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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도매상 송인서적 부도 '한달'…출판계 '빙하기' 닥치나

대형출판사에 비해 불리한 유통관행 개선 필요 지적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2017-02-02 08:04 송고 | 2017-02-02 09:33 최종수정
한 서점에서 독자가 책을 보고 있다.© News1
한 서점에서 독자가 책을 보고 있다.© News1

3일 서적 대형도매상인 송인서적이 부도를 낸 지 한 달이 됐다. 2000개 중소 출판사와 1000개 동네 서점의 연결고리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출판계에 '빙하기'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작은 출판사의 고사에 따른 출판 생태계의 파괴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러온 혼란한 정국에 도서 판매도 전반적으로 부진한 양상을 보이며 사태를 해결할 힘을 모으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송인서적 부도를 계기로 오래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POS)을 도입해 출판 유통을 투명하게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작은 규모의 출판사들 고사 위기 처해

송인서적 부도에 따른 피해액은 총 670억원으로 추산된다. 대형 출판사들은 수억원의 피해를 봤고, 중소 출판사들도 수천만원 대의 부도 어음 및 미지급금 손실을 입었다. 특히 자금력이 취약한 직원 1~5인 내외의 작은 출판사와 동네 서점의 연쇄 부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다행히 부도 한 달이 지난 현재 시점까지는 송인서적 부도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파산했거나 폐업했다는 작은 출판사는 많지 않은 것으로 출판계에선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정부가 지원한 돈과 개별적으로 융통한 재원 등으로 '한시적으로 버티고만 있다'는 분석이다.
즉 '부도나 파산의 유예일 뿐'이며, 아예 파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출판사들이 '고사'(枯死)하고 있다는 것이다. 450여 출판사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한국출판인회의는 "송인 사태 후 피해를 입은 출판사들로부터 손해액 관련 대출금 신청을 받았는데 심지어 50만원이나 100만원을 신청한 작은 출판사도 있었다"고 전했다.

가장 작은 형태인 1인 출판사는 직원도 따로 두지 않고 사무실도 없이 재택근무하며 이미 허리띠를 졸라맬 대로 졸라맨 곳들인데, 이들에겐 50만~100만원의 작은 액수도 그야말로 '생명수'가 된다는 게 출판인회의 측의 전언이다.

출판계 인사들은 "직원을 여러 명 둔 중소 출판사들은 월급을 못주고 인쇄소에 준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라는 일이 벌어질 수 있지만, 작은 출판사들은 부도조차도 못 낸다"며 "대신 서서히 말라 죽어가며 출판활동의 저조 현상이 곧 거세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군소 출판사나 1인출판사 중에는 판매량에 구애받지 않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문서나 과학책을 내는 곳들이 많다"며 "묵묵히 책을 펴내고 있는 이들 작은 출판사들이 고사된다면 장기적으로 책의 다양성이 훼손돼 출판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작은 출판사에 더 불리한 유통 관행 개선해야

송인서적을 통한 동네 서점과 거래 비중이 높은 작은 출판사들은 불합리한 출판계의 유통 관행으로 인해 송인서적의 부도에 따른 타격을 대형 출판사보다 더 심각하게 입었다고 입을 모았다. 송인서적을 비롯한 서적도매상들이 대체로 큰 출판사들에는 받은 책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반면, 작은 출판사들에는 늘 받은 책보다 작은 액수를 지불해 왔다는 비판이다.

한 군소 출판사의 편집자는 "우리가 장부상으로는 송인서적에 100만원의 책을 보냈는데, 송인서적에선 우리에게 줄 돈이 없다고 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에 항의하면 담당 직원은 높은 사람에게 직접 말하라고 하지만 그마저도 연락이 잘 안되었다"고 했다.

한 출판 전문가는 "출판계에서 강자에 해당하는 큰 출판사들은 송인서적과 거래를 정산하면 상대적으로 피해가 작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송인서적에 돈을 줘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작은 출판사들은 송인서적에게서 수개월짜리 어음을 받았지만, 큰 출판사들은 대체로 현금이나 담보가 있는 어음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책을 싸게 공급하는 판매방식인 '매절' 때문에 작은 출판사들의 피해가 컸다는 주장도 나온다.

매절은 다른 산업분야에서도 쓰이는 용어로 '현금 지급, 대량구매, 반품 불가' 등의 조건을 붙여 상품을 싸게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도 서적 도매상들은 작은 출판사의 경우에는 매절 조건에도 팔리지 않은 책을 반품했다. 한 출판 관계자는 "팔린 줄 알고 더 찍었던 책이 나중에 반품으로 돌아와 손해를 본 경우가 허다하다"고 호소했다.

작은 출판사들은 송인서적 부도 피해 같은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판매량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등의 '출판 유통 선진화'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출판 관계자는 "매장에서 판매와 동시에 품목, 가격, 수량 등 유통정보를 알 수 있는 '판매시점 정보관리'(POS) 시스템을 도입하고 판매한 책에 맞춰 대금을 현금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출판계 관계자는 "서점들은 세원(稅源)이 노출되고 대형 출판사는 지금까지 유통방식보다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POS시스템을 도입해 널리 보급해야 전체 출판계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ungaung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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