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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법률로 '법관 독립' 보장하는데도 현실에서 어려운 이유는?

(서울=뉴스1) 윤진희 기자 | 2017-03-25 17:47 송고 | 2017-03-25 18:32 최종수정
법원 내 대표적인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이 25일 연세대 광복관 별관에서 '국제적 비교를 통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법관 독립강화의 관점에서'이라는 주제로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2017.3.25/뉴스1 © News1 성도현 기자

현직 법관 대다수가 대법원장과 법원장 등의 정책에 반하는 의사표현을 할 경우 신분상 불이익을 입을 수도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발표됐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법관이 오로지 양심과 법률에 따라 재판을 할 수 있는 법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해 두고 있다.
그럼에도 법관들은 사법부 외부가 아닌 사법부 수뇌부로부터 ‘법관의 독립’을 침해 받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 결과 나타났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법관의 88.2%는 대법원장 등의 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했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청와대를 포함한 행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했을 때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법관도 45.3%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법관들이 사법부 외부보다 법원 수뇌부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다.
결국 설문조사 결과는 '법관 독립'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등 사법부 수뇌부로부터 침해될 개연성이 높고, 법관의 독립 훼손이 사법부 내의 '위계질서'에 의해 침해 되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를 맡은 법학자들과 법관들은 독립을 침해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공통적으로 '제왕적 대법원장'과 '사법부 관료화'를 꼽았다.

△ 제왕적 대법원장 · 사법부 관료화 … '법관 독립' 어떻게 침해하나?

대법원장은 현행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관 인사권 △전보인사권 △법관 해외연수 선발권 △30여 법원 법원장 임명권 △대법관 임명 제청권 등 말 그대로 ‘제왕적’ 권한을 행사한다.

이렇듯 막강한 대법원장의 인사권 독점 등이 일선 법관들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개별 법관들은 법원장의 인사 평정권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또 법원장들은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권을 의식하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법관 전체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에서 확인 할 수 있듯 사법부 내 법관들이 사법부 수뇌부의 정책 등에 반대 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장이 3000여명에 이르는 모든 법관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이른바 사법부 내 엘리트코스라 할 수 있는 법원행정처 보직에 대한 인사권 또한 갖고 있는 상태에서 법관 독립의 보장은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법관들이 승진 등 '인사'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면 문제될 것 없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에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특히 인사권 독점은 법관의 독립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됐다.

법관 독립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사법부 관료화'가 지목됐다. 이날 세미나에 초론자로 참석한 하선화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관료화는 법관독립을 위협하고 이는 공정한 재판에도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하 판사는 "관료화는 상명하달식 소통으로 빠르고 효율적인 일처리에 적합하고 승진을 위해 성과물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며 "관료화 된 상태에서는 상급자의 의사가 하급자의 의사보다 더 중요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때문에 법원이 관료화되면 대법원장, 법원장, 수석부장, 일선법관의 방향으로 의사가 하달되고, 기획법관의 역할이 과장돼 판사들이 법정에서 사건을 심리하기 보다 판결문 작성이나 공적이 될 만한 일에 치우칠 수 있다"며 사법부 관료화의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 법관 다수 '법관 독립 강화 필요성'에 공감 … 실현 가능성은?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와 토론을 맡은 현직 법관들과 법학자들 모두 법관 독립 강화 필요성에 의견을 모았다. 사법부 독립의 외관은 형성하고 있지만 개별 법관들의 독립성이 사법부 수뇌부로부터 침해 받고 있다는 문제점에 대한 인식도 같이 했다.

문제는 사법부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대법원장과 사실상 대법원장의 보좌기구인 ‘법원행정처’가 이러한 법관들의 ‘독립 강화’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데 있다.

대법원장과 좋은 보직으로의 승진이 보장 된 소위 ‘행정처 판사’는 사법부 내에서도 ‘기득권’에 해당한다. 기득권 세력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권한을 나누고 쪼개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진정한 사법부 독립과 법관 독립 강화를 위해서는 현행 헌법과 법률이 대법원장에게 인정하고 있는 막강한 권한을 분산시키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현행 헌법상 대법원장은 대통령에 대한 대법관의 임명제청권은 물론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제청권도 행사할 수 있다.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 에 따라 ‘기계적’ 권력분립을 한 결과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은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위원회의 위원과 위원장에 대한 인사권도 행사한다. 대법원장이 법원 출신 인사를 각종 위원회의 상임위원이나 위원장 등으로 임명 또는 추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법원장이 이러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이상 대법원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시도는 계속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재 지니고 있는 권한을 쪼개고 ‘법관 독립’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법권 독립이 현실화 하기 위해서는 사법부 수뇌부의 자발적 권한 내려놓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헌법과 법률의 개정 등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는 진단이다.[법조전문기자·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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