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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운 물건은 내 것?"…점유이탈물횡령죄 5년새 5배로

경제난에 '가져가는 사람'도 '신고하는 사람'도 늘어
'견물생심' 유혹 빠지면 안 돼…최대 1년 징역형

(서울=뉴스1) 김다혜 기자 | 2017-02-11 07:05 송고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김수현씨(가명·24)는 지난해 10월 경기 평택시 청북면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덩그러니 놓여있는 가방을 발견했다. 상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김씨는 가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월급 수개월 치에 해당하는 현금과 수표 500만원 상당이 가방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방을 가져갔고 이 모습이 고스란히 버스정류장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김씨의 이동 동선을 추적해 그를 붙잡았고 김씨는 범죄 사실을 시인했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박정구씨(가명·63)는 지난해 9월 말 집 근처 초등학교 버스정류장에서 체크카드를 주웠다. 박씨는 주운 카드를 지하철·버스 요금 등을 내는 데 썼다. '삑'하고 리더기에 갖다 대기만 하면 사인 없이도 결제할 수 있었다. 카드 분실 사실을 모르고 있던 40대 여성 피해자가 고지서를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한 달여간 박씨는 1224회에 걸쳐 140여만원을 부정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길이나 지하철 등 개방된 공간에 놓인 타인의 물건을 가져가는 '점유이탈물횡령'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경찰범죄통계에 따르면 점유이탈물횡령 신고 건수는 △2011년 6341건 △2012년 9100건 △2013년 1만2905건 △2014년 1만5529건 △2015년 2만4691건 △2016년에는 3만513건(잠정 통계) 등으로 해마다 크게 늘었다. 5년 만에 5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물건을 훔치는 행위인 '절도' 사건이 해마다 대체로 감소하는 추세인 것과 대조적이다.

◇불황 속 '가져가는 사람', '신고하는 사람' 모두 증가

점유이탈물횡령 범죄 신고가 급증한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 일선 형사들은 어려워진 경제 상황이 점유이탈물횡령 사건 증가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점유이탈물횡령 사건을 담당해 온 이모 형사는 "피의자 중에 생활고를 겪는 사람이 많다"며 "돈이 급한 경우 처벌은 신경 쓰지 않고 우선 쓰기에 급하고, 걸려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습득물을 챙기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신고율을 높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서울 지역 한 경찰서의 생활범죄수사팀에서 근무하는 김모 형사는 "예전에는 '잃어버렸네' 하고 말았을 사건도 요즘엔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며 "1만~2만원 잃어버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적은 금액, 작은 물건을 잃어버려도 개인이 체감하는 피해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팀 소속 또 다른 김모 형사는 "요즘은 지하철 자동매표기에 두고 간 잔돈 9000원을 찾아달라는 신고도 접수된다"며 "과거 점유이탈물횡령죄가 돈다발을 주워가는 사람 등을 처벌하는 근거로 쓰였다면, 최근엔 상대적으로 피해 규모가 작은 사건들도 많이 들어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법률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신고 건수가 증가한 배경으로 분석된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신모 경관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지인을 통해 '점유이탈물횡령'이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죄명을 알고 수사를 요청하는 민원인들이 많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16일 오전 9시께 전북 김제시 백구면 한 마트에서 직원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50대 남성이 조미료 10개 (시가13만원 상당)를 훔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 © News1.DB

◇'견물생심' 유혹 빠지면 안 돼…"최대 1년 징역 처벌"


점유이탈물횡령죄는 특성상 사전에 계획되기보다 우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울의 한 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 소속 김모 형사는 "검거되는 사람들은 젊은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하다"며 "누구나 주인 없는 물건을 보면 가져가려는 욕심이 생길 수 있다. 그걸 얼마만큼 자제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습득하면 가까운 경찰서나 지구대·파출소에 신고해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형법 제360조에 따르면 점유이탈물을 횡령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태료를 물게 된다.

실수로 남의 물건을 가져간 경우에도 사후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점에서 물건을 산 후 거스름돈을 받아야할 금액보다 많이 받았을 때 추후에 이를 알고도 되돌려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수사대상이 될 수 있다. 상점 주인의 점유를 이탈한 돈을 횡령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내 우산인 줄 알고 남의 우산을 가져가 돌려주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신고한다면 수사를 진행해 거스름돈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 돌려주려고 노력했는지 등을 고려하게 된다"며 "각각의 경우를 좀더 자세히 따져봐야겠지만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는 건 맞다"라고 밝혔다.

점유이탈물을 섣불리 '버려진 물건'으로 간주하는 태도도 피해야 한다. 서울 지역 한 경찰서의 생활범죄수사팀에서 근무하는 민모 형사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경우가 아니라면 통념상 '버렸다'고 생각할 만한 사례도 흔치 않다. 자신이 임의로 '주인 없는 물건'으로 판단하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민 형사는 또 "직접 주인을 찾아줄 생각으로 물건을 가져갔다가 며칠째 갖고 있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며 "선의로 시작한 행동이라도 점유이탈물 횡령자로 오해를 받거나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News1.DB

경찰은 급증하는 점유이탈물횡령죄에 대비해 이를 전담하는 생활범죄수사팀을 신설·확대하는 등 '생활밀접형 치안'을 위해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인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신고 건수가 늘면서 경찰의 업무부담이 과중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지역 한 경찰서의 이모 형사는 "만약 신용카드 습득자가 열 군데서 카드를 사용했다면 열 군데를 모두 쫓아가 CCTV를 확인하고 이동 동선을 추적해 용의자를 탐문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도 잡기가 쉽지 않다"며 "시간 소비가 엄청난데 그 와중에 형사들의 서랍에는 다른 사건도 수두룩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dh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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