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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러려고… TT" VIP 집사로 전락하는 은행원들

"일반 창구 100명보다 VIP 1명이 낫다"…VIP 마케팅 대세
"발레파킹은 기본이에요" 어느 VIP 전담 은행원의 하루

(서울=뉴스1) 전준우 기자 | 2017-04-04 06:10 송고 | 2017-04-04 08:58 최종수정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초부유층(VIP)을 상대하는 A은행 김 과장. 오늘도 전담 고객에게 거는 안부 전화로 하루를 시작한다. 기념일이 있는지 꼼꼼히 챙기고, 연락이 뜸했던 고객에겐 기념일이 아니더라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유대 관계를 형성해야 장기적으로 재산을 맡길 가능성도 크다.

VIP 고객이 점포에 직접 방문하는 날이면 직접 나가 발레파킹하는 것은 기본 서비스다. 얼마 전엔 VIP 창구를 찾은 할머니를 차로 집까지 바래다줬다.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VIP 고객을 놓칠까 봐 꾹 참고 다녀왔다. 대출 상담을 받은 한 고객이 병원에 입원했다고 연락이 와 직접 대출 서명서를 들고 다녀온 적도 있다.
과거 자산관리는 은행원이라면 누구든지 한 번쯤 맡고 싶은 인기 업무였다. 하이클래스의 고객을 상대하고, 높은 실적과 두둑한 성과급도 받았다. VIP만 상대하다 보니 자신도 고액 자산가처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동료도 더러 있었다.

VIP 자산관리 업무를 위해 은행에서 하는 금융사관학교를 거쳤다. 약 7개월 동안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1박 2일에 걸쳐 수업을 듣는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업무에 시달리다 쉴 새 없이 교육에 매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자산관리 업무는 전문적이고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최근에는 은행들이 너도나도 VIP 마케팅에 두 팔 걷어붙이면서 처음 시작했을 때 자부심은 어느덧 온데간데없다. 경쟁에 치여 하루하루 고달파졌다. 최근엔 고객 수익률을 인사 평가에 반영하면서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다. 요즘 같은 1%대 초저금리 시대에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 나서는 여정이다.
초저금리에 경기 불황까지 겹쳐 일반 예금 창구에선 푼돈만 오간다. 일반 입출금 창구에서 100명 넘게 손님을 받는 것보다 10억원대 VIP 자산가 1명을 전담 관리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다. 일반 지점 한쪽에 VIP 전담 창구가 마련된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일반 창구 직원 10명의 실적보다 VIP 전담 창구 2명이 지점 전체 월 수익의 50~60%를 차지한다. 자칫 소홀히 했다가는 점포 전체 실적이 휘청인다.

VIP에 고달픈 이유는 또 있다. 첫 발령지는 서울의 전통적인 부자 동네에 있는 지점이었는데,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다. 금융 지식에 해박한 부자들은 은행원을 시험하기 일쑤다. 수십억원대 재산을 통째로 맡기는데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도 이미 다 아는 시황 설명을 해보라고 주문할 땐 서운함도 컸다.

매일 고달픈 삶의 연속이지만 가끔 보람을 느낄 때도 있다. 최근 부동산으로 수억원대 자산을 만든 60~70대 고령층을 고객으로 유치했는데, 이들에겐 높은 수익률로 자산을 굴리는 것보다 말벗해주는 친구가 더 귀중해 보인다.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하면서 은행 점포가 점점 문을 닫고 있지만, VIP 자산 전담 점포는 사라질 일 없다고 확신한다. 많은 부자가 여전히 디지털을 믿지 못하고, 사람 냄새를 그리워하는 경향도 짙다.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junoo5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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