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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위, 국내 1위 해운회사였던 한진해운이 결국 파산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채무 재조정이 어려운 '비협약 채권(시장성 부채 등)'이 과도하게 많았다는 점이다. 2015년 말 기준으로 한진해운 회사채는 1조5000억원, 선박금융은 3조2000억원에 달했다. 총 차입금(5조6000억원)의 85%가 비협약 채권이었다. 반면, 은행 등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7000억원에 불과했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도 다르지 않다. 산업·수출입은행과 시중은행 여신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국민연금을 포함해 개인·기관투자자가 보유한 회사채·기업어음(CP)도 1조5500억원에 이른다. 채권은행 주도로 마련한 자율적 구조조정안이 사채권자의 반발로 난항인 까닭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런 이유로 "외환위기(IMF) 이후 정부나 채권은행이 주도해 온 구조조정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며 "새로운 구조조정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채권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져 채권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그 고민의 결과물이 금융위원회가 13일 발표한 '신(新) 기업구조조정 방안'이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워크아웃(채권은행 중심의 기업개선작업)·'법정관리(법원 주도의 기업회생절차)'를 양대 축으로 하는 현행 구조조정 방식을 자본시장의 영역으로 다양화하겠다는 것이다. 앞으론 기업구조조정 펀드가 채권은행으로부터 부실기업을 사들여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회생형 초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프리패키지드플랜)'도 활성화한다. 

민간 구조조정 시장이 커지려면 시장 참여자를 유인할 좋은 매물(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은 은행들이 자체 신용위험평가 기준으로 부실징후 기업(C=워크아웃, D=법정관리)을 선정하지만, 선제적 구조조정과 부실기업의 적기 매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은행 평가 체계의 객관성과 합리성이 부족해 엄정한 평가가 불가능하고, 기업과의 거래관계와 대손충당금 적립 우려로 온정적으로 신용위험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앞으론 은행 신용위험평가 모형을 대폭 개선하고, 금융감독원이 평가 체계의 객관성과 적정성을 점검한다"고 했다. 

은행 직원들이 부실징후 기업을 구조조정 대상기업으로 적극적으로 선정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와 패널티도 준다. 약정 체결 후 1년 단위로 워크아웃 연장 여부를 엄격하게 재평가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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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처럼 기업 회생(turn around)형 구조조정 채권 시장도 활성화한다. 사모펀드 등 자본시장 전문가가 채권은행이 내놓은 부실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해 구조조정을 주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책금융기관, 민간 투자자가 마중물인 기업구조조정 펀드 조성에 나선다. 향후 5년간 총 8조원 규모다. 독립 운용사(한국성장금융)가 운용하는 모(母)펀드와 구조조정 전문 민간 운용사의 자펀드 등 '모자형 펀드'로 설계할 계획이다.   

부실기업 매각 지연을 막기 위해 매도자(채권은행)·매수자(PEF)간 매매 가격 이견을 조정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의 '금융채권자 조정위원회'가 '준거가격'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금융위는 아울러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의 장점을 결합한 P플랜도 구조조정 제도의 주요한 축으로 활성화할 계획이다. 자율적인 구조조정 실패 시 P플랜 돌입을 추진하는 대우조선이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새로운 구조조정 방안의 실효성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방안에는 금융위가 은행들의 구조조정 기업 매각 지연 방지 대책으로 내세운 핵심 대책이 빠졌다. 제3의 평가기관을 통한 구조조정 기업의 공정가치 평가, 공정가치를 받아들이지 않은 은행에 대한 충당금 적립 의무 부과 등이 대표적이다. 

한 구조조정 시장 전문가는 "국내 자본시장의 구조조정 PEF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며 "태부족인 기업 구조조정 시스템과 인프라를 강화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빠져 있어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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