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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적발 대포폰 11만대…'명의제공자'도 처벌하면?

"사기범죄 근절에 필요" vs "취약계층 범법자 양산"
전문가 "범죄예방 효과부터 검토해야"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2017-07-30 06:00 송고 | 2017-07-30 13:33 최종수정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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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휴대폰 매장을 운영하던 김모씨(35)는 지난해 4월 새 부업이 생겼다. 바로 매장을 방문한 고객과 지인의 명의로 '대포폰'을 개통해 팔아넘기는 일이었다.

김씨가 이렇게 5개월 동안 판매한 대포폰은 379개. 김씨는 대당 15만~20만에 넘겨 꽤 짭짤한 부수입을 챙길 수 있었다. 대포폰은 유통업자를 통해 대부분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어가는데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만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58억여원의 사기피해를 당했다. 경찰은 지난 6월 김씨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대포폰을 악용한 범죄가 날로 확산되고 있다. 30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적발된 대포폰은 2014년 1만1490대, 2015년 1만9354대, 2016년 11만3258대로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몇몇 특정사건에서 대포폰이 대량으로 적발되면서 폭증했다.

관련 범죄 적발건수도 매년 상승곡선을 그린다. 수사기관에 적발된 숫자보다 최대 10배 많은 대포폰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 경찰의 추산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포폰 범죄 처벌수위를 강화하는 관련법 개정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대포폰 '명의제공자'까지 처벌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자금을 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명의를 제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하지만 이들 명의제공자가 대부분 경제적 취약계층이라는 점은 걸림돌이다. 대포폰의 싹을 잘라내는 방법이 묘연한 상황에서, 억울한 범법자만 양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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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받고 명의 제공…대부업화한 '휴대폰깡' 처벌해야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에는 대포폰을 유통시키거나 범죄에 이용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처벌하고 있지만 명의제공자 처벌규정은 없다. 개정안에 따르면 돈을 받고 휴대폰을 건네는 경우, 대포폰을 사용한 사람처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최명길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일정 돈을 받고 명의를 넘기는, 일명 '휴대폰깡' 때문에 대포폰이 늘고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명의제공자도 유통업자와 같은 수위로 처벌한다면 시장에 공급되는 불법 대포폰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 의원 측은 "대포폰 적발 사례 중 휴대폰깡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정을 추진하게 됐다"며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도 중대한 범죄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대포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경찰관계자는 "불법 유통되는 대포폰 숫자를 줄이는 데에는 일정 효과가 있을 것 같다"면서 "다만 대포폰 범죄가 고도화·지능화해가고 있는 만큼 실효성은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노숙인·신용불량자가 명의제공…노숙인 대포폰고지서 1인당 평균 550만원


이같은 움직임에 시민단체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돈을 받고 명의를 넘기는 사람들 대부분이 노숙인, 신용불량자 같은 경제적 취약계층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노숙인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대포폰이 개설돼 요금폭탄을 맞는 등 피해가 빈번하기 때문에 형사적으로도 처벌받을 경우 2차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급전이 필요한 이들 취약계층은 대포폰 개통에 주로 이용돼왔다. 업자로부터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가량의 돈을 받고 휴대전화 개설신청서에 서명하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태미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취약계층 중에서도 국가 보호망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노숙인은 브로커가 선호하는 집단"이라며 "들어가는 비용이 적고 유인하기도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홈리스행동이 2013년 조사한 '명의도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노숙인 4명 중 1명이 자기 명의의 대포폰 고지서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피해를 경험했다. 평균 피해금액만 550만원에 달했다. 개통업자가 이들의 경제관념이 부족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태 활동가는 "이미 몇몇 노숙인들이 범죄에 연루돼 벌금을 물고 있는 상황에서 징역형도 받을 수 있다니 난감하다"며 "명의제공자 처벌 개정안의 대응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뉴스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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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포폰이 엄청난 불법행위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취약계층이기 때문에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근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면서도 "다만 이들을 처벌하면서 범죄예방효과가 있을지는 또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하 교수는 "예방효과 없이 처벌받는 사람만 양산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취약계층이 그런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국가가 도와주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wonjun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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