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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판사 "행정처에서 가족사건 선처 부탁 전화 받아"

"행정처 근무경력, 법관 양심에 '백도어' 만들까 걱정"
정욱도 판사, 법원 내부망에서 '사법부 관료화' 지적

(서울=뉴스1) 성도현 기자 | 2017-03-20 05:30 송고 | 2017-03-20 08:51 최종수정
대법원 전경.© News1
대법원 전경.© News1

법원 내 판사들의 사법개혁 목소리를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8·사법연수원 16기)이 사의를 밝히는 등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행정처 판사로부터 가족 사건의 선처를 바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현직 판사의 고백이 나왔다.

임 전 차장은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실무자에게 사법개혁 설문조사 발표를 축소하라고 지시했는데 이 판사가 응하지 않자 부당하게 인사를 지시한 의혹 등에 휩싸여 지난주 법관 연임을 포기한 바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정욱도 판사(40·31기)는 지난 17일 법원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관료화의 다섯 가지 그림자'라는 제목의 A4 4장 분량의 글을 통해 오래 전 행정처 소속 선배 법관의 전화를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정 판사는 "평소 각별한 인연으로 친분을 유지하며 진심으로 존경해 오고 있던 그분은 뜻밖에 당시 제가 맡고 있던 사건의 당사자가 자신의 가족임을 밝히면서 사건의 내용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놓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정황상 선처를 바라시는 것만은 분명했다"며 "약간 당혹스러웠으나 일단은 '말씀을 잘 알겠다'고만 하고 통화를 마쳤다"고 덧붙였다.
정 판사는 "나중에 기록을 읽어보니 사건에는 당사자도 그분도 놓친 중요한 선결적 쟁점이 있었다"며 "그 쟁점 판단 때문에 해당 당사자에게 패소 판결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분이 강조한 '진실'의 진실성 여부가 아닌 다른 쟁점 때문에 그 통화는 제 판단에 어느 쪽으로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면서도 "만약 그 선결적 쟁점이 아니었다면 어땠을지 잘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특히 "행정처에서 그분을 상사로 모시고 근무했었다면 상하관계에서 비롯된 복종심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지 상상하기 어렵다"며 "행정처에서의 근무경력이 법관의 양심에 일종의 '백도어'(뒷문)를 만들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정 판사는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매개로 일선 법관들을 통제할 길이 열려 있는 상황에서는 법원의 판단이 아무리 공정하고 독립적이더라도 일반 국민으로부터 완전한 신뢰를 받기에 무리가 있다"고도 했다.

또 "(법관의) 개별 판단에 관한 내부의 간섭, 인사에서의 유·불리를 고려한 자발적 순치 등은 되도록 그 가능성이 싹마저 잘라버려야 한다"며 "이를 미뤄둔 채 우리가 '정의가 실현되는 외관'을 갖출 책임까지 다했다고 할 수 있겠나"고 말했다.

정 판사는 이밖에도 △행정처에서 근무하지 못한 다수의 법관들이 느끼는 상처 △행정처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부의 끄나풀로 낙인찍히는 상황 △사회의 변화에 크게 뒤처져서는 안 되는 법원 등에 대해서도 솔직한 심경을 담았다.

정 판사는 글 마지막에서는 "우선 이인복 전 대법관님께 일임된 진상조사의 결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며 "어떤 비위행위가 있었다면 행위자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진짜로 배격하고 궁극적으로 없애야만 할 것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어느 개인이나 특정 행위가 아니라 심각한 불신 모두의 토양이 된 '사법부 관료화'의 단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dhspeop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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