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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모든 벽 속에는 반드시 문이 있다"

[인터뷰]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펴낸 정호승 시인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3-07 11:51 송고 | 2017-11-28 15:57 최종수정
6일 오후 서울 안국동의 한 찻집에서 뉴스1이 정호승 시인을 인터뷰했다. 2017.3.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6일 오후 서울 안국동의 한 찻집에서 뉴스1이 정호승 시인을 인터뷰했다. 2017.3.6/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벽은 문입니다. 벽을 벽으로만 보면 벽밖에 보이지 않지만 벽 속에 문이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문이 있습니다."
울다가 어느 순간 가슴 속에서 가냘픈 희망의 움이 솟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시들이 있다. '가슴 속 슬픔을 누군가 토닥거린 듯 위안을 받았다'는 고백을 독자들이 자주 하는 시. 바로 국내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인 정호승 시인(67)의 시다.

6일 오후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옆의 한 찻집에서 만난 정 시인은 요즘 청년들에게 "벽은 문이다. 벽은 문없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을 주로 해준다면서 '희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것 같아도 간절히 손으로 더듬으면 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출간한 그의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에서도 시인은 그의 오랜 화두인 '희망과 용서'를 탐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벽 속에 숨은 문'처럼 '역설'의 형태로 표현된다. 시 '데스마스크'에서는 '죽음은 용서가 아니라 용서이구나', 표제시인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에는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는 식으로 알듯 말듯하게 표현된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그래도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삶) 속에서 인간이 지향해야 할 것은 용서가 아닌가 생각해요. 우리가 인간인 까닭은 용서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래서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죽음을 통해(우리 모두 죽어가는 존재라는 생각을 통해)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정호승 시인의 시에는 어둠과 빛, 희망과 절망, 슬픔과 기쁨, 삶과 죽음이 서로 대비되거나 일부 융합하면서 긴장감을 형성한다. 하지만 시인은 섣불리 둘 사이를 화해시키려 하지 않는다. 두 극단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치열한 성찰을 통해 탐구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서도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중)와 '절망은 희망을 딛고 서 있지만/ 희망은 무엇을 딛고 서 있는가'(‘희망의 밤길’ 중)처럼 시인은 희망의 실체를 자꾸 묻는다.

희망에 대해 거듭 스스로 질문한 결과 시인은 "희망은 기쁨이 아닌 분노에 가까운 감정"이라는 답을 얻었다. 그리고 "절망의 과정 없이 얻어지는 희망이 없는 희망은 거절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항상 개인적으로든 시대적으로든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느날 '내가 희망이 없는 희망을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희망한테 속은 거지요."

'현재, 한국'이라는 시공간 좌표에서 아마도 희망이 가장 필요한 이는 국민일 것으로 보인다고 하자 정 시인은 "우리 국민은 상처를 많이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우리 국민들이 이 상처를 헛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973년 등단해 시력(詩歷)이 40년을 넘어선 천생 시인처럼 보이지만 정호승 시인에게도 10년 이상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1982년 펴낸 두번째 시집인 '서울의 예수'와 1987년 '새벽편지' 사이 약 5년간, 1991년 '별들은 따뜻하다'와 1997년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를 낸 사이 약 7년간의 공백이다. 시인은 "직장생활을 하느라 바빴고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어 시를 한 편도 안썼다"면서도 "하지만 가슴속에 시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정호승은 계보로 보자면 '비극성'을 정조로 삼은 국내 서정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분류된다. '어째서 항상 슬픈가' 하고 묻자 시인은 이같이 대답했다. "나는 항상 웁니다. 산다는 게 비극이죠. 슬픔과 비극이 시인의 삶입니다. 시인은 누구나 손가락으로 가슴을 꾹 누르면 눈물이 흘러나오는 존재예요. 눈물에는 기쁨의 눈물도 있지만 시는 '인간의 슬픔의 눈물'입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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