언’이 올까. 삼성전자는 어떻게 변할까. 모를 일이다. 인텔이나 삼성이나 그들의 운명은 4차산업혁명 시대와 맞물려 있지 않을까. 

1994년 시애틀 어느 구석에서 책방을 열고 인터넷 구매자에게 택배로 배송해주는 장사를 시작했던 아마존. 그 창업자이자 CEO 제프 베조스가 지금 미국 유통업계에 돌풍을 일으키며 빌 게이츠와 세계 부자 순위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는 판이다. 기업의 운명도 사람의 운명처럼 가늠하기 힘들다.

삼성전자가 오늘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것은 리더들의 혜안과 선택, 수많은 종업원들의 집단 노력, 그리고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뉴스1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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