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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개혁①]이런 경찰에 수사권?…수사력 먼저 키워야

과장·팀장, 사건 기록 안 보고 檢 송치…불신 자초
12만 조직, 잦은 경찰 비위사건에 안이한 인식

(서울=뉴스1) 차윤주 기자 | 2017-05-04 06:00 송고 | 2017-05-04 09:10 최종수정
편집자주 유력 대선 후보들이 공히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약속하면서 차기 정부에서 경찰이 수사권을, 검찰은 기소권을 갖는 수사구조개혁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높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개혁하기 위한 방안으로 논의돼왔다. 하지만 수사권 독립이 능사일까 하는 꼬리표는 여전히 남아있다. 뉴스1이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경찰 안팎의 기대와 우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 등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11월17일 오전 광주 법원 앞에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청구인 최모씨(32)의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노경필)는 이날 살인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한 최씨가 청구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6.11.17/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지난해 11월17일 오전 광주 법원 앞에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청구인 최모씨(32)의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노경필)는 이날 살인 혐의로 기소돼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한 최씨가 청구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최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6.11.17/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 영화 '재심'은 2000년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뤘다. 당시 범인 도주를 목격한 10대 소년 최모씨(33)는 경찰과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범인으로 몰렸다. 진범이 따로 있었지만 최씨는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고, 지난해 11월 16년만에 무죄를 확정지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당시 수사과정에서 적법 절차와 인권 중심 수사원칙을 준수하지 못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경찰의 잘못된 수사에 대해 경찰청장 명의로 공식 사과문이 나온 것은 개청 이래 처음이었다.
 
# 지난 25일 서울의 한 경찰서장인 A 총경(58)이 구속됐다. 법원은 뇌물수수 등 혐의를 받는 김 총경에 대해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가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 총경이 부하직원에게 승진청탁 명목 등으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졌을 때 경찰 내부에선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찰을 길들이기 위한 검찰의 표적수사"라는 불만이 새어나왔다. 김 총경이 결국 법정 구속되자 이런 말은 쑥 들어갔다.
 
5월9일 있을 대선에 출마하는 유력 후보들이 앞다퉈 검·경 수사구조개혁을 공약하면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차기 정부에서 경찰의 오랜 숙원인 수사권 독립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크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조차 미덥지 않은 경찰에 수사권을 줘도 되겠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부패한 검찰을 개혁하고 수사·기소권 동시 독점에 따른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떼어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와 별개로 경찰 개혁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경찰 수사력 논란…"수사경찰 역량 천차만별"

한국 경찰의 수사력은 얼마나 될까. 경찰의 중요 범죄 검거율은 상당한 수준이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5대 범죄 검거율은 76.9%로 전년보다 5.2%포인트(p) 올랐다. 특히 강도(101.6%, 전년도 사건 검거 포함), 살인(99.2%), 강간·강제추행(96.6%) 등 검거율이 100%에 근접하고 폭력(87.5%), 절도(58.3%) 검거율도 계속 오름세다.
 
하지만 드러난 통계와 달리 수사현장에선 경찰의 수사력을 반신반의하게 하는 증언들이 쏟아진다.
 
수도권에서 경찰서장을 지낸 전직 경찰 고위 인사는 "서장 재직 시절 관내 사기 사건에 수사관이 엉뚱하게 은닉죄를 의율(擬律)한 사건이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과거 비슷한 사건을 그렇게 처리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며 "아무래도 이상해서 과거 사건 결과를 가져오라고 하니 검찰로 넘어간 뒤 죄명이 바뀐 사건이었다. 수도권에서 규모가 손꼽히는 경찰서도 이런데 한적한 지방 경찰서 수사관들의 수준은 오죽하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 같은 상황에 경찰에 수사권이 넘어와도 문제"라며 "나는 관심있는 사건은 직접 수사기록을 챙겨봤는데 서장은 물론 담당 과장·팀장 조차 기록을 보지 않고 검찰에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일선서 수사과장을 지낸 한 경정은 "기소 여부를 정하는 검사, 판결을 하는 판사는 골무를 끼고 한장 한장 기록을 넘기며 진술과 증거를 검토하는데 경찰은 과장·팀장들도 원 수사기록을 보지 않는다"며 "이런 우리의 수사관행을 누가 알까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2015년 기준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 중 검찰이 각하·무혐의·죄가안됨으로 처분한 피의자가 2만8599명이다. 반대로 경찰은 죄가 안된다고 봤지만 검찰의 기소 처분을 받은 사람은 3980명이다.
 
경찰은 그동안 수사·기소권을 동시 독점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온 검찰을 개혁하기 위한 도구로 수사권 독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차기 정부에서 경찰이 수사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큰 만큼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내부 역량부터 먼저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위해 수사직군을 완전히 분리해 경찰 본연의 업무인 수사 전문성을 높이고, 자치경찰제 등을 도입하는 방안이 꼽힌다.
 
경찰청 관계자(경정)는 "평생 수사업무만 맡는 검찰수사관과 비교해 지금은 경찰의 수사 전문성과 경력, 노하우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일선 경찰서에서 수사 업무 기피현상이 심해지고 있는데 현행 수사경과제도나 수사경찰에 대한 인센티브, 교육 등으로는 이를 해소할 수 없다. 수사경찰을 완전히 분리해 전문성을 높이고 일선 경찰서 사건수사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허구한 날 터지는 고위간부 비위

경찰 조직의 비위, 기강해이 문제도 심각하다. 직급을 불문하고 비위 경찰 사건이 사흘이 멀다 하고 터져나온다. 
 
전국 경찰을 관할하는 경찰청에서 감찰업무를 맡았던 경찰서장 A씨(58)가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되는가 하면, 최근 의료업계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전남 한 경찰서장 B씨(48, 총경)가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2년 서울 한 경찰서장 재직시절 관내 대학병원에서 '공짜 VIP 건강검진'을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C씨(54, 경무관)는 최근 정직 2개월에 처해졌다. 
이밖에 부산에선 중간간부(경위) 두 명이 도박사건에 연루되는가 하면, 전남 목포에선 근무 중 순찰차에서 애정행각을 벌인 경사(47)와 순경(29·여)이 적발됐다. 수사권이란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될 경찰 내부부터 변화와 자정노력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내부의 상황인식은 안이하기만 하다. 한 간부 경찰은 "일반 공무원 9급에도 못미치는 순경들 비위까지 기사가 나온다. 경찰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공직사회와 비교해 유독 경찰을 향한 잣대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하소연했다. 
 
경찰 내부에선 비위 문제가 지적될 때마다 "머릿수가 워낙 많아서 드러난 건수가 많을 뿐 현원 대비로 보면 검찰보다 비율이 훨씬 낮다. 우병우·홍만표·진경준 등 고위 검찰 인사들이 사회에 끼친 해악에 비할 바가 못된다"는 변명이 나온다. 혹은 "수사권 조정을 막기 위해 검찰이 경찰을 비리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불만도 크다.
 
실제로 A 총경 사건이 터지자 경찰 내부에선 '수사구조개혁 논의 과정의 희생양'이란 동정론이 나왔었다.
 
경찰 관련학과 한 교수는 "검·경이 서로의 비위를 놓고 힐난하는 이러한 행태 때문에 수사권 독립 문제가 국민들 눈에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는 것"이라며 "독립된 수사권을 갖게 될 경찰이 그 위상에 걸맞은 조직 정비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cha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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