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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현장 표심-제주] “잘살게 해주면 좋겠는데…찍을 사람 없네”

“누가 되도 똑같을 것” 정치 회의감 지배적
민주 지지자 “대선 후보 누가 되느냐가 관건”

(제주=뉴스1) 안서연 기자 | 2017-03-22 16:29 송고 | 2017-03-23 09:41 최종수정
22일  손님과  상인들로  붐비는 제주민속오일장. 2017.03.22/뉴스1 © News1 안서연 기자
22일  손님과  상인들로  붐비는 제주민속오일장. 2017.03.22/뉴스1 © News1 안서연 기자

“당최 누굴 뽑아야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지 모르크라(모르겠다). 배신감이 너무 커부난(커서) 정치인들 하는 말이 죄다 거짓말 같주게(같다).”

22일 오전 제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제주민속오일장에서 만난 제주도민들은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지난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을 뽑았다는 고모씨(57)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지지자였는데 이제는 너무 지쳤다. 어떤 게 진짜고 가짜인지 모르겠다”며 “친인척이 없어서 청렴할 줄 알았는데 측근 비리로 탄핵까지 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고씨는 이어 “누가 (차기 대통령이)돼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주위에서도 정치에 대한 회의감이 심하다”며 “투표는 할 생각이지만 자유한국당도 싫고 바른정당도 싫어서 누굴 뽑아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일장에서 신발을 파는 김모씨(50)는 “별다른 게 있겠느냐. 그저 서민 좀 잘 살게 해주면 좋겠는데 지금 나온 후보들은 다 성에 안 찬다”며 “그동안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사람이 문재인이라서 아무래도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하는데 확신이 들진 않는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씨는 이어 “사실 제주는 국회의원 3석을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하고 있지만 유력한 당이랄 게 따로 없고 궨당(친인척을 뜻하는 제주 사투리)에 따라 움직이는 게 강하다”며 “당을 떠나서 공약을 보고 피부에 와 닿는 사람에게 한 표를 던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으로 인해 자유한국당에 등을 돌린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뚜렷한 지지정당이나 지지자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내와 함께 약재 장사를 하는 황모씨(52)는 “자유한국당만 아니면 된다”면서 “이재명이나 안철수 중에 고민 중인데 이재명은 서민을 잘 이해해줄 것 같고 안철수는 두루 아우르면서 잘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취재 중인 기자를 불러 세운 김모씨(65)는 “여론이 어떻게 흐르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보수 쪽에 인물이 없긴 한데 그나마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 믿음이 간다. 그동안 여기저기 다니면서 설움을 받지 않느냐. 억울함이 보여서 그를 찍어주고 싶다”고 피력했다.

아내와 함께 시장에 들른 소모씨(33)는 “더불어민주당에 마음이 가긴 하는데 어떤 후보가 좋을지 확신이 없다”며 “누가 대선 후보로 나오느냐에 따란 다른 정당으로 눈을 돌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여지를 남겼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박모씨(28) 역시 “안희정을 원하기 때문에 문재인이 대선 후보로 나오면 차라리 국민의당에 표를 던질 생각”이라며 “정치인으로서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 기득권이 아니라 급변의 시대에 걸맞은 사람이 대통령이 돼 주길 바란다”고 소견을 밝혔다.

옷가게를 하는 강모씨(50)는 “다른 당은 너무 썩었다. 개인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을 지지하는데 파급효과가 클 것 같아서 이번에는 문재인을 뽑을 생각”이라면서 “문재인이 먼저 점진적으로 기반을 잡고 이재명이 다음 대통령으로 나와서 사회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강씨의 이모부 김모씨(75)는 “나는 조카와 생각이 다르다”면서 “극우보수라서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데 어쨌거나 안보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 정치는 엉망이고 국회의원들도 다 맘에 안 든다. 바른정당도 마음에 안든다”며 “황교안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출마를 포기해서 찍을 사람이 없다. 괜찮은 후보가 나와 주길 바랄 뿐”이라고 기대했다.

그러자 조카 강씨는 “차라리 투표를 하지 마시라”며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속내를 묻는 질문에 ‘먹고사는 게 바빠서 정치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다’ ‘그 사람이 그 사람 아니겠느냐’ ‘서민 죽이기 정책만 펼치지 않으면 된다’는 등 단답식의 답변이 주를 이룬 가운데 지난 대선 과정을 반성하고 투표를 독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2015년 제주로 이주해왔다는 천모씨(57·여)는 “서울에 있을 때 박근혜를 뽑았는데 나중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며 “사실 그때는 나이가 어린 이정희(전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당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동정표를 던진 사람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천씨는 이어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내가 너무 섣부르게 표를 던진 것 같아서 부끄럽더라”며 “이번에는 후보들의 공약들을 찬찬히 훑어보고 무엇보다 국민의 편에 서줄 수 있는 사람에게 표를 던질 생각”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을 밝힌 정모씨(40·여)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를 믿고 찍었는데 자책감이 너무 컸다”며 “그동안 정치에 크게 관심이 있진 않았지만 이번에는 TV로 연설도 듣고 공약에 귀를 기울여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이어 “한창 꽃피우고 자기 일에 열정을 쏟아야 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나라를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이 나라를 살려보자고 추운 날씨에도 촛불을 들러 나온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대통령을 뽑기 위해 투표를 하러 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제주의 민심은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언제나 당선 결과와 일치하면서 대한민국 민심과 궤를 같이하는 풍향계이자 정치 지형을 판가름하는 축소판으로 주목받아 왔다.


asy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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